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해운대였다. 겨울 바다는 참으로 오랜만이었으나 부산은 그보다 먼 과거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공중을 노니는 새들의 부리를 좇다 이내 두툼한 옷을 걸친 행인들의 묵직한 걸음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것만으로 쓸쓸했지만 이런 아릿함도 좋아지는 것이 겨울 바다의 묘미가 아니겠느냐며 없던 호기도 부려본다. 몸이 어린아이가 모래에 걸려 자꾸 넘어지고 입이 어린 연인들의 언행이 파도에 쓸리기도 했다. 나는 금세 그 사람들 틈에 끼어 길을 걸었다. 누군가의 가지런한 발자국을 따라 걷다 멈춰 눈에 담고 몸에 새겼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을 해운대의 겨울. 그 앞에 서서 찬 공기에 섞인 바다의 비릿한 내음을 한껏 들이마셨다.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는 연인
해운대 해변의 풍경
해운대에서 찾은 한국관광품질인증 숙소는 마마게스트하우스. 걸어서 바다와 3분여 거리로 큰마음 먹지 않고도 해변을 산책하기 좋은 위치다. 숙소 바로 앞 길목에는 세탁소, 카페, 마트 등과 해운대 시장이 밀접해 있어 볼일을 보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기에도 좋다.
마마게스트하우스 건물 입구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짙은 커피 향과 빵 냄새가 코밑에 스몄다. 적당히 기분 좋은 온기도 금세 몸에 어울렸다. 따뜻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것은 호텔과 모텔 또는 펜션에서 얻을 편이와는 다른 결이다. 여행자의 기운이 사방에 묻어 있다. 소담스러운 다국적 언어들이 공간을 채운다. 영어가 능숙한 주인과 일어가 익숙한 방문객의 대화가 오가다 이내 손짓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지도 모양의 자석이 냉장고에 붙어 있고 크고 작은 술잔이 그 주위를 채운다. 벽 한편을 가득 채운 이국의 동전들, 기분 좋게 마셨을 술병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선반 위 장식품이 되어 있었다. “잘 놀다 갑니다”, “사랑해요~ 마마게스트하우스” 등 노랗고 작은 포스트잇에 빼곡히 적힌 진심 어린 글귀들은 기분 좋을 하루를 예감케 한다.
포스트잇에 적힌 글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는 이들은 지갑이 가벼운 장기 여행자들이기 쉽다. 그렇다 보니 정작 방의 편의나 실리를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대부분의 시설은 공용이거니와 은밀히 무엇을 하기에 애매하며 불편하다. 딱딱한 침대에 누워 밤새 누군가 코를 골아도 참고 잠을 청해야 하며 성수기인 여름에는 화장실이나 샤워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마마게스트하우스는 그런 편견을 보란 듯이 깨부순다. 객실마다 화장실과 욕조 시설이 딸려 있으며 냉난방 시설은 물론 텔레비전과 냉장고도 구비되어 있다. 게스트하우스지만 4성급 호텔 수준의 편의를 제공받는 기분이다. 건물 전체는 금연이며 객실 내 취사는 불가하다. 대신 공용 라운지에 딸린 부엌에서 간단한 음식 조리는 가능하다.
공용 부엌
방문객들의 사진
마마게스트하우스 라운지 모습
밤 10시가 넘으면 건물의 모든 문은 통제된다. 입실 때 투숙객만 드나들 수 있는 비밀번호를 받게 된다.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 밤낮이 없는 해운대의 특성상 거리에 가득 찬 취객으로 대부분의 건물 화장실은 몸살을 앓기 마련인데 이곳은 미리 예방을 해놓음으로써 자칫 건물 안에서 울릴 쩌렁쩌렁한 고성방가는 물론 수상한 이의 곁을 지나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객실 침구는 매우 청결하다.
객실마다 욕실이 있다.
저녁이 되자 자갈치시장을 향하였다. 부산에 오면 꼭 자갈치시장에서 찬 소주에 ‘꼼장어’(먹장어의 경상도 사투리)를 주문해 숯불에 구워 먹는다. 겨울에는 조금 추워도 기계식 난방이 아닌 작은 난로를 옆에 두고 술 한 잔 하는 노포가 제격이다. 그러면 마음도 몸도 노릇노릇해진다. 돈을 조금 아끼려 일부러 소(小)짜리 양이 적은 꼼장어를 주문했는데 주인은 작은 생선구이도 내어준다. 수많은 프랜차이즈가 대거 입점한 시점에 예전만큼 장사가 잘되진 않아 보이는 모양이지만 자갈치시장 골목은 여전히 맛있으며 사람을 반기고 인색하지 않다. 간간이 들리는 파도 소리에 술 한 잔 기울이는 이곳에서 나는 항상 마음도 기운다.
부
산 자갈치시장의 ‘꼼장어’(먹장어)구이
부산 자갈치시장
다시 마마게스트하우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넉넉하고도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다음 날 아침 들리는 ‘잠은 잘 잤는지 춥진 않았는지, 저기 커피와 빵과 시리얼, 그리고 과일로 조식을 준비했으니 꼭 먹고 가라’는 주인의 말이 따듯하고 다정했다. 우리가 유독 여행에서 힘들어하는 문제들을 마마게스트하우스는 함께 숙고한다. 배낭 하나 메고 남루하게 다닐지라도, 그래서 더없이 좋을 세계의 여행자들과 함께 해운대 앞 골목을 기꺼이 동행한다. 겨울 몸이 조금 차가워지더라도 바다 내음 한껏 움켜쥐고 떠날 여행자들과 커피 한 잔 내어 잠시 벗하는 아침이 마마게스트하우스에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