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편품 가운데 `하나다`라는 것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사일개회라는 말을 써 왔습니다. `이치는 하나다`, `인간도 결국은 하나가 된다`, `부처님의 마음도 하나다`, `수행의 방법도 결국 하나에 귀착한다`의 네 가지를 설해서 개회사상(開會思想)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개회사상은 법화경의 중요한 교리의 하나로서 <법화경 공부>에 상술하였지만 그 내용이 무척 난해합니다. 예를 들면 `작은 선(小善)을 열어 큰 선(大善)에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같은 종류의 것을 종류개회(種類開會)라 하고, 악(惡)을 열어 선(善)을 만나게 하는 다른 종류의 것을 적대개회(敵對開會)라고 하는 두 가지가 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의 해석을 위해서는 <법화경공부> 의 당체전시(當體全是)를 알아야 합니다. 소선을 열어 대선을 만나게 한다는 뜻은 소승, 권대승을 설하여 중생의 근기를 높인 후 실대승인 법화회상에서 이승작불의 제법실상을 깨닫게 한다는 뜻이고, 적대개회란 이독제독이라는 말처럼 법화경을 매도하는 증상만자에게 법을 설해 믿지 않도록 함으로서 무간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게 함으로서 오히려 스스로 뉘우치고 실대승인 법화경의 가르침을 믿게 하는 하종불법(下種佛法)을 말합니다. 이렇게 설명하여도 어려움이 있으므로 개회에 대해서 쉽게 설명을 하자면 개(開)란 사물을 자세하게 나누어 해석하는 것이고 회(會)란 그 속에 있는 뜻을 완전히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회란 자세히 속속들이 확실하게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하면 삼승을 속속들이 아는 경우에는 자연히 묘법일승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사십 여년동안 방편교를 가르치신 그 뜻을 자세히 분석해서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개회사상입니다.
"내가 이러한 방편을 베풀어서 부처님 지혜에 들어감을 얻게 하고, 「너희들은 마땅히 부처님의 도 이룸을 얻으리라.」고 일찍이 설하지 않았는데, 일찍이 설하지 아니한 것은 설할 때가 이르지 아니한 까닭이니라. 이제 바로 이러한 그 때이니 결단하여 정하고 대승을 설하노라. 나의 이 아홉 부분으로 나눈 법은 중생을 좇아서 따르고 설하여 대승에 드는 것을 근본으로 삼음이니, 그러므로써 이 경을 설하노라."
위의 경문이 `이치는 하나(理一)`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교에는 아함 등의 소승경도 있고 반야, 화엄, 밀종 등의 권대승경도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최후의 진리를 밝히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중생의 근기가 다르므로 여러 가지 방편을 만들어 설하기는 하시지만 결국은 때가 오면 부처님께서 몸소 깨달으신 바를 남김없이 진실교를 설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부처님 아들이 마음이 깨끗하고 부드럽고 연하며 또한 날카로운 근기로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의 거처에서 깊고도 묘한 도를 행하면 이 모든 부처님 아들을 위하여 이 대승경을 설하노라."
위의 경문은 `사람은 하나((人一)`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부처님과 같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처님이 될 때까지는 노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시방의 부처님 나라 가운데 오직 일승법만이 있고 이가 없고 또한 삼이 없으되, 부처님께옵서 방편으로 설하신 것은 제외되느니라. 다만 거짓 이름자로써 중생을 인도하심은 부처님의 사리에 밝은 지혜를 설하시는 까닭으로,"
위의 경문은 `교는 하나(敎一)`임을 설하신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어느 부처님께서 어떤 교를 설하시거나 그 가르침이란 것은 결국 일승묘법 한가지로 절대의 진리, 구경(究竟)의 교(敎)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중생의 근기가 낮은 관계로 부득이 방편으로 설법하신 것은 제외로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부득이 낮은 가르침을 설하신 이유는 우리 중생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노력을 멈추지 말라고 하는 것을 설하시기 위한 방편인 것으로 곧 교란 결국 일승묘법의 한 곳에 귀착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께옵서 세간에 나오심은 오직 이 한 가지 일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둘은 곧 참된 것이 아니니, 마지막에는 소승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느니라. 부처님은 스스로 대승에 머무르고 그 얻은 바의 법과 같이 정과 지혜의 힘으로 꾸미고 치장하여 이로써 중생을 제도하느니라. 스스로 위없는 도인 대승 평등법을 증하고도 만약에 소승으로써 교화함이 이에 한 사람에 이를지라도 나는 곧 아끼고 탐하는 것에 떨어진 것이니, 이런 일은 옳지 못한 것이 되니라."
위의 경문은 `행은 하나(行一)`를 말씀하신 경문으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교를 설하신 목적은 오로지 일승법 뿐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 모든 중생을 부처님과 같이 되게 해 주는 것만이 진정한 부처님의 마음으로 성문이니 연각이니 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소승의 교는 편의상 설한 것으로 그 소승의 교로는 모든 중생을 구원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소승의 교를 설하실 때에도 마음 속으로는 이 소승에서부터 들어가서 대승의 보살행을 닦기를 염원하시고 즉, 언제나 대승평등법을 생각하시고 소승교를 설하신 것입니다.
이상의 사일개회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교를 설하신 목적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치는 하나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얕은 것도 깊은 것도 잇지만 결국은 하나의 최후의 진리를 밝히기 위해 설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하시지만 차차 깊이 들어가 종국에는 그 부처님의 깊은 교를 믿고 스스로 그것을 몸으로서 행해 보아야만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