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기사의 내용을 어머님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는 강남지역의 계급성을 잘 보여준 선거였다. 강남, 서초, 송파를 주축으로 하는 '부자동네 연합'은 야권 단일화 바람에도 보수정당 소속의 구청장을 어김없이 당선시켰다.
그러나 서울지역선거를 단순히 '계급투표'였다고 분석할 수 없게 만든 단 하나의 걸림돌은 강북지역에서도 저소득층이 유난히 많은 '중랑구'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강남 3구가 모두 서울 자치구 중 재정자립도 5위 안에 드는 반면, 중랑구는 25개 자치구 중 24위를 차지할 정도로 '계급적 격차'가 컸다. 그런데 이 곳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구청장에 당선되었으니, 계급투표라는 분석틀을 들이댈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중랑구는 '이상한 데서 강남3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한나라당 집권 구 중랑, 강남 3구와 함께 '4학년 무상급식 거부!'
부유하지 않은 동네가 무척이나 잘 사는 동네처럼 투표한 결과는 곧 드러났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서울 21개 자치구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지만, 강남, 서초, 송파, 그리고 중랑구는 3학년까지만 무상급식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각 자치구가 매칭펀드로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게 되어 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 카드까지 꺼내들며 예산지원을 거부해 교육청 예산으로는 3학년까지만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21개 지자체는 자체 예산을 투입해 4학년까지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랑구와 강남 3구는 예산책정을 거부해 3학년까지만 급식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지역 5, 6학년을 버렸다면, 중랑구와 강남, 서초, 송파구는 4학년마저도 버린 셈이다.
이에 대해 중랑구청은 최상의 예산운영을 위해 "학력신장 및 노후화된 교육환경 시설개선"에 우선 지원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한사코 무상급식을 거부하며 백억이 훨씬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주민투표까지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장과 같은 당 소속 구청장들의 참으로 '아름다운(?)' 동행이다.
동네, 드디어 움직이다
중랑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풀뿌리 주민운동의 토대와 경험이 일천한 곳이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개혁 정당의 활동력도 그리 크지 않으며, 눈에 띠게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도 거의 없다.
그런데 '4학년 무상급식 좌절'을 계기로 조금씩 동네가 움직이고 있다. 지난 3월 3일, 4학년을 비롯한 초등학생 학부모들과 중랑희망연대 회원들, 그리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당 관계자 40여명이 중랑구청 앞에 모여 '공동대응'을 선언한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별 일이 아닐지 몰라도, 중랑지역에서 이 정도 규모의 인원과 단체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거의 유래가 없는 일이다. 무상급식을 위한 주민들의 행동이 단순한 '항의'의 수준에서 더 나아가 지역공동체의 대안적 힘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민운동은 지역적 의제를 둘러싼 지역 주민의 반발이 일어나고 이것이 조직화된 집합행동으로 이어지는 형태에서 출발한다. 2004년 부안 핵폐기시설을 둘러싼 갈등이나 2007년 화장터 건립을 둘러싼 하남시 주민소환 운동은 좋은 예다.
이런 형태의 주민운동은 무엇보다 각 주민들의 이해관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공동체적 대의나 정당성만을 앞세운 여타 운동에 비해 그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단지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보다 큰 차원의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관계에 기반한 운동과정에서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대안적 가치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지역공동체 운동이 활성화된 지역들도 대부분 이런 '이해관계적' 운동 과정에서 연대성이 싹트고, 자기이해를 넘어서는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일시적 운동이 일상적 운동으로 자리 잡은 경로를 밟아 왔다.
동네의 반란, 성공할 수 있을까?
진보·개혁적 시민·사회·정당 운동의 무풍지대였던 중랑지역이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변화를 불러올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토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무상급식에 대한 학부모 여론이 심상치 않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초등학교 4학년생 학부모는 "요즘 주변의 엄마들이 왜 우리 중랑구만 무상급식을 안 하는지 의아해하고 서운해 한다"면서 "기분 나빠 다른 데로 이사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분통해 했다. 이는 이해관계에 기반한 주민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정서다.
또한, 보다 조직적인 주민운동을 펼칠 만한 토대도 갖춰져 있다. 이번 기자회견을 주도한 중랑희망연대는 지난해 지방선거의 어이없는 결과를 계기로 올해 1월 16일 결성된 단체로, 지역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다양한 인사들이 모여 있다. 비록 단체와 정당 차원의 가입이 아니라 개인별 가입형식이긴 하지만, 민주당 인사에서부터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야권이 총 망라되어 있다.
중랑희망연대 장이정수 운영위원은 "오늘 중랑구 역사상 가장 많은 단체와 정당 관계자가 참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것처럼 국민들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매우 커, 반드시 무상급식을 관철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3월 5일부터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지하철역 서명운동과 출퇴근길 홍보활동, 학부모 간담회 등의 일정도 시작된다.
지역의 변화가 더 큰 변화 이끈다
침묵을 지키던 서울 변두리 지역의 조그만 변화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에 대해서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지역 최하위 수준의 투표율을 기록했던 곳, 강북에서 유일하게 한나라당 구청장을 배출한 중랑구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치적인 냉소와 무관심은 선천적인 국민의 습성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런 반응이다. 이런 현상은 누군가 대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과 경로를 제시할 때, 그리고 보다 많은 이들이 그 경로와 방법을 수용하고 동참할 때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다. 3월 3일의 기자회견에서 많은 이들이 발견했던 것은, 바로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영향력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이었다.
서울 변두리의 작은 변화가, 어떤 큰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