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게 / 나희덕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 테니
부패의 힘 / 나희덕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풀포기의 노래 / 나희덕
네 물줄기 마르는 날까지
폭포여, 나를 내리쳐라
너의 매를 종일 맞겠다
일어설 여유도 없이
아프다 말할 겨를도 없이
내려꽂혀라, 거기에 짓눌리는
울음으로 울음으로만 대답하겠다
이 바위틈에 뿌리 내려
너를 본 것이
나를 영영 눈뜰 수 없게 하여도
그대로 푸른 멍이 되어도 좋다
네 몸은 얼마나 또 아플 것이냐
바람은 왜 등뒤에서 불어오는가 / 나희덕
바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이 멀 것만 같아
몸을 더 낮게 웅크리고 엎드려 있었다.
떠내려가기 직전의 나무 뿌리처럼
모래 한 알을 붙잡고
오직 바람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그럴수록 바람은 더 세차게 등을 떠밀었다.
너를 날려버릴 거야
너를 날려버릴 거야
저 금 밖으로, 흙 밖으로
바람은 왜 등 뒤에서 불어오는가
수천의 입과 수천의 눈과 수천의 팔을 가진 바람은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누군가의 마른 종아리를 간신히 붙잡았다.
그 순간 눈을 떴다
내가 잡은 것은 뗏목이었다.
아니, 내가 흘러내리는 뗏목이었다.
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못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 봅니다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 온 제비,
거리에선 아직 흙 바람이 몰려 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하는 못하나,
그 위의 잠
뜨거운 돌 /나희덕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이 있네
그러면 내 스무 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한 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火傷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 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삼베 두 조각 / 나희덕
눈 내리는 아침
할머니는 손수 지어놓으신 수의로 갈아입으셨다
수의는 1978년 7월 15일자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수의를 지어놓고도 이십년을 더 사신 할머니는
백살이 가까운 어느 겨울날이 되어서야
연듯빛을 군데군데 넣어 만든 그 수의를
벽장 속에 숨겨둔 날개옷처럼 차려 입으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버선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도 허지, 그것을 안 맨들 양반이 아닌디 아닌디......
어리등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할머니의 두 입술은 설핏 웃는 듯도 하였다
상자 속에는 버선 대신 삼베 두 조각이 들어 있어서
그걸로 잘 마른 장작 같은 두 발을 싸드렸다
삼베 두 조각을 두고
할머니는 왜 끝내 버선을 만들지 않으셨을까
1978년 7월 15일자 신문지 에 싸여 있던
수의 한벌과 삼베 두 조각으로 따뜻하게 여며 입고
할머니는 1998년 1월 19일 아침
횐눈이 내리는 새로운 집으로 걸어들어 가셨다
보리수 밑을 그냥 지나치다 / 나희덕
가로등 너는 아득한 전생에
보리수나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뜨거운 발등 앞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석가를 물끄러미 굽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고요히 흘러 넘치는 그의 뇌수를
딱 한 방울 맛본 힘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모를 일이다
가로등 황금열매가 실하게 익어 가는 밤
설령 네가 그 날의 보리수였다고 해도
기대하지는 마라
이 시대에 누가 네 앞에 가부좌를 틀고
부처가 되려고 하겠느냐?
너를 붙들고 오열하다가 발등
왈칵 더럽히는 석가들이 있을 뿐
어쩌다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 가는 중생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전생에 너를 몰라보고 끄덕끄덕
보리수 밑을 찾아가는 중일 것이다
와온臥溫에서 / 나희덕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 넣을 때,
어두워진 바다가 잦아들면서
지는 해를 품을 때,
종일 달구어진 검은 뻘흙이
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
해는 하나이면서 헷, 셋이면서 하나
도솔가를 부르던 월명노인아,
여기에 해가 셋이나 떴으니 노래를 불러다오
뻘 속에 든 해를 조금만 더 머물게 해다오
저녁마다 일몰을 보고 살아온
외온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떨기꽃을 꺾어 바치지 않아도
세 개의 해가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찬란한 해도 하루에 한 번은
짠물과 뻘흙에 몸을 담근다는 것을 알기에
쪼개져도 둥근 수레바퀴
짜디짠 내 눈동자에도 들어와 있다
마침내 수레가 삐걱거리며 굴러가기 시작한다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 나희덕
해질 무렵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당신은 성문 밖에 말을 잠시 매어두고
고요히 걸어 들어가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실 일입니다.
