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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아침 햇살은 김성준의 집에도 어김없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채광이 잘되는 널찍한 집의 거실 가득히 오렌지빛 햇살이 차올랐다.
...끼이익...
밤새도록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기분나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이 열린 지 한참 후 한 임산부가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한 주희의 얼굴은 임산부 특유의 붓기와 창백함이 겹쳐져 마치 달걀귀신처럼 변해 있었다.
"...."
말없이 걸어나온 주희는 몇 걸음 걷지 않아 거실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거실 구석에 볼품없이 굴러다니는 수천만원짜리 최고급 아이언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넓은 거실에 가득히 퍼져 있는 핏더미들의 가장자리에 떨어져 있었다. 거실의 붉은 피는 그곳을 가득 채운 오렌지빛 햇빛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넓은 거실의 가운데 놓인 고급 쇼파는 최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진 터라 재준의 피는 전혀 스며들지 않았다. 긴 쇼파에는 재준이 대자로 뻗어 있었다. 잠이라도 자는 듯 그는 정돈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아마 그의 주변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의 머리가 쇼파 아래에 굴러다니고 있지 않았다면 그의 모습은 피곤에 지쳐 쇼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편안함 이외에 다른 것으로 비추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목이 잘라진 것 외에는 재준의 온몸은 멀쩡했다. 두개골이 관통된 성준의 시체나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철준의 그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반항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탈진해서 쇼파에 쓰러져 있는 재준의 목을 가볍게 잘라 버린 것이리라...어떻게 보면 유재훈의 지금까지의 살해 수법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간단한 수법이었다. 물론 재준의 주변에 어지럽게 퍼져 있는 핏자국은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지만...
현관문 앞에는 재준의 시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처참한 여자 아이의 시체가 굴러다녔다.
수연의 오른쪽 팔은 비정상적으로 휘어 있었다. 그리고 처절할 정도로 현관문 손잡이를 꽉 틀어쥔, 아니 틀어쥐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수연의 손에는....손가락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화려한 장식의 현관문은 수연의 피와 살점들로 더럽혀져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윗부분이 날아갔다. 그녀의 얼굴은 절반밖에 남지 않아 코의 아랫부분과 입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입은 입크기 대회라도 하는 것마냥 크게 벌어져 있었다. 수연의 다른 머리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볼 수 있는 것이라면 다진 고기처럼 여기저기 흘러내려 있는 붉은 흔적들 뿐이었다.
아마 그들은 주희의 방문을 두드리고 자신들의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끔찍한 현상들을 보는 것에 지치고 탈진해 거실 바닥과 쇼파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잠자고 있는 재준에게 유재훈이 다가가 그의 목을 잘라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게으름뱅이 백수였던 재준은 김수산의 유족들 중에서 가장 행운아였다고 볼 수 있었다.) 목을 잘라내는 소리에 깨어난 수연은 커다란 사마귀를 이마에 지닌 유재훈에게서 도망치려다 경찰들이 밖에서 잠근 현관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원래는 머리가 있어야 했을 것 같은 재준의 몸통 위쪽에는 붉은 글씨로 3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으며 수연이 쓰러져 있는 현관문에는 2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물론 굴러다니는 시체들과는 비교가 안되었지만 붉은 액체가 흘러내려 글자는 상당히 끔찍하게 보였다.
비참한 아이들의 죽음이 눈앞에 있었다. 그렇지만 주희는 한참동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눈앞의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있을까...분명히 주희의 표정은 넋이 나가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10분 정도가 지난 후 주희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손가락을 갈퀴 모양으로 만든 그녀는 자신의 눈 아래쪽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퍽! 퍼억!
두 눈이 새빨개지면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주희는 두 손가락을 목구멍 아래로 집어넣었다.
우우욱~..끄윽...
구토와 눈물이 섞여가면서 주희의 창백한 얼굴은 더욱 비참하게 변해갔다. 거실 바닥에 얼마 안되는 구토물을 쏟아낸 주희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커다란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악!"
그녀의 비명소리가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곧 집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달려왔다.
집안에 들어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당황했다. 몇몇은 참지 못하고 달려나가 구토를 시작했다.
처참한 아이들의 시체, 그리고 천천히 자신이 쏟아낸 구토물 위로 무너져내리는 한 임산부의 모습이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24
최검사는 무단결근중이었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계속 비디오만 틀어본 다음날 김철준이란 사람의 살해 현장을 둘러본 이후로 그는 며칠째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최검사 직속 검찰청 직원들과 형사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유능하고 전도유망한 젊은 검사의 이상한 행동을 궁금해했다. 그리고 그들은 며칠째 나타나지 않는 검사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서류들을 바라보며 짜증을 냈다.
이용철 검사의 사무실은 최검사의 사무실보다 훨씬 단촐하고 조용했다. 그의 사무실 책상 앞에는 중년의 형사가 한 젊은 검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최검사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검사는 두꺼운 안경과 크지 않은 키가 최검사와 비슷해 보였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은 최검사와 정반대로 상당히 치켜올라가 있었다.
