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는 얼추 할얘기 다 한것 같아서 리테일을 쓸까, 관심이 많을 주거용을 쓸까 생각중인데 생각 좀 해보고 나도 자료도 좀 찾아보고 한 다음에 쓰든가 말든가 할꺼고, 그냥 남은 잡썰을 좀 풀고 가려고 한다.
예전 글에서도 몇번 언급했지만, 대형 오피스 빌딩을 쓰는 수요자들은 기업이다. 소규모 금융사/전문 서비스 펌 같은 경우는 혼자서 빌딩을 다 사기에는 많으니까 뭐 그려려니 해도 혼자 사옥을 지어 올려도 수요가 충분한 대기업들도 남의 건물에 세를 살거나, 심지어는 자기가 살던 건물을 팔고 고스란히 다시 세를 사는 경우도 많다.(이걸 유식하게 세일 앤 리스백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기준으로 이건 굉장히 이상한 일이겠지만, 사실 당연한거다. 부동산은 시세대비 그렇게 높은 수익이 나는 자산이 아니다. 잘해봐야 5%? 요즘은 더 낮아서 2~3%? 근데 대게의 경우 기업의 WACC는 이보다 훨씬 높다. 현금흐름이 꾸준히 안정적이라는 장점은 분명히 있지만, 연기금도 아니고 사업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 이게 큰 메리트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무관리를 배웠다면 알겠지만 이런 자산은 후딱 팔고 그 돈은 배당을 주거나 빚을 갚는데 쓰는게 훨씬 이득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래서 많은 회사들이 그렇게 해왔다.
다만 일본/중국/우리나라 동양3국은 예외였는데 이 나라들은 본사가 직접 사옥을 짓는걸 꽤 오랜기간동안 선호해 왔다. 그러면 왜 빌딩에 세를 사나?가 아니라 왜 직접 빌딩을 짓나? 라는 질문을 해봐야 할텐데, 그동안 주로 지지받는 설은 '동양사람들은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였다. 제법 설득력이 있다. '우리 회사는 남의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습니다'하면 뭔가 없어보이잖아. 실제로는 자가 소유 건물이라도 '주주와 채권자들로 부터 빌린 돈으로 건물을 지어서 거기서 살고 있습니다' 라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누가 그렇게까지는 안따지니까. 기업 한다고 돈을 빌리는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옥이 없어서 남의 건물을 빌리는건 대단히 채면 구겨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DNA에 남아있어서 그렇게 사옥에 집착했다는 설명이 제법 깔끔한 것 같다.
근데 얼마전에 흥미로운 설을 들었는데, 이게 동양적 권위주의와 관련이 깊다는 설이었다. 쉽게 말해 회장님 입맛에 맞게 건물을 짓고 꾸며야 하는데, 남의 건물을 빌리면 그게 안되니까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회장님 입맛에 맞는 건물을 지어 올린다는 거다.
제2롯데월드 같은 경우 NPV가 음수일거라는게 업계의 공공연한 예측이다. 사실 롯데 사람들도 이걸 썩 부정하지는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주와 채권자들에게 막대한 해를 입혀가며)이게 추진된 이유는 회장님 숙원사업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된다. 중간에 디자인도 회장님 입맛에 따라 몇번이나 엎어졌다가 다시 그려진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롯데월드가 너무 큰 주제였다면 좀 더 소소하게 해볼까? 영어에 Corner Office 라는 말이 있다. 한 층에 코너는 잘해야 4개씩 밖에 안나오는데, 코너에 있는 사무실은 다른 곳보다 조용하고, 무엇보다도 창문이 2배로 많다. 호텔도 그냥 스위트룸 보다 코너 스위트가 비싸고 마찬가지로 corner office는 주로 임원들 사무실로 쓰이고 이 말이 임원 사무실, 혹은 중역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근데 서양 사람들은 상상도 못한 물건이 우리나라에는 가끔 있는데 이른바 Two-corner office 혹은 더블코너 오피스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한 사무실에 코너가 2개! 나온다는 뜻인데 이건 건물 한쪽면을 통쨰로 쓴다는 소리다. 사각형의 좁은 면을 쓴다고 그래도 한 층의 1/5에서 많게는 절반정도를 통째로 한 사람 사무실로 때야지 나오는 말도 안되는 면적인데, 코딱지 만한 빌딩에서 이런 똥폼 잡는 사람은 없으니까, 대형 빌딩에서 이만한 사무실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다 알만한 몇몇 회장님들로 한정된다. 나도 딱 한번 가본적이 있는데, 회장님 사무실에 간건 아니고 완공 후 입주 시작하기 전인 건물에 한번 견학차 간 적이 있다. 운동장만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넓이에 (입주 전이라 가구도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3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서울시내 뷰가 쫙 펼쳐지는게 다리가 후들거릴정도로 고급스럽더라. 그런 사치를 부리는 비용이 자기 주머니가 아니라 주주들 줄 돈에서 나온거라는 것만 뺴면 정말 탐날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더블코너 오피스를 제대로 뽑으려면 (회장님 집무실 한 가운데 기둥이 있으면 안되잖아) 건설 단계부터 기둥과 내력벽을 잘 배치해야 한다. 웬만한 면적은 따로 설계변경없이 가능할지 몰라도 운동장만한 사무실을 기둥이나 벽으로 가리지 않고 면적을 확보하려면 설계부터 거기 맞춰서 해야 된다. 당연히 임대를 목적으로 건물을 짓는 사람은 그딴 헛질에 돈을 안쓰니까 (그렇게 지어놔도 건물이 나간다는 보장이 없다) 회장님께 호화로운 사무실을 바치려면 본사가 직접 사옥을 짓는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서양의 CEO라고 이런 호화로운 사무실을 가지고 싶지 않을리 없다. 그렇지만 그런짓 했다가는 바로 이사회에 불려가서 모가지를 당회기 십상이고, 그렇다 보니 괜히 비싼 돈들여 직접 건물을 짓는 짓을 안해도 된다. 회사 내부의 권위주의가 약하고, 주주와 채권자들에 의한 견제, 감시가 잘 일어난다면 대기업이 사옥용 빌딩을 직접 소유할 유인이 줄어든다는 말이 되고, 반대로 말하면 건물을 빌려쓰는게 아니라 직접 짓는게 보편화된 나라일수록 저런게 안된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내가 아는 바로는 진짜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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