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부처님께서는 이들 증상만의 무리들이 법회 자리를 물러나는 것을 말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잔가지나 잎새, 그리고 찌꺼기에 비유한 반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나머지 대중을 참된 열매라고 칭찬하시며 사리불에게 부처님이 설하신 바를 온 힘을 다하여 믿어야 함을 경고하시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설하십니다.
`사리불이여, 무엇을 가리켜 모든 부처님 세존들께서는 오직 하나뿐인 중대사를 인과 연으로 하여 이 세상에 나타나 오신다고 하는가 하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부처님들은 모두가 일체의 중생들의 본래 가지고 있는 부처님의 지혜를 스스로가 열어서(開) 청정한 마음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타나 오시며, 또 부처님의 지혜인 실상(實相, 참모습)을 중생들에게 나타내 보이시기(示) 위하여 세상에 나타나 오시며, 또 그러한 부처님의 실상을 환히 아는 지혜를 중생들이 스스로 깨닫도록(悟) 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타나 오시며, 또 부처님의 지혜에 깊이 들어(入)가서 평등상과 차별상을 모두 아는,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깨닫는 길(불(佛道)로 중생을 인도하기 위하여 세상에 나타나 오시는 것이니라. 사리불이여, 이것을 가리켜서 모든 부처님 세존들께서는 오직 하나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하여 이세상에 나타나(現=如) 오신다(出=來)고 말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 함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시는 본래의 목적(本懷)은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주고(開), 보여주고(示), 깨닫게 해주고(悟), 부처님의 지견(知見)으로 들어가게(入) 해주기 위한 자비심의 발로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곧 일불승(一佛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불장(五佛章)`이라 하여 제불(諸佛), 과거불(過去佛), 현재불(現在佛), 미래불(未來佛), 석가불(釋迦佛) 모두가 다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이 아닌 `부처가 된다(成佛)`라는 일불승(一佛乘)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 본회(本懷)는 우리 중생을 깨닫게 하여 열반에 들게 한다는 그런 얇은 목적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 자신과 똑 같은 부처가 되도록 가르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을 부처가 되는 지름길을 가르치는 경이라고도 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동안 가지가지 인연(因緣)과 비유(譬喩)로써 설한 것은 중생들의 근기(根機, 부처님의 설법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가 부족하여 사용한 방편(方便)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곧 부처님께서는 출세하신 `본회(根本目的)`인 교(敎)를 설하시기 위한 준비로서 사십여년에 걸쳐 많은 경을 설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출세하신 근본목적은 일체중생을 다 같이 성불시키는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성불할 수 있는 유일(唯一)의 교인 법화경에 들어오게 하시려고, 그 준비로서 사십여년 동안 여러 경을 설하신 것입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법화경은 큰 탑이요, 다른 경전은 발판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 이르러 대탑(大塔)을 만든 후에 발판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이, `방편을 버리고 정직하게 다만 무상도(無上道)를 설하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전권후실(前權後實, 開權顯實)은 부처님의 설법 의식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눈으로 일체의 모든 법을 관(觀)하였으되 가히 선실하지 아니하였노라.
어찌하여 그러한고, 모든 중생의 성품과 욕망이 같지 아니함을 알았음이라.