가시 돋힌 탱자울타리를 따라가면
먼저 저녁해를 받고 있는 회화나무가 보일 것입니다.
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
밧줄과 사슬의 흔적 깊이 남아 있고
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입니다.
나무가 몸을 베푸는 방식이 많기도 하지만 하필
형틀의 운명을 타고난 그 회화나무,
어찌 그가 눈 멀고 귀 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의 손끝은 그 상처를 아프게 만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더 걸어가 또다른 나무를 만나보실 일입니다.
옛 동헌 앞에 심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 드물게 넓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잊은
듯 웃고 있을 것이고
당신은 말없이 앉아 나뭇잎을 헤아리다 일어서겠지요
허나 당신, 성문 밖으로 혼자 걸어나오며
단 한번만 회화나무 쪽을 천천히 바라보십시오.
그 부러진 나뭇가지를 한번도 떠난 일 없는 어둠을요.
그늘과 형틀이 이리도 멀고 가까운데
당신께 제가 드릴 것은 그 어둠뿐이라는 것을요.
언젠가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
다음 생의 나를 보듯이 / 나희덕
- 어느 부끄러운 영혼이
절간 옆 톱밥더미를 쪼고 있다.
마치 다음 생의 나를 보듯이 정답다.
왜 하필이면 까마귀냐고
묻지는 않기로 한다.
새도 짐승도 될 수 없어
퍼드득 낮은 날개의 길을 내며
종종걸음 치는 한 生의 지나감이여
톱밥가루는 생목의 슬픔으로 젖어 있고
그것을 울며 가는 나여
짙은 그늘 속
떠나지 않는 너를 들여다보며
나는 이 생의 나와 화해한다.
그리고 산을 내려가면서
불쌍히 여길 무엇이 남아 있는 듯
까욱까욱 울음소리를 한번 내보기도 한다.
- 칸나의 시절 / 나희덕
난롯가에 둘러앉아 우리는
빨간 엑스란 내복을 뒤집어 이를 잡았었지.
솔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이들은 난로 위에 던져졌지.
타닥타닥 튀어 오르던 이들, 우리의 생은
그보다도 높이 튀어오르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었지.
황사가 오면 난로의 불도 꺼지고
볕이 드는 담장 아래 앉아 눈을 비볐지.
슬픔 대신 모래알이 눈 속에서 서걱거렸지.
봄이 와도 칸나가 필 때까지는 겨울이었지.
빨간 내복을 벗어던지면 그 자리에 칸나가 피어났지.
고아원 뜰에 칸나는 붉고
우리 마음은 붉음도 없이 푸석거렸지.
이 몇 마리 말고 우리가 키울 수 있는 게 있었을까.
칸나보다도 작았던 우리들, 질긴
나일론 양말들은 쉽게 작아지지 않았지.
황사의 나날들을 지나 열일곱 혹은 열여덟.
세상의 구석진 솔기 사이로 숨기 위해 흩어졌지.
솔기는 깊어 우리 만날 수도 없었지.
마주친다 해도 길을 잃었을 때뿐이었지.
이 한 마리마저 키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일론 양말들,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런 저녁을 밝혀줄 희미한 불빛에게
나는 묻지. 네 가슴에도 칸나는 피어 있는가, 라고.
