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2월 20일, 서울구치소 차가운 시멘트 바닥.
사형 집행 나이프가 목에 다가왔을 때 <사형수 문세광>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은 잘게 부서진 사금파리 같았다.
그가 남긴 최후진술과 가족을 향한 유언의 전문은 이렇다.
"나는 바보였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 대통령께 진정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육 여사의 명복을 저승에 가서도 빌겠습니다. 조총련에 속아서 이러한 과오를 범한 나는 바보였으므로 사형당해도 당연합니다. 어머니께는 자식의 불효와 기대에 어긋난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나의 처에게 말씀 전해주십시오. 아직까지 젊은 나이이므로 재혼하여 제2의 인생을 걸어가도록 말씀해주십시오. 장남은 어리므로 형님 부부가 맡도록 전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아들과 처 사진을 보여주십시오. 처에게는 될 수 있으면 육 여사 묘소를 참배하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은 문세광의 회한의 토로였고, 거대한 허무의 고백이었다. 조총련의 음울한 툇마루에서 세뇌되고 이용당한 청년은 총구를 겨누었으나, 그 총알이 관통한 것은 한 시대의 비극이었고 스러진 영부인의 목숨이었다.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후회와 눈물이 그 짧은 유언 속에 엉겨 붙었다.
세월이 흘러, 그 피비린내 나던 시절의 기록은 먼지를
뚫고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역사적 사실과 사법부의 단죄는 엄혹하게 빛났다. 범인은 처형되었고, 죄목은 명백했다.
나아가 역사적 사료와 외교 문서들의 발굴은 이 비극의 입체적인 실상을 더욱 낱낱이 까발린다.
서울대학교 성상환 교수가 독일 외무성 정치문서보관소
에서 발굴해 공개한 구동독 외교 문서 등에 따르면, 1974년 10월 북한의 김일성은 당시 소련대사와의 접촉 과정에서 문세광이 속했던 민단 내 좌익 세력을 가리켜 "김대중 추종자들"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의 책임을 교묘히 전가하고 비화시키려 했던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난 바 있다.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던 북한 측의 정치적 공작과 음흉한 계산마저도 냉철한 국제 외교 사료를 통해 낱낱이 실체가 증명된 것이다. 이처럼 차가운 문서들은 사건의 진실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조금의 흔들림 없이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자꾸만 그 명백한 진실의 뼈대 위로 살을 붙이고 찢어발긴다. 현대사의 상처를 렌즈 아래 놓고 굴절시키며, 음모의 유령들을 불러낸다. 스크린의 불빛 아래서 비극을 희화화하고, 사실의 자리에 <픽션의
그늘>을 드리운다.
실제로 영화 암살자(들)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작품을 둘러싼 역사 왜곡 및 음모론 재현 논란에 대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닌 철저한 픽션이자 창작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세부적인 주장과 입장을 전했다.
1. 사건의 결론이 아닌 가설과 상상: "사건의 진실에 대한 결론을 알 수도 없고 이 영화를 통해서 낼 수도 없었다. 결론보다는 가설, 상상의 형태로 다뤘다"며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창작물임을 강조했다.
2. 은폐된 의혹들에 대한 영화적 접근: "대부분의 소재는 다큐멘터리나 책에 나온 내용이지만 그 자체가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시기에 있었던 은폐들,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실재했다"며 픽션을 가미한 배경을 설명했다.
3. 관객의 몫으로 남긴 열린 결말: 영화 시작 전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하되 내용은 픽션이라는 안내문이 나온다며, 정해진 역사적 결론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은 관객의 몫"이자 상상에 맡긴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법적 성찰의 관점에서 볼 때 감독의 "가설과 상상에 기반한 픽션"이라는 항변은 사법적 심판대 위에서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대한민국 형법상 사자명예훼손죄
(제308조)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할 때 성립한다.
대한민국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 법리에 따르면, 창작물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오프닝 시퀀스에
"이 영화는 허구"라는 형식적 자막을 삽입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체적 면책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판례는 표현물의 전체적인 맥락과 메시지가 실존
인물이나 고인에 대하여 구체적인 허위 사실을 진실인 양 암시하거나 사회적 평가를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경우
이는 예술·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합리적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역사적 사실과 사법적 확정판결이 엄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묘히 비틀어 음모론적 프레임을
주입하는 행위는 <창작의 자율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실체적 진실을 훼손하는 위법한 행위로 <포섭>될 수 있다.
법은 <주관적 상상력>의 <유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진실>과 <인격적 법익>의 <균형>을 수호하기 때문이다.
법전의 문구들은 서늘하다. 죽은 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남겨진 자들의 가슴에는 <대못>이 박힌다. 허위의 사실이 진실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거리를 활보할 때, 역사의 <도덕률>은 무너진다.
비록 <픽션>이라는 포장 뒤에 숨어 시대의 비극을
<흥행의 도구>로 소비하려 할지라도, 고인의 영혼과 유가족의 멍든 가슴을 난도질하는 칼날 앞에 우리는 단호히 <진실의 잣대>를 겨누어야 한다.
진실은 단순하고 서럽다. 문세광이 남긴 마지막 말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부서진 영혼의 자백이었다.
그 사실을 비틀어 판타지를 짓는 자들의 손끝에서,
시대의 아픔은 <구경거리>가 된다.
칼끝은 예리해야 한다. 영화도 <사실>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사실이 허구의 바다에 침몰당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용기있게 진실의 닻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