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 그래봐야 남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 티비 프로그램을 모두 섭렵하느라 늦은 밤에 잠이 들었어도
역시나 몸은 제 시간을 거르지 않고 일어나는데 바깥 날씨가 수상하다.
어제도 내리는 비 덕분에 산책을 거르고 저절로 일어나진 시간에 모처럼 한가하게 나만의 새벽 시간을 가졌었다.
오늘도 물론 제 시간을 거슬리지 아니하고 몸은 일어났지만 하늘이 컴컴한 거다.
조바심에 일단 바깥으로 나가 하늘을 살펴보니 아주 가는 실비가 내리고 있다.
억수로 내리는 비도 아닌고로 하여 비옷을 챙겨들고 산책을 나섰다.
하지만 어둠이 허공을 건너가지 못한 채 여전히 하늘을 맴돌고 있고
혼자 걷는 제 발걸음에 스스로가 놀랄지경인데 가늘가늘한 비가 굵은 비로 내릴까 말까로 밀당을 하고 있다.
그래도 뒤돌아서지 아니하고 논둑을 따라 걷는 그 재미와 묘미는 사실 이왕 걷자고 나온 건데...싶은 마음 때문이다.
어쨋거나 그렇게 저 혼자 걷는 길도, 동행이 있어 수다삼매경으로 걷게되는 논자락 길도 사실은
하루하루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스마트폰에 저장된 것들을 들으며 걷는 재미도 만만치 않지만
또 때로는별 생각 없이 몸이 휘두르는대로 무심하게 아무렇게나 휘적휘적 걷기도 한다.
와중에 많이 즐겨 들었던 팬텀싱어 녹음 파일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여 어떤 이유라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암튼 그렇게 그날 그날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농군의 아내가 보여 인사를 하자니
오늘은 농군의 아낙이 한숨을 쉬면서 이리와 보라며 손짓을 한다.
"아, 멧돼지가 간밤에 우리 밭을 죄다 헤집어 놓았으니 앞으로 어쩌나? 속상해 죽겠네..."
"어머, 어쩐답니까. 완전히 망가뜨렸네? 저희도 그래요...요즘은 멧돼지는 안오는데 고라니가 완전히 저희 뜨락을 장악해서
제 성질대로 이것저것 초토화 시키고 잠식을 해버리는 바람에 이젠 텃밭은 포기했어요"
"정말 화가 나서 죽겠네....나라는 왜 멧돼지를 못잡게 하는지 몰라. 멧돼지 잡아달라고 신고를 해도 오지도 않고. 완전 다 망쳤어.
멧돼지가 헤집어 놓으면 아무 것도 살아남지를 않잖아"
아주머니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만큼이라는 것이 곁에서도 느껴져 절로 움찔하다가
"어쩌면 좋아요...정말 속상하시겠다. 우리는 본래 농사가 직업이 아니지만 아주머니는 정말 화가 나시겠어요. 본업이 농산데"
그 아주머니는 오다가다 만날 때 마다 자신이 경작한 것들로 꼭 뭔가 먹을거리를 쥐어주시곤 하셨다.
헌데 올해는 가뭄이 길어서도 여러 작물이 제대로 된 것이 없고 그나마 비가 와서 해갈이 된 논을 보며 한시름 덜다가
밭농사에 전념을 하며 또 다른 작물에 심혈을 기울이고 계셨던 터라 더욱 화가 날만도 했다.
그런데 그 노 부부의 수고는 아랑 곳 하지 않고 그놈의 멧돼지란 놈이 땀으로 일군 밭을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간 것이다.
일년 밭농사 도로아미타불 인 게다.
그 부부는 참으로 부지런하다.
동네 다른 어른들이 아직은 단잠에 빠져 있을 때 일찌감치 일어나 논과 밭을 살피고 경작을 해대셨다.
일년 내내 쉬는 날 없이 자신의 몸이 허락하는 한 만사 제쳐놓고 농사에 매진을 하셨던 거다.
그렇게 온갖 허드렛 일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일구고 가꿔 햇살과 바람과 노력을 거쳐낸 그 땅의 주인들이
굽은 허리를 펼 즈음이면 번듯하게 일궈낸 땅의 작물이 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아는 까닭에
소출이라도 나와 나눔을 받을 때면 그들이 흘린 땀과 노고와 더불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땅이란 것은 노력에 대한 결과물을 그냥 주지는 않는 법이요
일한 만큼 노력의 대가를 결실러 치뤄주듯이 확실하게 보여주는 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또 농사이기도 하다.
좌우지간 오늘 아침의 산책길 소회는 이쯤 해두고 행복했던 어젯밤을 돌이켜 보자면
오매불망 한 마음으로 반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 싶은 생각이 들만큼 눈과 귀가 호강을 했다.
지난 시즌 1을 마친 "팬텀싱어"의 부활이 바로 그것이다.
2017년 구정 무렵 팬텀싱어가 끝나고도 여운은 오래도록 이어져 지금도 개인적으로 음악파일을 저장한 채로
운전을 할 때나 집에서 뭔가를 하면서도 늘 팬텀싱어의 노래들을 틀어놓고 듣고는 하였다.
그런고로 계절 내내 언제 팬텀싱어를 한다는 말인지 궁금해 하다가 6월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내심 기대하였건만
그 유월이라는 것은 시즌 시작의 준비 기간이어서 예선전을 비롯한 기타 등등이 필요한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괜히 들뜨고 좋았던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JTBC 티비 프로그램 예고편을 통해 "팬텀싱어 스페셜" 편이 방영될 예정이라는 안내를 보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죄다 알림을 띄웠다....오지랖인 게지.