박형사는 그와 비슷한 나이로 서울지검 형사부 내에서 경쟁적인 지위에 있는 이용철 검사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살해 현장을 둘러본 최검사의 표정이 그렇게 안좋았단 말이군요..."
"그렇습니다...꼭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될 사람처럼요."
이검사는 손가락을 가볍게 펴 두꺼운 안경을 올렸다. 최검사와는 대조적인 그의 안경 너머의 끝이 치켜올려간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나는 듯했다. 박형사는 흠칫했다.
'항상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검사들끼리도 알력 싸움이 대단하구만...'
이검사는 말을 잇고 있었다.
"그후 검찰청에 전혀 나오지 않고 있구요."
"최검사님은 상당히 일에 대한 욕심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김철준, 김성준 살해 사건뿐 아니라 협조 수사를 포함해 많은 형사 사건들을 담당하고 계셨죠. 며칠째 검찰청에 안나오고 계시니까 많은 사건들이 승인을 못받아서 제자리걸음입니다. 최기영 검사님께서 거주하고 계신 송파구 아파트에 며칠째 전화를 걸었지만 자동응답만 나오더군요."
"후후..."
이검사가 나직하게 웃고 있었다.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지만 박형사는 묘한 역겨움을 느꼈다.
"이런 굵직한 사건을 맡고 있는 검사가 확인 안된 이유로 연락을 끊어버린다는 건 있기 힘든 일이죠. 아무래도 대검에 보고해야겠군요."
"그...그렇습니까..."
"김성준, 김철준 살해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발생한 김수연과 김성준의 살해에 대한 자료도 부탁드립니다. 전 대검에 보고하고 오겠습니다."
"네...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사무실 문을 나서려던 이검사의 치켜올라간 두 눈이 다시 박형사를 향했다.
"김수산의 이복동생인 김승현이 김수산 사후에 그쪽 호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절차를 밟고 있었다죠?"
"네?"
박형사는 들어보지 못한 사실에 잠시 당황했다.
"제 담당은 아닌 사건이었습니다만..상당히 커다란 일이라...어디까지나 호기심이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뒷조사를 좀 했죠..."
"예..."
"이상한 움직임이 있더군요."
이검사는 씩 웃었다.
"만약에 말입니다.."
"...?"
"김수산의 직계들이 전부 사망하면...대습 가능한 사람까지 없어지면 말이죠...상속순위는 방계혈족 내지 형제 자매쪽으로 가죠? 양자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심증입니다."
이검사는 박형사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김승현 변호사에 대한 시끄럽지 않은 조사도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형사님?"
"알..알겠습니다."
박형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이검사는 빠르게 검사실 문을 닫고 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박형사의 표정도 복잡하게 변해갔다.
승현은 양천구에 위치한 예진 성당 앞에 자신의 차를 세웠다.
아침에 예진 성당에 전화를 걸어 일단 박순철이라는 신부가 성당에 있었던 적이 있는지 확인했다. 일단 신부의 이름을 실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던 잡지사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1990년에만 잠깐 출간되었던 미스테리 잡지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진 성당에 박순철이라는 신부가 근무했었다는 것을 확인한 승현은 아직까지 그가 성당에 근무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는 그곳에 있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승현은 다시 성당의 주임 신부의 연락처를 알아내 그 신부에 대해 알 수 있을지에 대해 문의했다.
주임 신부는 잠시동안 고민하는 듯했지만 승현의 간곡한 말투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오후에 찾아오라고 말했다.
예진 성당은 양천구의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길을 찾기 힘들어 세시간이 넘게 헤맸지만 워낙에 일찍 출발했던 터라 승현은 약속시간이었던 오후 2시보다 훨씬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여러 동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크지 않은 성당이었다. 유리문을 밀고 승현은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성당은 텅 비어 있었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약속한, 1980년부터 성당을 책임지고 있던 성당의 주임 신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단상 뒤쪽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이 아기 예수를 안고 피를 흘리며 애처로운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 줄 놓여 있는 긴의자 사이 놓인 통로를 지나 승현은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성당에 온 건 처음이다. 승현은 어릴 적, 아직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올 무렵까지는 기독교 신자였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일요일마다 교회에 다녔고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정도는 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나름대로 신학 공부에 흥미를 느껴 성경 공부도 꽤 했다. 어릴 적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하나의 신념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괴로운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는 종교를 버렸다. 종교들이 머금고 있는 기복적인 사상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신을 믿지 않게 된 그는 오랜 세월 자신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발생한 92년의 휴거 소동은 그의 그런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평생 긴장된 생활을 계속했고 불면증에 걸렸다.
불면증은 요즘 더 심해져 있었다. 생각해보니 승현은 지난 3일간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김성준의 살해 사건이 발생한 후 복잡한 생각과 긴장들 속에 승현이 잠을 잔 시간은 총 합쳐봐야 20 시간이 되지 않았다.
