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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을 준비해서 합격한 대학교 한 후배의 수기입니다. 경제학과이고 합격당시 27세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며 글은 익명으로 게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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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융권에 대한 로망
여느 남학생들처럼 저도 2010년 여름에 군대를 제대한 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7월 전역 직후 바로 토플 학원을 끊어서 교환학생 쓸 토플점수를 만들고
군복학생 학고 기준은 3.7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가을학기 복학한 뒤 다른 복학생들처럼 열심히, 성실히 학교를 다녔습니다.
여느 남학생들처럼 군 제대 후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공기업이나 고시는 제 적성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대기업을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주 요사스러운 책 한권을 읽게 되는데
그 유명한 '파이낸스 커리어 바이블' 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제가 모르던 투자은행 종사자들의 이야기가 나와있었고
한창 의기 충만해있던 복학생의 마음에 야망을 심어주기 충분했습니다.
왠지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골드만삭스에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히 권력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이 부유하지 못했던 만큼
젊을 때 밑천 없이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본인들 연봉을 '한장, 두장' 식으로 표현하는 금융권 종사자들은 제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복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 꿈은 뱅커,
즉 외국계은행 프론트 오피스에서 일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솔직히 외국계은행 종사자들 자체가 뽀대있어 보인다는 것 뿐이었지
정확히 무슨 분야가 있는지도 몰랐고, IB가 뭔지 리서치가 뭔지 트레이딩이 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계은행에서 일하려면 실력, 영어, 네트워크, 운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데
졸업하기 전까지 이러한 것들을 갖추기 위해
복학 첫 학기에 상대 내 한 학회에 들어가서 같은 꿈을 지닌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또 이듬해에는 교환학생으로 선발되어 1년 동안 미국에 갔다왔습니다.
2. 실패
교환학생을 가기 전 외국계 회사 재무팀에서 한번의 인턴을 경험하였고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다시 인턴을 잡기위해 노력했습니다.
외국계은행에 들어가려면 업계에서의 인턴 경험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커리어연세에 뜨는 3~6개월짜리 외국계은행 인턴 자리에는 전부 지원했습니다.
GS, MS 같은 유명한 미국계를 비롯하여 유럽계, 싱가폴계 가리지 않고 썼고
DCM, M&A, Research, Sales, Trading 등등 무슨 일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닥치는대로 면접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대략 10군데 조금 안되는 곳들의 면접을 보고나서야
결국 한 유럽계 은행의 트레이딩 인턴 오퍼를 받았고
5개월동안 인턴을 할 수 있었습니다.
IBD 같은 증권 부문 말고 은행 부문의 경우
많은 외국계은행 서울지점들이 '딜링룸'이라는 자금부 프론트오피스와 기타 백오피스로 나뉘어 있는데
제가 일했던 곳은 딜링룸 내에 있는 트레이딩 데스크였습니다.
그야말로 제게 있어서는 신세계였는데
하루에 그 작은 딜링룸에서 거래되는 액수가 어마어마했고
백만달러를 '한개' 라고 표현하는 것도 좀 신기했습니다.
또 제가 했던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바로 '밥 배달'이었는데
장중에 트레이더들이 자리를 뜰 수 없으므로
배달음식을 주문하거나 외부에서 식사를 픽업해오는 것이었습니다.
트레이더들이 책상에서 밥을 먹으며 주문을 넣고 가끔 브로커가 실수하면 호통을 치는 것도 보면서
시중 국내 증권사 사원급들이 맡아서 하는 오퍼레이션 업무들을 소화했습니다.
확실히 딜링룸 안에서 주워들은 현직자들의 연봉은 상상하던 수준 이상이었지만
인턴이 아닌 정규직으로 그러한 곳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힘들어 보였습니다.
일단 정규직 헤드카운트가 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그러한 자리가 난다고 하더라도 따로 어디에 공고가 올라오기 보다는
업계 내의 지인들 혹은 회사 내 인턴, 계약직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 때문에
많은 주니어들이 계약직 기간을 연장해 가면서 정규직 오퍼 자리가 생길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계약직 트레이니 자리를 잡고 계속 도전해볼까 싶었지만
인턴을 하면서 많은 뛰어난 사람들을 보고
나도 저렇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감이 다소 하락했고
외사 인턴을 거쳐 국내 대형 증권사를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인턴이 끝나고 바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국내 모 증권사의 여름 인턴을 시작하게 됩니다.