그렇게 만난 어젯밤 팬텀싱어는 역시나 였지만 사실 처음의 열정보다는 어쩐지 2프로로가 부족해 보였다.
물론 나름 각 도시를 돌며 혼연의 힘을 다해 공연을 하였을 터이고 막바지 마지막 공연이어서
조금은 허전하고 아쉬움이 남을 무대를 선사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늘상 예전의 팬텀싱어에서 들려주었던 노래들을 너무 많이 들었던 관계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일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도 명불허전의 무대를 보여준 것만은 사실이지만 흉프레소의 권서경이 출연하지 않아 아쉬움이 많이 남겨진 무대라는 생각?
어쨋거나 다시금 팬텀싱어 출신들의 무대를 다시 만난 기쁨은 절대적이다.
그런 까닭에 시즌 2에서는 또 다른 매력과 황홀지경을 선사받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팬텀싱어의 호강을 누리고 채널을 돌려 TVN의 "알쓸신잡"의 감독판을 프로그램 결산하자는 의미로 시청하였다.
역시나 소문난 프로그램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수다도 저렇게 맛깔스럽게 고품격으로 할 수 있으며
그 풀어가는 방식이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그러면서도 새로운 지향점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고는 대만족이었던 것이
그냥 저절로 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절묘하게 조합을 이룬 패널들과 그들을 불러모은 나영석 피디의 힘과 능력이 십분 발휘된 멋진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남의 말을 듣고 경청하며 또 다른 방향으로 전환해가기도 하면서 시작의 첫점을 잊지 않고 맥락을 이어가는 고품격 수다.
그 수다의 뒷면에는 출연진 패널들의 오래된, 갈고 닦은 그러나 품위스럽게 펼쳐져 나오는 내공이 건재해 있었을 것이다.
각자의 마력을 한껏 발휘하면서도 다른 이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하지 아니하고 주제에 대한 잣대가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간의 대화에서 격차를 느끼지 아니하게 수평의 지각을 넘나든다는 것,
쥔장이 좋아하는 이야기 방식이기도 하고 찾아드는 사람들과 어울려 늘 차를 마시며 풀어내는 담론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고로 알쓸신잡은 그야말로 쥔장에게 꼭 맞는 프로그램이자 즐겨하는 프로그램 이었건만 종영된다니 그 또한 아, 쉽,다.
그러나 뭐든 아쉬울 때 , 박수 칠 때 떠나라고 했던가?
다시 제작된다면 처음의 강렬한 인상만큼이나 획기적이지는 않을 것 같지만 다시 건재해도 좋을 프로그램인 것만은 확실하다.
쥔장이 각자의 매력 점수로도 후하게 주고 싶은, 이름 석자만으로도 멋진 유시민을 비롯한 맛컬럼이스트 황교익,
박학다식 소설가 김영하. 과학자 정재승...이런 조합을 다시 볼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딱딱하고 지루하고 고루할 것 같았던 그리고 일방적으로 주지시키고 편향적으로 진행되는 인문학을 표방하지는 않아서도 좋았지만
결국엔 살아가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것을 내세운듯한 프로그램.
인간미도 보여주었으며 그들의 깊고 넓은 그러나 더러 얕았던 지식까지도 모두 드러내며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자신들의 적나라함을 드러낸 채로 지식의 모든 소산물을 티비라는 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이거 실화냐? 싶을 정도로 특별하게 다가와서 말이다.
그런 "알쓸신잡"같은 프로그램은 그래서 요즘은 더욱 더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절실하기 까지 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의외로 많은 의미 부여를 하였으며 고정팬이 생기기까지 하였다.
말하자면 개개인이 살면서 각자가 추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삶을 추구하면서 더 나은 접점을 찾아가는 일상이 매우 소중하다는 것도 느끼게 해준
아주 고마운 프로그램으로서의 면모도 특별했던 "알쓸신잡"은 이제 작별을 해야 하고 그만 안녕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와 시즌 2로 안방을 점령하게 될 날을 기대해 보겠다.
오늘은 비가 소강 상태인 듯하다.
그러나 장담 할 일은 아니겠다.
첫댓글 남자들의 수다야 정치,군대,축구라죠.
정치예기 그만하자고 하면서 군대예기 끝에 정치 예기로,
축구예기 끝에 다시 정치로...
정말 쓸모없는게 사내들 수다죠.
그런데 저런 고급 수다도 있더군요.
모두들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해서 더 좋았어요.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저 들의 수다 끝은 책이더군요.
항상 책 이야기로 마무리 되고,독서량에 두 번 놀랐습니다.
그러게요...이미 첫회에 매료되어 한번도 빠지지 않고 시청하였지만 여전히 놀랍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대화 방식이라 더더욱....물론 깊은 내공은 경험의 소산물이요 그 밑바닥에는 책이라는 것이 존재할 터.
끊임 없이 독서하고 자신만의 경지에 이르는 것.
저 역시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저는 별기대 안하고 봐선지 나름 만족했답다 시청시간을 미리 알려줘 고맙습니다 거듭~!
ㅎㅎㅎㅎ 원래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하는 법.
그것도 제 몫 일터...그래도 역시나 싶은 팬텀싱어 였습니다.
다음 주 스페셜 2 역시 어떻게 보여질지 흥미진진 하구요
퍈텀싱어 본 방송 2 또한 높은 기대감으로 흥미가 넘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