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2:16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개역개정판)
대학 교수님 한 분을 알고 있다.
산업안전과 관련한 업무를 하셨고
심사도 많이 나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퇴직하셨는데,
정말 말씀을 막 하시는 분이었다.
“나, 나는 세,세상에 급(겁)날 게 항개도(1개도) 어,엄따.”
약간 말더듬이 있었으나
장애가 아닌 급한 성격일테지.
많이들 그러하듯이
산학연 관련 법인을 세워놓고
지원금이나 정부 프로젝트를 많이 따오셨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그 분과 만날 때면
항상 최대한 살을 많이 빼기 위해 노력했고
말은 더 적게 하려고 노력했다.
사람이 있는 데서나 없는 데서나
누구 누구 살쪘다. 엄청 많이...
회사 밥이 맛있나 보다...
한 번은
양 손을 크게 펼친채로
“이, 이만큼이나 살이 쪄가지고, 이야..” 그러시는데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심사에 대한 자격이 있는데다가
컴플레인을 본인이 관장하기에
그리고
주로 사장님들이나 의사결정권자들이 아닌
실무자들에게 향하는 경우인데다,
중소기업 사장들의 딸이나 며느리라고 해도,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말을 조심하는 법은 없었다.
교묘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묘하게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만약 문제를 삼는다면
회사의 다른 부분에서 문제를 삼아버릴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눈치 없는 사람(들) 빼고는 알고 있다.
회사든, 누구든 꼼짝 못하게 하는
안전 관련한 심사 담당자의 권한은
참으로 강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으나
문제를 문제로 삼지 않을 수 있는 묘한 위치에 있는 자들은
기가 막히게 본인의 위치를 잘 안다.
물러갈 때도 아셨을까?
교수님 퇴직 이후
어느 법인의 대표로 있다는 말씀을 들었고
불쑥 나타난 그를 피하게 하고자
다른 직원들을 모두 토요일 근무에서 배제시키고 혼자 나왔다.
어김 없이 나가면서 한 마디
“사, 살 좀 쪘어, 과,관리 좀 해, 나처럼.. 나는 마,마,마라톤도 한다.”
뇌와 혀에 여과 장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도 이번에는 제어가 안되었다.
“아, 교수님, 그런 말씀 좀 하지 마시죠. 몇 kg나 뺐는데..”
사실, 그 교수님이 나타나기 전에 급격하게 관리해서
금새 빠졌던 것이었고
조금만 관리를 느슨히 하면
바로 살이 다시 쪘는데
급작스럽게 나타난 데에는 별 도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몇kg 뺐는지는 정확하지도 않고
다시 찌기도 했으니 뭐..
그러면서 드는 생각
그 정도 수욕을 참지 못해서
금식기도까지 하며 살을 빼는 성질머리는 무엇이며
그 정도 모욕을 받기 싫어서
퇴직한 양반한테 ‘당신 힘빠졌으니 함부로 말하지 마라’는 사인을 준 심성은 무엇인가
말씀으로나
꿈으로나
환상으로나
살 빼라는 말씀을 주시지 않고
주로 이웃들에게 주신다.
기분 나쁜 말을 한다는 것은
수욕을 참는 슬기로움(잠 12:16)을 드러내는 것
그 교수님한테 드러나든 말든 그것은 내가 알 바 아니고
그 수욕을 참아냄으로써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더 큰 수욕은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뒤
그 뒤에 올 것이기 때문에
순간 욕먹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버리고
먹는 것도 좀 참고
운동하기 싫어서 누워 있는 것도 좀 참고
무엇보다
당장 분노를 드러내는 모습을 참자.
부산 사람은 인정이 많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댓글러의 명언이 있다.
부산 이외의 지역에 가서
부산에서 운전하듯이 하면
정말 큰 일 나는 수가 있다.
대전이나 여수처럼
과속 단속카메라가 많아서
속도를 줄일 수 밖에 없는 곳에서의 운전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면
나의 분노를 조절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뜻일테니
특히 대전은
전국 최초로 2008년부터
시내버스에 카메라와 GPS, 자료전송장치를 장착한 시내버스 단속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면적당, 인구당 카메라 단속대수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시내만 가도
부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내 주행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넘어 느릿~느릿~한 것을) 알 수 ... 있..다.
분노도, 수욕도, 식욕도, 욕망도
빨리 빨리 가지 못하면 답답해서 견디지 못하는 성미도
참아내야겠다.
내힘으로 안된다는 것을 아니
다시금 성령을 의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