확실히 국내사는 외국계와 분위기가 많이 달랐는데
직급에 따른 상하 수직 관계도 더 명확했고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이 여름 인턴은 정규직 전환 전제형 인턴이었기 때문에
저를 포함 동기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고
어떻게든 상사들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달이라는 짧은 인턴 기간 동안 실력을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떤 친구는 회식 다음날 부서 사람들 책상에 컨디션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인턴 기간이 종료되고 최종 전환 면접을 보았는데
80명이 조금 안되는 동기들 중 50명 이상이 전환된다는 루머도 돌았지만
결국 30명 미만의 인원만이 전환되었고
저 역시 오퍼를 받지 못한 상태로 하반기 공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9월 초에 전환 공지가 떴고
나름대로 정규직 전환을 자신하고 있었는데 결국 오퍼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굉장히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자니 당장 영어점수는 무토익에 오픽 IH밖에 없었습니다.
인턴 전환에 실패한 것을 계기로 내가 금융권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돈을 많이 벌고 젊을 때 간지나는 삶을 사는 것 이외에는
딱히 금융권에 목매며 노력했던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에 들어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몇년동안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여러 대안들 중 스스로의 가치관에 비추어보았을 때 가장 나은 대안이 금융권이었는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경제학이라는 전공으로 갈 수 있는 분야들 중에
스스로 재미있게 할 수 있을만한 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주변에 금융권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어떤 친구는 대학원 수준 이상의 학문적 기초를 가진 친구도 있고
어떤 친구는 외환시장, 이자율시장을 보고 분석하는 것을 막 즐기면서
금융이라는 일 자체를 좋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그냥 여행 다니는거나 좋아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에 대한 로망만 가득할 뿐이었는데
단지 돈이라는 목표를 좇아 지난 몇년간 스펙을 쌓고 인턴을 했던 것입니다.
3. 결심
그 순간, 외국계 재무팀 인턴 동기였던 한 형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딜링룸에서 인턴할 때 술을 한번 마셨었는데
그 때 당시 이 형은 시중은행의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형의 입에서 아주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데
비행기조종사가 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회사를 다니며 준비해서 면접을 봤고
최종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딜링룸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때만 해도
스스로 외사 인턴을 면접보고 뚫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이 컸었고
나도 곧 뱅커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에
이 때 했던 이 형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아 이런 길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저도 고등학교 때 공군사관학교 지원을 하려다가 포기했었던 만큼
파일럿에 대한 로망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경제학과 4학년이 된 시점에서 파일럿이라는 옵션은 매우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증권사 인턴 전환이 안된 시점에서 왜 그랬는지는 내 자신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 스스로가 행복해지려면, 딜링룸에서 일하는 것 보다는
조종사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지난 대학생활 동안 가슴 설레거나 기뻤던 순간들은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때가 아니라
혼자 네팔여행을 떠났을 때, 미국 교환학생을 갔을 때, 베트남 해외봉사활동을 갔을 때 등등
어디론가 떠났을 때 였습니다.
'나 처럼 열심히 준비한 뛰어난 인재'를 받아주지 않는
금융권에 대한 반항심리? 비슷한 감정까지 더해져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4.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법
단순히 헛된 꿈이 되지 않기 위해 실질적인 방법들을 나름대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찾아본 결과를 한번 쭉 적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민항기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크게 군경력과 민경력으로 나뉩니다.
- 군경력
(1) 공군사관학교 : 임관하여 졸업 후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 -> 15년 의무복무 후 민항사에 취직
(2) 항공대, 한서대 등의 항공운항학과 공군 ROTC : 조종 특기 받고 전투기 조종사 -> 의무복무 후 민항사에 취직
(3) 일반 대학 조종 장학생(재학생만 지원 가능) : 장학금 받고 졸업 후 전투기 조종사 -> 10년 의무복무 후 민항사에 취직
(4) 일반 대학 사후조종장교(졸업생 지원 가능) : 전투기 조종사 -> 10년 의무복무 후 민항사에 취직
> 군 경력은 돈이 들지 않고 가장 확실한 확률로 조종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이지만
10~15년의 의무 군복무는 국가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 없이
단순히 민항사 취직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에는 그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또 일반대학 조종장학생, 사후조종장교로 들어가더라도
교육 기간 중 그라운딩(조종 특기를 받지 못하고 일반 장교로 분류되어 복무)될 확률이 상당히 높아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 민경력
(1) 대한항공 APP과정 : 자비(대출 불가) 2억 이상 소요, Phase1~4 훈련을 거쳐 비행시간 1000시간을 채우고 부기장 입사
(2)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 : 자비(대출 가능) 1억 정도 소요, 2년 남짓 훈련을 거쳐 비행시간 300시간을 채우고 부기장 입사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자체 교육프로그램에 선발되면
조종사 교육을 받고 부기장으로 입사하게 됩니다.