성품과 욕망이 같지 아니하므로 가지가지로 법을 설함이니라."(무량의경 설법품)
이것은 교화에만 한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계에 있어서나 인간 사회에 있어서도 때가 이르고 이르지 아니함과 기회(機會)가 익고 익지 아니함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봄은 씨를 뿌릴 때요. 가을은 곡식을 거둘 때입니다. 빨리 수확하려고 겨울에 씨를 뿌려도 싹은 트지 않을 것이요. 가을이 되기 전에 거두어도 곡식은 얻지 못할 것입니다. 닭이 때를 알리는 것은 새벽이요, 한 그루의 나무를 옮겨 심는데도 때를 맞추어야 합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사회에 있어서도 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출세의 본회이신 일체중생이 성불하는 대사(大事)를 일찍이 설하지 아니하신 까닭을 "설할 때가 되지 않은 연고이니라."고 하시고 때를 기다리신 것은, 마치 추운 겨울에 씨를 뿌리는, 수고만 있고 공(功)이 없는 어리석은 일을 피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42년 동안이나 성불의 대사를 설하실 시기가 이르지 않았을까? 그것은 법을 듣는 중생의 근기가 아직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대사를 설하여도 이익이 없고, 들어도 알지 못할 것이니, 존귀한 법을 설해야 헛수고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신 후 42년이라는 오랜 동안을 출세의 본회이신 중생 성불의 도를 밝히지 아니하신 이유는 설하실 때가 아직 않았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여시고 곧 미혹한 중생에게 무상(無上), 정각(正覺),의 도를 설하시려 했으나, 중생의 근기가 구구하여 욕망도, 소원도, 사상도, 이상도 천차만별 가지각색이어서 모처럼 무상보리의 대사를 설할지라도 중생이 그 근기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여 헛수고로 돌아갈 것을 아시고 설하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중생의 근기를 바로잡으시고자, 42년 동안에 많은 팔만대장경의 부분을 설하신 것입니다.
내가 처음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후, 그 자리에 앉아 칠 일 동안 깨달음을 되새기고, 다음 칠 일 동안은 동쪽으로 열 걸음 사이를 경행하고 또 칠 일 동안은 경행하던 동쪽에서 보리수를 지켜보며 명상을 계속하였으니, 이렇게 삼칠일 동안 그 정각의 땅에 머물면서 이러한 일을 생각하였노라. `내가 얻은 지혜는 이 우주에서 가장 미묘한 최고의 진리라서 말로써는 표현치 못하거늘, 중생은 여러 가지 기근이 낮아 쾌락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어 장님이 되니, 이와 같은 무리들을 무엇으로 제도할까?` 이때에, 여러 범천왕들과 여러 하늘들과 제석천과 세상을 수호하는 사천왕과 아울러 대자재천과, 그 밖의 여러 하늘의 무리들과 또 수많은 권속들이 공경하고 합장하여 예배한 후에, `가르침 설하소서` 나에게 청하니라.
내 스스로 생각하니, `만일 불승(佛乘)만 찬탄하면 고통 속에 빠진 중생 진리에 눈이 멀어 이 가르침 믿지 않고, 믿지 않아, 법 깨뜨리면 삼악도에 빠지리니, 차라리 내 설법 않고 빨리 멸도할까` 생각타가 곰곰히 생각하니, `과거 여러 부처님들 방편으로 행하였으니, 나 또한 얻은 지혜, 셋으로 나누어서 설하는 것 마땅하다.`
이런 결심 하였을 때에, 시방의 부처님들 모두가 나투시사 맑은 목소리로 나를 위로하시는 말씀, `장하도다, 석가모니여! 세상에서 가장 높은 대도사가 위없는 진리 얻으시고 일체의 부처님들 따라 방편력을 쓰시고자 하네. 우리 또한 모두가 미묘한 최고 진리 얻었건만 모든 중생 위해서 삼승으로 분별하여 가르침을 설하였소. 지혜 적은 사람들은 소승법만 듣기 원해, 자기 성불 믿지 않아, 방편으로 분별하여 성문, 연각, 보살의 경지 여러 가지 설했으나, 이렇게 비록 삼승을 설했을지라도 결국엔 오직 보살만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나이다` 하심이라.
사리불이여, 바로 알라. 나는 그 거룩하신 부처님들의 깊고 맑은 미묘한 목소리 듣고, `나무 불(南無佛)`하고 말했노라.
이런 생각 다시 하되, 혼란한 세상에 내가 난 것은 이 세상 제도 위해 출현했으니, 부처님들 설하신 대로, 나 또한 방편 써서 중생 건지리라.
