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후,
청에 인질로 끌려가 8년의 세월을 지내면서
다른 나라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겠다는 꿈을 꾸었으나
오히려 왕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와 강빈.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장 큰 주범은 당연히 인조인지만
인조의 사랑을 독차지한 후궁인 소용 조씨 또한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강빈과의 불화가 심했으며,
세자가 왕위를 차지할 목적이라며 갖은 모함으로 인조를 부추겼습니다.
또한 세자가 죽을 때 침을 놓은 이형익도 조씨 쪽 사람이었죠.
이에 그치지 않고 세자가 죽은 뒤에도 강빈이 자신을 저주했다며 무고하기도 했구요.
결국,
효종 때 역모 사건에 연루돼 사사(賜死)됐습니다.
장희빈 등에 비해 대중에게 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이만한 악녀도 얼아 없을 것 같습니다.
정답이 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소용 조씨가 아니었다면 소현세자와 강빈의 삶도 달라졌을까요?
첫댓글 인조 자체가 무능하고 질투심 많은 의심병 환자였기 때문에 소용조씨가 아니더라도 유능한 아들을 그냥 놔뒀을것 같진 않네요.
인조 주위에 중용되던 신하들이 죄다 간신들이었고 그런 사람들만 곁에 두었는데 그 사람들이 소현세자를 가만 놔뒀을까요.
222222 인조 본인이 가장 큰 문제였죠. 선조와 함께 조선 최악의 왕을 다투는 인물이라 소용 조씨야 있건 없건 아무 상관 없었을 겁니다.
333 인조가 냉철한 판단력을 갖추었다면 옆에 뭐라 그러든 며느리 집안까지 쓸어버릴 리 없죠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도 신하들의 반대로 개혁은 쉽지 않았을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만, 왕이 되는 것까지 막으려 했을까요? 인조만큼이나 당시 신하들이 귀국한 세자와 강빈에게 적대적이었나요? 라고 몇 분 전에 썼는데 생각해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세자의 생각이 드러날수록 적대적으로 변했겠네요.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가 빛을 보기는커녕 억울하게 비명횡사하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중종,선조,인조 테크트리 타면서 조선이 망했죠
중종을 선조 인조와 같은 라인에 두시다니요 선조 인조 투톱에 비하면 중종은 명군이죠 ㅎㅎ
빅쓰리가 되는건 쉽지 않네요~
중종이 왜요?? 훈구들 한테 휘둘려서 그런건가요??? 굳이 빅쓰리를 넣자면 고종을
중종도 여러모로 한심한 왕이지만 선조-인조라는 조선사 독보적 투톱에겐 밀린다고 봐야죠.
중종도 멍청하긴 매 한가지입니다 그리고 제 글 잘 보세요 중종 후에 선조 인조가 왕위에 섭니다 고종은 훨씬 후입니다 이 멍청한 임금 세 명이 조선 중기에 있었기에 조선이 망테크 탔죠
역시 빅3보다는 인조.선조 투톱 다이나믹 듀오가......허허헣헣
고종은 이미 나라가 기울어질때로 기울어질때 정권 잡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