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년 3월 14일~1955년 4월 18일)이 1939년 8월 2일(현지시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썼다고 서명을 남긴 편지가 있다. 나치 독일이 원자폭탄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미국이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미국인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것이었다. 그가 편지를 쓴 날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몇 주 전이었다.
문제의 편지가 22년 만에 다시 경매에 나온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 방송 등이 25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먼저 두 쪽으로 이뤄진 편지의 행간을 살펴보면 미국이 이미 자체 핵무기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받은 루스벨트 대통령은 3년 뒤에야 원자력 연구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고, 이것이 미국의 핵무기 개발을 이끈 '맨해튼 프로젝트'의 전신이 됐다. 맨해튼 프로젝트에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참여했고, 1945년 8월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구게 됐다.
이 편지를 지금까지 소유한 이는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폴 앨런으로 그가 2018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유품을 정리해 오는 9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새 주인을 찾게 됐다. 경매사가 예상한 낙찰가는 400만 달러(약 55억원)~600만 달러(약 83억원)다.
아인슈타인이 나치의 핵무기 개발 위험성에 대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경고해달라는 미국 과학자들의 요청을 받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실제로 받은 편지 원본은 뉴욕에 있는 '루스벨트 도서관 및 박물관'에 소장돼 있으며, 이번에 경매에 나오는 편지는 헝가리 이론물리학자인 레오 실라르드(1898년 2월 11일~1964년 5월 30일)가 보관용으로 한 부 더 작성해 갖고 있던 것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이 받은 원본보다 조금 더 길이가 짧다.
이 편지를 실제로 작성한 사람은 여러 학자들의 도움을 받은 실라르드였다고 BBC는 지적했다. 편지는 나치가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해 "매우 위험한 폭탄"을 만들기 전에 미국이 먼저 원자력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편지 첫 줄에 "핵 물리학에서 최근의 연구로 우라늄이 새로운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단도직입적으로 핵 개발 문제를 꺼냈다. 이어 "대량의 우라늄에서 핵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현상은 폭탄의 제조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러 학자들이 편지 작성에 간여했지만 아인슈타인만 서명한 것도 그의 유명세를 활용하려는 계산이었다고 BBC는 지적했다. '루스벨트 도서관 및 박물관'의 윌리엄 해리스 관장은 WSJ에 당시 아인슈타인은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였으며, 루스벨트 대통령과도 각별한 사이였다면서 아인슈타인에 대한 신뢰가 루스벨트 대통령이 행동에 나선 이유였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실라르드는 평생 이 편지를 갖고 있었으며 그의 사후에 유가족들이 매물로 내놓았다. 그 뒤 2002년 출판업자 겸 수집가 맬컴 포브스가 이 편지를 경매에 내놓아 210만 달러에 낙찰돼 커다란 화제가 됐다. 당시 아인슈타인이나 루스벨트 대통령과 관련된 물품 중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것으로, 20세기 이후 100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팔린 최초의 역사적 문건으로 기록됐다.
마크 포터 크리스티 아메리카 회장은 앨런이 이 편지와 맨해튼 프로젝트의 기원,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 및 컴퓨터 시대의 도래까지 연결성을 알았을 것이라면서, 그가 생전에 다른 소장품들과 달리 이 편지는 한 번도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앨런은 이 편지가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건 중 하나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 없이 알았을 것"이라며 "이런 문건은 사무실에 막 걸어둘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당시 미국만이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었음을 알고 이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47년 "독일인들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았더라면 난 절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경매에 나오는 1971년에 만들어진 컴퓨터 DEC PDP-10: KI-10 모델은 MS 창업 초기 빌 게이츠와 앨런이 함께 일했던 모델이다. 인터넷의 초기 형태를 연구할 때 열쇠가 되는 제품들이다. 이번 경매에서 3만~5만 달러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1965년 미국인으로는 처음 우주유영에 나선 에드 화이트가 입었던 우주복이 8만~12만 달러에 새 주인을 찾을지도 관심거리다.
2022년 앨런의 예술작품 컬렉션이 무려 15억 달러 이상에 낙찰돼 개인 소장가 컬렉션 최고액 경매 기록을 경신했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경매 수익금은 자선단체 등에 기부해달라고 그는 유언했다.
그는 생전에 20억 달러 이상을 자선단체 등에 기탁했으며 미술관과 박물관 건립, 여러 스포츠 구단 인수에 나섰다. 포브스는 그가 세상을 등질 때 순자산 가치를 2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