승현은 단상 앞에 서서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는 조용히 혼자 중얼거렸다. 신성모독적인 말이었지만 어쨌든 성당에는 아무도 없었으니 종교가 없는 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초의 악마는 루시퍼...그는 원래 천사였다고 했다..."
천사와 악마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면서부터, 혹은 그의 두뇌가 생존의 영역을 벗어난 창조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오랜 세월 천사로 대비되는 선과 악마로 대비되는 악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앞에는 그 갈등으로 인한 수많은 피비린내나는, 혹은 아름답기 그지없는 역사들이 반복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종이 한장 차이였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14~18세기 절대주의 시대의 프랑스 귀족들에게는 지고지순한 아름다움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반 민중들에게는, 특히 길거리에서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죽음을 눈앞에 둔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빵과 자신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지독한 악마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관동 대지진 당시 일본인의 한국인 학살은 분명히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악마적 행위였지만 그들의 심리 아래에는 대지진에 대한 공포, 그리고 혼란에 대한 어떤 전위의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민간인을 학살했던 경찰들, 그리고 군인들의 머리 위에는 자신들 존재의 이유였던 천황이 있었다.
악마가 원래 천사였다는 것과 이 사실들의 논리적인 연관성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선과 악이 사람의 마음속에 공존한다고 생각할 때 같은 것을 보는 데에서 나타나는 상대적인, 그러나 그것이 무서울 정도로 한 곳으로 치우치는 지극한 선과 악의 모습이 승현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의 어떤 관계를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승현도 알 수 없었다.
"....유재훈....."
이마에 검은 사마귀를 가진 메마른 주름투성이의 미라의 모습이 다시금 승현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1999년 이전까지만 해도 흰 옷을 입고 다니며 전국의 병자들을 치료했다는 성자의 모습이 그의 끔찍한 양손가위 위에 다시금 겹쳐졌다. 그와 그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누구든 그의 이마에서 목격했다는 커다란 사마귀였다. 승현은 몸서리를 쳤다. 아쉽게도 성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승현으로서는 사람들을 찢어 죽인 살인마의 모습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승현의 뒤쪽에서 아침에 통화했던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닙니다. 한 10분정도밖에요..."
"죄송합니다. 집에서 출발시간에 걸려온 전화가 길어져서 좀 늦었군요."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생각도 좀 해보고 좋았는걸요..."
흰 백발에 맑은 눈이 인상적인 신부는 승현의 옆에 있던 긴 의자에 앉았다.
25
검은 옷에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한 남자가 정신없이 인천공항을 걷고 있었다. 공항을 걷는 그는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공항에 비치된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하는 그의 모습 역시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그는 이름과 주소를 적는 란에 한참동안 고민하다 결국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름 : 'Choi Ki young'
여행목적 : Business
편명 : 'KE018'
이런 저런 출국 절차를 밟은 뒤 그는 출국 게이트로 향했다. KAL 미국행 항공기 출발 시간은 오후 6시 40분이었다. 그는 시계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오후 5시 58분...아직 40분의 여유가 있었다.
뭔가를 살 정신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잡지 한권을 샀다. 영문으로 된 KOREA TIMES였다. 평창동의 한 부호 일가의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사회면 톱기사로 나왔다. 아침에 그들 중 가장 어린 나이의 막내딸과 넷째아들이 살해된 채 유일한 생존자인 그의 며느리에게 발견되었다는 속보가 실려 있었다. 말없이 기사를 훑어내려가던 그는 잠시 몸을 떨었다.
눈에 걸려 있는 어두운 선글라스가 답답했는지 그는 잠시 그것을 벗어 주머니에 끼웠다. 쳐진 두 눈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최기영 검사였다. 그는 다시한번 흐릿한 눈을 찌푸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끔찍한 양손 가위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걸로...될 수 있을까...."
그는 아무에게도 자신이 가는 곳을 알리지 않은 채 미국으로 출국하려는 중이었다. 분명히 김수산은 괌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사망했지만 어쨌든 이대로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어디로든 피신하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바쁜 걸음으로 출국 게이트로 향하던 그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었다.
"으윽...뭐...뭐야...."
최검사는 갑작스러운 복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입맛이 없어서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데 갑자기 웬 배탈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며칠동안 자신을 붙들고 있었던 지독한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직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여유가 많이 있었다. 원인모를 복통이 자신을 괴롭히면서 최검사는 공항의 화장실로 달려갔다. 배도 아팠지만 웬지모르게 몸이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배설의 고통은 보통 몸에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무디게 하는 법이다. 최검사는 아무 생각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왼손에 들린 여행용 트렁크는 계속 무언가에 치여 부적절한 방향으로 흔들렸다. 트렁크는 그의 무릎에 닿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찢겨나가고 있었다. 마치 뭔가 날카로운 것의 날에 계속 찍히고 있는 것처럼....
첫댓글 ㅇ ㅣ ㅇ ㅑ~ 올리자 마자 첨으로 읽네요 잘 읽었어요 ^^*
어라 난 둘빠당~~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결말이 넘넘 궁금해서 밤에 잠이 안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