두 항공사 모두 학사학위를 요구하며 신체검사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은 교육비 자비부담 조건이지만 은행을 통해 대출을 해준 뒤
추후 부기장 입사하여 월급에서 교육비를 공제 상환하는 조건입니다.
(3) 울진비행교육원 : 자비를 들여 면장 취득후 취업 혹은 비행시간 타임빌딩을 하고 취업
(4) 국내 비행교육원 : 국내 여러 비행교육원에서 자비를 들여 면장 취득 후 비행시간 타임빌딩 후 취업
(5) 해외 비행교육원 : 해외 여러 비행교육원에서 자비를 들여 면장 취득 후 비행시간 타임빌딩 후 취업
> 항공사의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이 아닌 개별적으로 면장(비행기 조종 면허)을 따는 경우
면장을 취득한 이후 스스로 다시 구직활동을 통해 취업을 해야합니다.
면장 소지 조종사 채용 기준이 '비행시간 000시간 이상' 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 면장을 따고 해당 교육원에 교관으로 취업해 해당 기준 비행시간을 쌓으며 준비를 하거나
아시아나항공 면장운항인턴(비행시간 300시간 필요)등에 지원하게 됩니다.
울진비행교육원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으로 면장 취득 후 250시간만 있으면
아시아나항공 면장운항인턴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소요되는 교육비의 경우 항공사 입사 조건을 채울 때 까지 소요되는 경비가
국내 비교원은 8천정도, 해외 비교원은 1억~1.5억입니다.
말이 1억 2억이지 실질적으로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이 자비로 이런 금액을 부담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결론적으로 민경력을 통한 방법들 중 항공사 입사를 확정지은 상태에서
대출을 받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 뿐입니다.
기타 다른 옵션은 현금 1억 이상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직장을 몇년 다니다가 도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최근 면장 취득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거액을 들여 면장을 따도 항공사에 부기장으로 취업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5. 2013년 하반기 취업
증권사 정규직 전환 실패 후 백수가 될 수는 없어 정신없이 하반기 공채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을 제외한 나머지 옵션들은 모두
직장생활을 통해 돈을 모은 다음에야 도전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 지원 자격은 토익 800이상 & 토스 레벨 5 이상으로
토익 토스 없이 오픽만 있는 제 상황에서는 지원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일단은 어느 회사든 입사를 하고 2014년 상반기에 운항인턴 지원을 하기로 생각했습니다.
이에 작년 하반기에 국내 증권사, 국내 보험사 자산운용부문, 신용평가사 등
시중 은행을 제외한 금융권 공고 뜨는 왠만한 곳들에 모두 지원하고
여기에 더해 각 대기업 계열사의 재경부문으로 지원했습니다.
취직이 안될 경우를 생각해 지원한 겨울 인턴까지 포함하여
총 55군데에 서류를 넣었고 탈락, 겹쳐서 못감 등을 통해
H손보 자산운용, K자동차 재경, L화학 재경, H해상 자산운용, S선물,
외국계 G사 재무, M증권사 본/지점 통합, H생명 자산운용, A보험사
이렇게 9곳의 최종면접을 본 끝에 두 군데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한 곳은 2014년 1월 입사, 한 곳은 2014년 7월 입사 조건이었습니다.
취준 생활은 멘붕의 연속이었습니다.
보험사 자산운용 부문에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 중에는 석사들도 많았고
CPA 소지자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뛰어난 인재들이 많은데
보험사 자산운용으로 들어가봐야 신입은 여신 업무부터 시작한다고 들었건만
그런 업무를 하기에는 이 사람들이 너무 아까운 자원들이었고
금융권 문턱이 점점 더 좁게만 느껴지고 회의감만 들기 시작했습니다.
대기업 재경부문도 마찬가지였는데
최종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증권사나 대기업 재무팀 인턴 경험이 있었고
또 CPA 공부한 경력이 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가장 잊을 수 없던 면접은 모 증권사에서 봤던 최종 면접이었습니다.
