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지상의 사명을 마치시고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실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당신 혼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모든 이를 데리고 가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복음).
언젠가 들은 이야기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유명한 화가의 전시회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모든 그림은 저마다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반면,
어느 그림 하나는 너무나 평범하였습니다.
그 그림은 수영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한 여인이
해변 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현대인’이었습니다.
도대체 현대인과 해변의 아름다운 여인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곰곰이 그림을 살펴보았더니 이상한 점 하나가 있었답니다.
모래판에 그 여인의 발자국이 없다는 점입니다.
화려하고, 멋있고, 우아한 모습으로 걸어가고는 있지만,
정작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살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어쩌면 지난날과 달리 오늘날 많은 사람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삶의 목적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만 그친 채 실제로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삶의 활기는 나이와 무관합니다.
분명 젊은 나이건만 생기가 사그라진 노인처럼 행동합니다.
그런가 하면 얼굴에는 주름이 있고 흰머리가 성성하지만,
젊은 기운을 확확 내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젊은이건 노인이건 여자든 남자든
‘삶의 활력’을 잃으면 시들어 버린 꽃과 진배없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 안에 ‘삶의 기운’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일는지요?
수없이 성체를 모셨고 수없이 기도와 희생을 바쳤으며
오랫동안 믿음의 길을 걸어왔다면,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봐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분명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인생 역시도 하느님을 향해 가고 있는 ‘길’입니다.
그러기에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습니다.
오르막만 있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오르막만 있는 인생도 없습니다.
그렇게 보이는 사람도 언젠가는 내리막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내리막이다.’ 하고 느끼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끄심에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활기’를 간직하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정상에 오르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내려온 뒤’에 결정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은퇴한 뒤에 힘들게 살고 있는지요?
예수님 안에 ‘길과 생명’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14,6)
우리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리 앞에 있던 길이
뚝 끊어져 버리고
한 걸음 앞 낭떠러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죽음의 문 앞에서
한 없이 서성이게 되지만,
바로 그때,
길이신 주님께서는
우리 앞에
세상을 밝히는
진리의 등불을 들고 오시어
우리가
죽음의 문을 벗어나
생명의 문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리의 길을
비추어 주신다
- 김혜선 아녜스 -
첫댓글 "오늘날 많은 사람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삶의 목적의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입 해 주었지만
별로 의미를 두지않고
건성으로 흘려 버렸는데..
나이들고 북망산이 보이면서 부터
진리의 말씀이 절절하게 다가 오네예.
좋은 말씀 감사하며
머물 다 가니다.
공감가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