별 / 나희덕
모질고 모질어라
아직 생명을 달지 못한 별들
어두운 무한천공을 한없이 떠돌다가
가슴에 한 점 내리박히는 일
그리하여 생명의 입김을 가지게 되는 일
가슴에 곰팡이로나 피어나는 일
그 눈부심을 어찌 볼까
눈물 없이 그 앞을 질러 어떻게 달아날까
밤하늘 아래 얼마나 숨죽여 지나왔는데
얻어온 별빛 하나 어디에 둘까
어느 집 나무 아래 묻어놓을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땅 끝 / 나희덕
산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렸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쫓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속리산에서 / 나희덕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귀뚜라미 /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가자, 그 복숭아 나무 곁으로 /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 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서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 가만히 들었습니다
흰 실과 검은 실을 더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길 위에서 /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닳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 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 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상현上弦 /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신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어떤 出土 / 나희덕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 없다
불꽃도 흑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웅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어두워진다는 것 / 나희덕
5시 44분의 방이
5시 45분의 방에게
누워 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
슬픈 집 한채를 들여다보듯
몸을 비추던 햇살이
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
멀리서 수원은사시나무 한그루가 쓰러지고
나무 껍질이 시들기 시작한는 것
시든 손등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는 것
5시 45분에서 기억은 멈추어 있고
어둠은 더 깊어지지 않고
아무도 쓰러진 나무를 거두어가지 않는 것
그토록 오래 서 있었던 뼈와 살
비로소 아프기 시작하고
가만, 가만, 가만히
금이 간 갈비뼈를 혼자 쓰다듬는 저녁
섶섬이 보이는 방 / 나희덕
- 이중섭의 방에 와서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
*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이중섭과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이 6.25 전쟁 중 살던 방, 초가집의
오른 쪽 끝에 있다
벗어 놓은 스타킹 / 나희덕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생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그라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 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들고 일어나 물 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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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8년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 당선
김수영문학상 (1999) 현대문학상 (2003) 수상
시집
< 뿌리에게 >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 그 곳이 멀지 않다 >
< 어두워진다는 것 >
산문집 < 반통의 물 >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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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대한 반성으로 여성으로서 자기 정체성 찾아가는
과정 표현
“이전에 삶이란 과거가 만들어낸, 견뎌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과거가 미래를 만들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들뢰즈의 말처럼, 기억의 되새김질보다 생성의 순간에 몸을 맡기고
싶다. 오늘도 봄 그늘에 앉아 기다린다, 또 다른 나를.(‘시인의 말’
중에서)” 생에 대한 단단한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내는 시인,
나희덕의 시집 ‘야생사과’(창비)가 5년 만에 나왔다.
그가 ‘시인의 말’을 통해 밝힌 대로 상처와 고통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왔던 그의 시선은 좀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야생사과’를 통해
자신에게 야생사과를 건네준 사람들이 사라진 수평선에서 등 뒤에
서있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대화’를 통해 자기 속의 자벌레는
타인 속의 무당벌레에게 말을 건네 대화를 시도한다.
무엇보다 시인은 이번 시들을 두고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제가 페미니즘적인 기조를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많은 시들이 가부장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는 여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죠.”
이는 “내 안의 물기가 거의 말라갈 무렵 낯선
땅에서 물의 출구를 발견한 셈이다. 무수한
나를 흘려보내는 것이 첫 물줄기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었다”는 작가의 말과도
연관된다. ‘누가 내 이름을’ ‘나는 아직 태어
나지 않았다’에서는 가부장적인 세계로부터
독립해 경계 너머의 삶을 지향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아냈다. 특히 ‘분홍신을 신고’에서
시인은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시간을 벗어나
어디론가 갈 수 있다고 노래한다.
오랫동안 자신을 붙잡아두었던 분홍신을
벗고 경계를 넘어서 나아가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나는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있어요/ 강물이
둑을 넘어 흘러내리듯/ 내 속의 실타래가
한없이 풀려 나와요/ 실들이 뒤엉키고 길들이
뒤엉키고/ 이 도시가 나를 잡으려고 도끼를
달려와도/ 이제 춤을 멈출 수가 없어요/
내 발에 신겨진, 그러나 잠들어있던/ 분홍신 때문에/ 그 잠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에.(‘분홍신을 신고’ 부분)”
두 남매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의
일부를 인용한 ‘우리는 낙엽처럼’에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근원,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나희덕 시인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우리 여정은 암담해 보이지만
그럴 때조차 시에서는 아버지란 존재를 빼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마치 현대사에서 좋은 지도자를 찾고자 하지만 가도 가도 안개가
걷히지 않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스스로 강을 건너야 함을
알려주듯이 말이다.
“이제 우리는 강을 건너요/ 한 조각 배를 타고/ 그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인 줄도 모른 채/ 조금만 기다리세요/ 다 왔어요.(‘우리는 낙엽
처럼’ 부분)”
나희덕 시인은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
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착학과 교수로 8년째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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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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