이렇게 생각한 나는 바라나시(波羅奈)로 갔지만 제법은 실상(적멸)이라는 진리를 말로써 설명치 못해, 방편력을 가지고 다섯 비구들에게 사제, 팔정도, 중도 등의 가르침을 설하니, 그 이름이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곧 열반(涅槃)이라는 말과 아라한(阿羅漢)과 아라한의 집단인 승가(僧伽)라는 말이 생겼으니, 이로써 불(佛), 법(法), 승(僧)이라는 명칭이 처음 생겼노라. (중략)
사리불이여, 바로 알아라. 내가 불자들을 보니, 불도 구하는 뜻을 가진 사람 한량없는 천만억인데 모두 공경심 가지고 부처님 곁에 모이니, 지난 세상 부처님들 섬기며 방편으로 설하신 가르침 들었노라. 내가 이제 생각하니, `여래께서 출현함은 부처님 지혜 설하는 것, 지금이 바로 이때로다.`
중생이 정각(正覺)의 교(敎)를 듣고서 깨달아 알 수 있게 된 때에 "지금이 바로 이 때"라고 시기가 왔음을 선언하시고 비로소 일대사인연을 밝히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래는 높고 존귀하며 지혜는 심원하여 오래도록 이 요긴한 법을 침묵하고 속히 힘써 설하지 아니하였노라. 지혜 있는 이가 만일 들으면 곧 능히 믿어 해득할 것이나, 지혜 없는 자는 곧 의심하여 영원히 잃게되리라."(약초유품)
라고 설하셨음과 같이 근기가 아직 미숙한 이승(二乘)들은 대사(大事)를 들을지라도 신해(信解)를 얻지 못할 뿐더러 도리어 의혹을 품어 믿지 아니하는 죄과를 범하지나 ?않을까 하고 설하시기를 꺼려하셨던 것입니다.
어느 세상에서나 지혜로운 사람보다 무지(無智)한 사람이, 어진 사람보다는 어리석은 사람이 더 많은지라, 이러한 까닭으로 부처님께서 성불의 묘법(妙法)을 함부로 설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중생의 근기를 길러주시기 위해 42년간이나 방편을 설법하신 것도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자비를 중심으로 하여 부처님 일대의 교법을 우러러보면, 여기서 모든 경전의 설상(說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각각 그 경전에 설해 있는 내용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지가지의 법을 설하되 방편력으로써 하였으니 40여년에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노라. 이런고로 중생이 도를 얻음에도 차별이 있어 속히 무상보리를
이룩하지 못함이라.(무량의경 설법품)
법화경을 설하시기 전 42년 동안에 설하신 모든 경전은 중생의 근기와 중생의 욕망 등에 알맞도록 설하신 교인지라, 중생의 근기는 천층만층이요, 중생의 욕망은 가지각색이니 이에 응해서 설하신 교도 역시 천자만홍(千紫萬紅) 여러 가지일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교상(敎相)이 여러 가지라면 그 내용이 또한 많고 복잡하게 되는 것은 부득이한 일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성품과 욕망이 한량(限量)없는 고로 설법도 한량이 없느니라. 설법이 한량이 없는 고로 그 뜻도 또한 한량이 없느니라."(무량의경 설법품)고 설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40여년의 모든 경전에 설해 있는 교는 그 하나 하나가 각각 다르고 독립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일관성과 통일성이 없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인도하는 교의 취지에 어긋나는 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갑에 대해서는 저렇게, 을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한 것으로서 높은 곳에 서서 전체를 대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설법을 듣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도 가지가지여서,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무상보리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요컨대 과거 42년 동안에는 부처님 출세의 본회를 아직 밝히지 않았다고 선언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원래 부처님의 설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하나는 `수타의(隨他意)`의 교요, 하나는 `수자의(隨自意)`의 교입니다.
수타의의 교란 설법을 듣는 중생의 근기와 욕망에 따라 그에 알맞게 설하신 교요, 수자의의 교란 설법을 듣는 사람의 근기나 욕망에 관계없이 부처님 자신의 의사에 따라 설하고자 하시는 바를 그대로 설하신 교입니다. 앞에 것을 방편교(方便敎)라 하고 뒤의 것을 진실교(眞實敎)라 합니다. 방편교는 또한 권교(權敎)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방편교라고 해서 허망하거나 거짓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세상에는 "거짓말도 한 가지 방법"이라는 말을 하는데 거짓과 방편은 비슷한 것 같지만 전연 다른 것입니다. 불교의 방편은 절대로 허위가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