이 회사로부터 교환학생 갈때 장학금도 받았고 하여 매우 좋은 회사로 생각하고 있었고
이러한 점을 실무 면접 때 어필하여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최종 면접 때 사장님이 면접자들을 앉혀놓고 했던 질문은
'각자 아버지 직업이 뭔지 한사람씩 말해보세요' 였습니다.
대기업 임원 자녀도 있었고 사업가 아들도 있었는데
어쨌든 제게는 더 이상 추가질문이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탈락했습니다.
이렇게 한 학기 동안 세상 앞에 초라한 스스로를 발견하고
또 그게 내 탓이 아닌 세상 탓 아닌가 라는 위안도 해보고
취업시장이 이렇게 된건 누구 때문인가 라는 의미없는 넋두리도 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최종 합격을 한 두 회사는
비행기 조종사에 최대한 빨리 도전하기 위해 충분히 많은 돈을 주는 곳도 아니었고
또 지금 시점에서는 흥미가 없어져 버렸지만 그나마 계속 도전했었던 금융권도 아니었기 때문에
입사를 포기하고 한 학기 더 취업준비를 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용돈을 안받고 면접비로 생활하던 것도 한계에 부딪히고
돈이 없어 이전에 과외비 모아서 묻어두었던 주택청약통장까지 깬 상황이라
일단 입사하기로 했습니다. 대기업 계열사 재무팀이었습니다.
6. 대기업 재무팀
한달 동안 연수를 받았는데 그룹 내 모든 계열사 신입사원들이 모여서 하는거라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행시 하다가 잘 안되서 취준으로 돌린 뒤
뭐하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지원해서 합격해서 온 형도 있었고
공학 박사를 따고 본인의 특허를 소지하고 있는 연구원 형도 있었습니다.
재밌게 연수를 보내고 부서를 배치받았는데
내심 금융팀으로 보내줬으면 했고 면접때도 어필했지만 전혀 다른 부서로 배치되었습니다.
젊은 선배들은 신입사원 왔다고 매우 잘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업무 특성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곳이라
보고서의 사소한 포맷 때문에 결재를 5번이나 빠꾸 당하는 등
이 곳을 계속 다닌다면 행복하지도 않고 커리어도 쌓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 곳에 다닐 때 예전에 취게에 '우리팀 분위기', '우리팀 분위기_2'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 1차 면접 날짜가 나온 날 바로 사표를 던지고 퇴사하였습니다.
7. 2014년 상반기 취업
2014년 상반기 취업의 최종 목표는
비행기조종사가 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에 합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기업 재무팀을 다니면서 원서를 쓰고 면접을 봤습니다.
이와 더불어 서른 전까지 돈을 빨리 땡겨 비행교육원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관심이 없어져버린 외국계 은행이 가장 돈을 빨리 모을 수 있는 대안이었으며
이 이외에 S전자, H자동차, 건설사 중동근무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2014년 상반기에는 서류를 총 16군데에 썼습니다.
하반기처럼 인적성을 보러 다니고 하는 와중에
외국계 은행 두 곳의 Graduate Program 역시 전형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외국계 은행 한 곳의 최종 면접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8. 외국계 은행
제가 합격했던 Graduate Program은
자금부(딜링룸) 안에 Sales 랑 Trading을 2개월씩 로테이션 근무한 뒤
1년 뒤에 최종 부서를 받고 배치받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1년 동안 런던 본사 연수와 2개월동안의 홍콩 데스크 로테이션이 포함되어 있었고
교육 기간동안은 Trainee로 일하다가 1년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었는데
전환은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시켜주는 조건이었습니다.
합격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서류 70명 통과하여 인적성, 1차면접, 2차면접을 거쳐 단 한명을 뽑는 프로그램이었고
얼떨결에 올라간 최종면접에 앉아있던 경쟁자들은
저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외국 학부 출신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긴장도 더 안되고 마음 편하게 당당하게 면접을 봤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미 파일럿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던 제게
작년에는 그렇게 원하고 노력해도 손에 잡히지 않던 외국계 은행의 자리가 찾아오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만 하면 외국계 은행의 세일즈 혹은 트레이더가 되어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금융권에서 일 했을 때 스스로가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 상태였고
이미 인생에 있어 연봉 자체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뒤였습니다.
결국 5월 말에 입사한 뒤 일하다가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사표를 쓰고 퇴사했습니다.
퇴직 면담을 할 때 비행기 조종사를 하려고 퇴사한다고 말씀드리자
굉장히 당황하시는 표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종사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저를 설득하셨지만
결국 잡기를 포기하시고 사표를 수리해 주셨습니다.
