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시장 / 정성려
새벽 4시다. 계획대로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 조금 늦게 잔 탓인지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는다. 눈을 비비며 억지로 몸을 세우고 비틀비틀 욕실로 들어가 대충 고양이세수를 했다. 그때서야 정신이 든다. 주섬주섬 챙겨 자동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요즘 먹어야 제 맛인 고들빼기김치를 담을 요량으로 도깨비시장에 가려는 것이다. 여름 내내 너무 가문 탓에 연하고 싱싱한 채소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연약한 채소들도 긴긴 가뭄에 살아남기 위해 버티고 버티다 보니 쇠심줄처럼 강해졌지 싶다. 고들빼기와 쪽파를 사려면 도깨비 시장을 가야 좋은 물건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서두는 것이다.
도깨비시장에 도착했는데도 어둠이 걷히지 않는다. 날이 새려면 아직 한참은 있어야 할 것 같다. 24절기 중, 열네 번째 절기인 처서와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열다섯 번째 절기인 백로가 지났다. 밤낮의 길이가 같은 열여섯 번째 절기 추분이 코앞이다. 그러다보니 무덥던 여름보다 밤이 길어졌다.
말만 듣던 도깨비시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이 지금의 남부시장에 있는 새벽시장이다. 도깨비 시장은 예전에 어머니가 거의 매일 농사지은 채소를 보따리에 싸서 머리에 이고 다니며 장사꾼들에게 팔아 시동생과 6남매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수 있었던 삶의 터전이었다.
40년 전. 어머니를 따라 남부시장을 가 본 적이 있었다. 강산이 네 번은 변했을 지금, 상가들은 현대식으로 변했다. 그 때와는 너무 달라진 모습이다. 그 옛날 남부시장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한 가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어두운 새벽에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점이다. 어둑한 그 시간에도 농산물을 팔고 사려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흥정하는 소리들로 아우성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낮에는 논밭에서 일을 하시고 어둠이 내리면 시장에 내다 팔 채소들을 거두어 오셨다. 제멋대로 자란 채소를 곱게 다듬고 단을 지어 상품가치를 높게 만드셨다. 잠은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3시에 일어나 경운기에 싣고 도깨비 시장으로 팔러 가셨다. 우리 것뿐 만 아니라 동네 여러 집의 채소도 모아 함께 싣고 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더 위험한 것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옆자리에 앉아 가셨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돌발 사고가 생긴다면 여지없이 땅바닥에 떨어질 게 분명하다. 동네아줌마들은 채소를 실은 짐칸에 앉아서 가셨다. 8km가 넘는 거리를 경운기로 다닌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아찔한 일이었다.
경운기는 농사를 지을 때 운반수단으로 사용하는 농기계다. 농기계가 시내 도로를 다니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간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을 뿐더러 많지 않은 채소를 용달차를 임대하여 싣고 가기에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경운기로 시내도로를 다니면서 위험한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다고 했다. 별 일이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던가. 몇 해가 지난 뒤 아버지는 1종 보통면허를 취득하고 용달차를 구입하여 안전하게 도깨비 시장을 다니셨다.
아버지는 시장 입구 좁은 자리에 어렵게 경운기를 주차하고 채소보따리를 내려놓은 뒤 얼른 빠져나와야 했다. 어머니에게 덩치가 큰 채소 보따리 여러 개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편치 않았으리라. 어머니 혼자서 많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도깨비 시장으로 옮겨야 했었다. 어머니는 동네아줌마들 머리에 먼저 채소보따리를 이어 드렸고 그러고 나면 우리 채소보따리는 어머니 머리에 이어 줄 사람이 없었단다. 어머니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어렵게 부탁하곤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항상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몸에 배어있었다. 어머니가 채소 보따리를 풀어놓고 두리번거리며 채소 임자를 기다리던 그 자리는 어디쯤일까?
아버지는 큰 채소 보따리와 어머니를 내려드리고 빈 경운기를 몰아 집에 오셨다. 새벽길을 재촉하여 아버지가 집에 오실 무렵이면 먼동이텄다.
‘빈 깡통이 소리가 더 크다.’는 속담이 있다. 이럴 때 인용하는 말은 아니지만 채소 보따리를 다 내려놓고 집에 들어오는 빈 경운기는 아버지의 고단함을 말해주듯 더 요란하게 털털 거렸다. 어머니는 채소를 장사꾼에게 적당한 가격에 팔고 아침식사를 준비할 무렵이면 첫차를 타고 돌아오셨다. 멀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걸어오시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