예전 다같이 몬살던 시절
엄마들은 참 힘들게 사셨다
남편들은 쥐꼬리만한 돈 벌어다 주면서도
대게는 성질 과격한 폭군들이었다
우리 옆집 외자아부지와 수종이아부지는 그와중에도
그래도 부드러운 남편이셨다
나보다 한살많은 현수 엄마는 자기가 낳은 아이들은 없는 계모셨다
남편은 만구 돈 안되는 화가였는데
아침늦게 다려진 하나뿐인 기지바지입고 고바우모자쓰고
영도다리 부근 화원에 나가시면 늘 담배피우며 바둑이나 뚜고 집에 왔다
몬살던 시절에 누가 그깟 배 안 부른 그림을 사냐?
늘 가난했는데
그집 둘째 아들이 출중하게 공부를 잘해서
부산고와 학비 일체 안드는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를 졸업했다
몇년 배타고 정말 집안이 일어섰다
그때는 선원봉급이 육지 근로자의 몇배나 되었고
세관이 눈감아주는 합법적인? 밀수도 일정금액은 하던 시절이었다
현수엄마는 자기가 낳은 자식들도 아닌데
등록금내는 시기가 오면 온동네를 헤매면서 학비를 빌리러 다녔고
심지어는 아침마다 발을 동동 굴리시며 버스비를 빌리러도 다녔다
그 둘째아들이 그후 쭈욱 그렇게나 효도를 했었다 보은?
저번 경남방에서도 동삼동 공짜 수족관을 구경하고 해양대를 짧게 걸었다
그때 한남자분이 과거 해양대학교는 줄만 서면 들어가는 후진학교였다고 해서 내가 기가 차더라
경남고 부산고 그 명문고 학생들도 낙방하는
입학이 매우 힘든 학교였는데 그렇게 말하니 안타깝지라이 ㅋㅋ
어제 비도 한방울씩 떨어지는데
새로 다듬은 해양대 뒤쪽 바닷가 둘레길을 걸었다
절경은 아니었지만 바닷바람도 쐬고 디게 좋더라
막걸리 한잔 하고 밤에 컴백했다
참 참고로 나보다 한살많은 동네친구 현수늠은 등치크고 인물은 좋은데
저거 형들과는 달리 공부 드럽게 못했다
지금은 어디 사는지 꼭 한번 보고싶다
몸부림 니는 그때 아주 어렸을건데 그런 사실들은 어떻게 다 기억하냐?
제가 쫌 영민하고 기억력도 좋고 막내니까 엄마가 하는 말씀을 많이 들었었죠 ㅋㅋ
그때는 우리형들도 공부 잘해서
명문 부산상고와 개성중을 다녔는데 아침마다 전쟁을 치루고 버스든 전차든 타고
영도에서 서면까지 통학했어요
현수늠과는 달리 몸부림늠은 공부 꽤 잘했어요 믿거나말거나 ㅋㅋ
비가 옵니다 일주일 내내 온데요
이 비가 그치고나면 가을이 성큼 다가오겠죠^^
첫댓글 울아버지는 경남상고 2회 졸업
세무소 근무
갑자기 생각납니다
건강을
고맙습니다
아부지가 경상출신이시군요
부산상고 경남상고 부산 상고의 양대산맥이었죠
아부지가 세무서공무원이셨음 다들 몬살던 시절 그나마 따씰맞게 사셨겠어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옛날 함짓골(중리)에 해양대가 있었어요 대졸자뽑아서 양성하던 간부선원 양성소도 있었구요
그후 태종대입구 하리 아치섬으로 옮겨가고 그자리엔 2년제 해양전문대가 있었고 그후엔 부산체고 남고가 옮겨 왔어요
제가 알기론 아치섬을 잇는 다리는 학교를 지으면서 같이 놓았어요 설마 학생들이 배타고 학교갔겠어요? ㅋㅋ
제가 영도역사의 산증인인데 근간 일부 엉터리면서도 지말이 다맞다고 하는 기가 차는 영감 하나가 나타나서 웃깁니다
예를들면 남양어망이 빨간등대가는 남항동에 합동사이다공장이랑 나란히 있었다고 하면 애시당초 태종대가는 동삼동에 있었다고 우기는 늠 ㅋㅋ
아들이 공부 잘했네요 옛날만큼 힘든 학교는 아니지만 ^^
그시절엔 다들 참 어렵게 살았지요
저도 엊그제 결혼식 보러 갔다가
어렸을적에 살던
첩첩산중 고향엘 갔었는데
옛날 코흘리며 놀던 동무들이 생각나더라구요
물론 지금은 찻길이 생겨서
버스도 하루에 두번 다니지만
그때는 호랑이도 나온다고 했던 산골이였어요 ㅎ
바다를 처음 본게 고딩때였다우...