다른 직원분들은 크게 두가지 반응이었는데
젊은 직원분들은 여기 있으면 돈 버는건 시간 문제인데 바보같은 짓이라고 하셨고
나이드신 직원분들은 아직 꿈을 찾아 나갈 수 있는 나이라 너무 부럽다고 하셨습니다.
9.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
아시아나항공 운항인턴 전형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일반대학 출신을 뽑아 2년 넘게 교육을 시킨 뒤 부기장으로 채용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제로베이스에서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 중
당장 현금이 없이 취업을 어느정도 확정지어 놓고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경쟁률이 꽤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추측해본 결과 이번 상반기에는 160명 가량 지원하여
80명이 서류 통과하였고
50명 안팎이 인적성+1차면접을 통과,
36명이 1차 신검을 통과했으며
13명이 최종면접을 통과하여
12명이 최종신검을 통과했습니다.
합격하면 2달 동안의 연수와 4달 동안의 지상직 업무 실습을 마친 뒤
미국에 있는 위탁 비행교육원에 가서 1년 동안 기본 면장(PPL, CPL, MEL, IFR)을 따고
다시 한국에서 추가적인 훈련을 받은 뒤
모든 훈련을 잘 수행하면 최종적으로 부기장으로 채용됩니다.
교육비는 모두 자비 부담인데 은행을 통해 대출을 연계해주어
총 대략 1억 정도 되는 교육비를 빚을 내서 일단 교육 받고
추후에 입사하면 급여에서 공제하여 상환하는 형식입니다.
부기장으로 채용되지 못하면 교육비는 전액 상환해야 합니다.
부기장이 되지 못하는 경우는 매 기수 1명 꼴로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류전형)
지원 자격이 토익800 이상 & 토스 레벨5 이상입니다.
실제 합격자들 평균은 800 후반에 레벨 6~7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서류에 썼던 스펙은
3.91/4.5 토익930 토스180(7)
외국계 재무팀 인턴 1회, 외국계 은행 인턴 1회
항공무선통신사 자격증
미국 교환학생 1년
베트남 해외봉사, 공부방 멘토링, 저소득층 멘토링 등 총 300시간 봉사
증권사 인턴 경험과 AICPA 자격증이 있었지만
굳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쓰지 않았습니다.
항공무선통신사는
굳이 비유하면 은행 준비하는 취준생들이 증권투자상담사를 따는 것과 같은 것으로
굳이 안따도 되고 따는데 3~5일만 벼락치기 공부하면 딸 수 있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면접 때 항공분야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것 같아서
작년 하반기에 취준하면서 겸사겸사 따 놓았습니다.
자소서가 꽤 까다로운데
하반기에 무수한 자소서를 썼지만
운항인턴 자소서로는 쓸 수 없었습니다.
한번도 조종사 자소서는 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예 새로운 관점에서 써야 했고
분량이 1500자 씩 네 문항을 써야 하므로 상당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자소서 문항은
1. 운항인턴 지원 동기 포부
2. 조종사가 되기 위해 평소 준비했던 것에 대해
3. 학교생활/사회생활/봉사활동/연수여행경험
4. 본인이 생각하는 조종사라는 직업에 대해
이렇게 네 가지 문항으로 50자 이상 1500자 미만입니다.
저는 작년 하반기에 사용했던 자소서 소스들을 다시 추려서
조종사 자소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손보고
또 이전에 읽었던 조종사 자서전들을 인용하며 내용을 채웠습니다.
3번 같은 경우는 과거 인턴과 교환학생 경험들을 통해 리더십, 영어실력 등을 쌓아
조종사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는 방향으로 썼습니다.
(인적성 + 1차 면접)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인적성 시험과 1차면접 점수를 합산하여 다음 전형으로 넘어갑니다.
- 인적성
영역이 나뉘어져 있지 않고
언어, 수리, 추리 등등의 문제들이 순서없이 고루 섞여 있는 형식입니다.
조종사 공채라서 막 물리 문제 같은 것이 나오지는 않고
과거 SSAT HMAT 등을 공부하면서 충분히 대비를 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 1차 면접
1차 면접은 팀장 면접과 영어 면접으로 나뉘어 집니다.
먼저 영어 면접의 경우
원어민 면접관과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일반적인 대기업 영어 면접 전형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영어 면접때 받았던 질문은 총 네가지 였는데
(1) 왜 우리가 너를 조종사로 뽑아야 하는가?
