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할 기분이 아니었던 그 날 오후 4시 무렵
병원영업갈 스케줄을 접고
송이공원에 앉아서 꽃구경도 하며 책을 보다가
머릿속으로는 '남은 시간은 가든파이브로 가서 소를 잡을까' 어쩔까 하다가
때마침 前날 내게 카톡으로 '통화'할 수 있냐고 물었던 친구와
통화를 못한게 생각나서
그 친구에게 연락했더니 1시간 만에 내가 있는 곳으로 와줬다.
친구의 차에 탄 나는 ‘어디 갈까?’ 하고 묻지도 않았고 그 친구 또한 ‘어디로 갈까?’
하고 내게 묻지 않았기에
운전대 잡은 친구가 이끄는 대로 차창밖으로 보이는 길가의 꽃과 건물을 보며
서울을 빠져나와 경기도 어느 모퉁이를 이리돌고 저리돌며
사는 얘기도 하고 드라마 ‘직장의 신’에 나오는 김혜수 멋지다는 얘기도 했다
길가의 많은 음식점들을 지나고 카페도 지나고 큰 옷가게도 지나고 공장도 지나고
더 이상 구경할 게 없는 것 같은 길에서는 후진해서 다시 나오니
배가 슬슬 고파지는 것 같기에
그때부터 '뭘 먹을까' 생각하면서 음식점 간판을 모두 눈으로 읽는다
삼겹살도 백숙도 순대국도 장어구이도 모두 마땅한 메뉴는 아니다 싶고
이 식당 저 식당 지나치고 또 지나치다가 '착한식당'을 가보자 하는 친구의 의견에
동의 하여 검색하니 현재의 위치에서 제일 가까운 착한식당은 없기에 그것도 맘 접고
우리 집 가는 방향으로 가다보니 돌솥 밥 집이 보인다
그래 저거다 된장찌개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것
돌솥 정식을 시켰더니 직접 만든 손두부를 포함하여 무려 20가지의 찬이 나왔으나
젓가락 한 번 안간 반찬도 있으니 남은 찬이 아깝다
밥이 맛있으면 된장찌개 하나로 족한데...
도저히 그 기분으로는 일할 수 없었던 그 날
속상한 내 얘기를 들어주고 꽃구경도 하고
처음 가보는 길도 구경시켜주며 재밌는 얘기를 해준 친구와
밥 까지 근사하게 먹고 집에 오니 10시가 좀 안되었다
내 발칙한 생각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대충 읽으시면서 짐작하셨겠지만
그날 내가 만난 친구는 남자다.
집 앞에 세워준 친구의 차에서 내리면서
내가 손 내밀어 “오늘 내게 시간 내주고 내 얘기 들어주고 밥 사줘서 고마워” 라고 하며
악수를 했고 그리고 친구의 차는 아파트를 벗어났다
친구를 알게된지 삼년만에
먹은 밥 한끼
누구는 그날 나의 모습을 보고
혹시 바람났다고 했을까?
바람~
그런게 바람일까?
나는 금년 들어 이렇다할 영업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으면서
오늘 이렇듯이 바람인가 아닌가 하고 있으니
한심 그 자체이다
이달 나의 목표량 두 대의 기기는 어디다 팔꼬?
내가 파는 물건이 밥솥이나 냉장고 였으면 얼마나 좋을꼬
빚을 내서라도 언니 사주고 어머니 사주고
돈벌어 갚고 그러면 좋으련만.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은데
자꾸 놀구만 싶다
나 정말 바람 났나봐
앗싸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