보편적으로 시골 출신분들이 건강하고 정서도 풍부하더군요
우리집은 올리브유만 씁니다 근간 갑자기 엄청 많이 올라버린 올리브유처럼
이롭고 가치있고 맛있게 사세요 감사합니다 ^^
해양대학교라니까
푸른 시절 알던 지인이 생각나는데...
어쩜 기억이 요래 가물가물할꼬? ㅎㅎ
푸른시절 하시니까 이몸도 푸르렀던 날이 물론 있었겠지요
남포동광복동 나가면 토요일 오후에 하얀애들이 마른버짐 핀것처럼 곳곳에 있었죠
해양대 학생들은 일주일을 갇혀서 군대같은 기숙사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자유가 그립고 아가씨들이 보고싶고 술도 고팠겠어요
아가씨들 츄라이 하려고 ㅋㅋ
제복은 입었어도 사관학교와는 달리 걔들은 술담배는 했어요^^
영도는 쫌 꼬질꼬질 가난하고
머리 나쁜 사람들이 사는곳인줄
알았어요........어릴땐 쏘리 ㅜㅜ
몸님 통해서
잘생기고 머리도 좀되고
부자도 많았다는걸....
몰랐던 영도 사회실상을 알게되었어요 ㅎ
부산상고는
외삼촌 사촌 이종 고종사촌
저는 그 옆 H여고 ....
해양대 하얀제복입고 나서면
멋있었지요...
돈 잘벌고 1년에 한 두어달만 집에 있고....
최곤대~~~ㅎ
영도에 갔더니
다리가 올라가고 그밑으로 배가 지나가고
그것밖에 ~
녹음기에서 나오는 굳세어라 금순아
그리고
자갈치 시장으로
@율리아나 팝 빠싹이 언니께서
굳세어라 금순아 까정~~~!!
목포의 눈물
대전 부르스
소양강 처녀 ~~이런거 잘 불렀는데 소싯적에
ㅎㅎ
그시절 부산 부자들은 서대신동 초량 동네온천장 정도에 좀 살았고 아님 빈부가 다 섞여살지 않았나요?
영도는 배사업하는 사람 조선소 고위직 국제시장 장사하는 사람 등등 대단한 부자들도 많이 살았어요
영도사람 벨나다 했지만 그땐 동네마다 양아치 다있었어요 ㅋㅋ
해대 수대 나와서 배타고 나가면 돈잘벌었죠^^
@율리아나 지금은 중심상권이 많이 분산됐지만 예전엔 오로지 남포동 광복동이었어요
영도사람들은 영도다리 건너가면 바로 거기였어요 촌빨날리지 않고 세련되었더래요
지금의 영도는 북항/남항대교 때문에 너무 빨라졌어요 ㅋㅋ
@몸부림 긍께요.
@신순정 안즉
다낭에?
오늘이 아마 베트남 국경일이었든거
같은디요.
작년 9월 2일엔가 다낭에 있었거드
@율리아나 아 긍가요?
오늘 새벽2시 다 되어서
떠나왔어요~~
다낭은
거의 한국 같았구요.
일본 안가고 모두 다낭으로~
전 부산을 잘 모르니...
광안리.해운대는 가보았고,
아~ 국제시장에 나온 곳?
자갈치시장?
그곳에 가서 회를 먹었던 기억 외에는...
부산사시는 외숙부 내외분이 오시면 아나고회를 늘 떠오셨었는데
자갈치시장에서 그 회맛을 생각하고 먹은 아나고회는 이미 그 맛을 잃었더이다.
예전의 아나고회 묵고파요.~ㅎ
저는 부산사람이어도 자갈치 2층 회센터라는 곳을 얼마전에 처음 가봤더래요
지은지 몇십년되는데 보수도 잘 안하고 들어가자말자 냄새도 심하고 상차림도 꾸지리 하더군요
재래시장보다 대형마트 좋아하는 저로선 자갈치 비추입니다 ㅋㅋ
제가 옛날에 직장생활할때 해양대학구내통신설비유지보수를
담당해서 뻔질나게 들락거렸는데
또 아들놈이 그학교를 졸업하기도 한 인연이 있어
몸부림님 글에 더욱 눈길이 가네요
그러셨군요 그럼 아들은 선원인가요? 요즘은 다른 비승선꽈도 많더군요
옛날 날리던 시절의 해양대는 항해과 기관과 두꽈뿐이였죠
해양대 출신도 아니면서 단지 영도에 있는 이유로 제가 쫌 잘아나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