(2) 대중문화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3) 서로 다른 크기의 오렌지 3개를 짰더니 쥬스 6잔이 나왔다. 그렇다면 오렌지 4개를 짜면 몇잔이 나오나?
(4) 문을 여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봐라.
몇몇 질문은 대답하는 것 자체가 난해하기 때문에
영어 실력을 본다기 보다는 어느 정도 대답만 잘 하면 통과시켜주는 느낌이었습니다.
팀장 면접은 면접자 여섯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보는데
주로 개인 신상, 지원 동기 등을 물어보시고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직장을 때려 치우고 왜 조종사가 되려고 하는지에 대해
주로 물어보셨습니다.
(1차 신검)
일반적인 입사 신검과 다르게 조종사 신검은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1차 면접을 통과한 사람들이 하루에 10명 남짓한 인원씩 일주일에 걸쳐
아시아나항공 메디컬 센터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1차 신검 때 받았던 검사는
채혈, 소변검사, 키, 몸무게, BMI,
고막반응검사, 청력검사,
폐활량검사, 심전도검사, 혈압측정,
복부초음파, 엑스레이(머리, 가슴, 허리)
시력검사(원거리시력, 근거리시력, 사위검사), 색약검사,
안압검사, 주변시검사, 안구사진
그리고 담당 의사선생님 인터뷰 였습니다.
나안시력(안경벗은시력)이 1.0이 안되는 사람은
각자 지참한 안경을 쓰고 교정시력(안경쓴시력)이 1.0이 넘는지 측정합니다.
나안시력이 1.0이 안된다고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2차 면접)
1차 신검에서 총 36명이 통과하여 2차 면접을 보았습니다.
남자 35명, 여자 1명입니다.
역시나 1차 면접때와 같이 6명씩 들어가서
아시아나항공 사장님을 비롯한 여러 임원들과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질문 내용은 역시나 대부분 자신들의 학교생활, 살아온 이야기, 지원 동기 등인데
1차 면접때 질문을 거의 받지 못했었지만
2차 면접때는 깊숙히 파고드시는 질문들 때문에 꽤나 쩔쩔 맬 수 밖에 없었습니다.
(2차 신검)
2차 면접에서 총 13명이 통과하여 2차 신검을 봤습니다.
2차 신검 때 받았던 검사는
채혈, 소변 재검
운동부하검사, 뇌파검사
시력, 안압, 굴절률, 각막지형도검사, 안과 전문의 진료
그리고 심장초음파검사 입니다.
2차 신검에서 한분이 탈락하셨고
최종적으로 12명을 합격자 오티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10. 끝
외국계 은행에서 때려치고 나올 때
내심 많이 혼날까봐 걱정했지만 오히려 응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전혀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입장에서 힘이 나기도 합니다.
퇴사하는 날 부대표님 한분이
'너 이제 니 인생에 배팅 제대로 한거야'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 그대로, 보장된 길을 뿌리치고 나와
부기장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교육을 받야아 하므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운항인턴 면접을 보기 위해 김포공항에 갈 때 마다
그 분주하고 어수선한 공항 내 분위기에 사로잡혀 흥분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고
어릴 적 허무맹랑했던 꿈 좇아 떠나는 주인공이 된 것 같아 설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앞으로 무인 여객기가 상용화되면 조종사라는 직업이 사라진다' 라고 하시지만
그런 날이 오면 저는 우주 비행사가 되기 위해 도전할 생각이고
또 어떤 분은
'너가 대기업 다닐 때 회의를 느꼈던 것 처럼
조종사를 포함해 어느 직업을 가져도 백프로 만족할수는 없는거다'라고 하시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도전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훗날 은행 때려치우고 조종사가 된 것에 대해 후회할 일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제가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기로 했기 때문에
적어도 당분간은 후회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간간히 조종사에 관심이 있던 분들이 게시판에 있길래
이렇게 장문의 취업 후기를 남기게 되었고
이쪽으로 꿈이 있으셨다면 후회없이 도전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시나 조종사쪽으로 관심이 있으시면
네이버에 하늘세상만들기 라는 카페가 있는데
그 곳이 직장인, 혹은 비전공 학생으로 조종사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ㄷㄷ 그럼 어떻게 해야함?ㅇㅇ
@애로우 ㅇㅇ글쿠낭 조종사되기만하면 그 이상 뽑을수 있으니까 하는거겠지 ㅇㅇ?
@애로우 ㄹㅇ? 왜? 떨어지는건데?
@애로우 글쿠만 거기도 돈만 주면 되는게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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