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에 대하여
요즘은 필기구가 다양해졌다. 내가 어릴 적엔 연필이 대세였고 잉크를 철심 펜에 찍어 썼던 시절도 있었다. 비록 싸구려였지만 만년필도 쥐어 보았다. 그 후로 볼펜이 대세였다. 근래는 디자인도 각양각색인 여러 종류의 펜들이 넘쳐난다. 하기야 컴퓨터와 전자 서명 시대에는 굳이 펜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다. 나는 그런 펜들 가운데 칼로 깎아 쓰는 연필을 제일 선호한다.
내 어릴 적 붓으로 글을 쓴 것을 지켜봄이 아슴푸레하다. 선친께서는 학교 근처도 가지 않으셨지만 한자를 깨쳐 음률을 읊으셨고 문장을 엮으실 줄 아셨다. 이웃에 혼사가 있을 땐 택일과 혼서지를 붓으로 써주셨다. 드물게 새로운 집을 지을 때 들보에다 상량문을 남기셨다. 이때도 먹물로 들보에다 쓰셨다. 지금은 고향을 지키고 계신 큰형님이 기제사 지방이나 축문을 붓으로 쓴다.
식물의 이름은 그 외형이 어떠한가에 따라 이름이 정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개 꽃이나 잎의 모양에 따라 이름이 붙는다. 복주머니란은 꽃이 정말 복주머니처럼 생겼다. 한때 요강처럼 생겼다고 요강꽃으로 불렸다. 노루귀는 이른 봄 먼저 핀 꽃이 지고 돋아나는 잎이 노루귀처럼 생겼다. 쥐똥나무는 초여름에 하얗게 핀 꽃이 지고나면 가을에 여무는 까만 열매가 쥐똥처럼 생겼다.
음택 풍수에서는 좌청룡 우백호에 해당하는 좌우 산세도 중히 여기지만 안산도 유의미한 관찰 포인트다. 안산(案山)은 묏자리 맞은편에 있는 산을 이른다. 고인의 혼백이 주야로 바라보고 후손을 응원하는 산인 셈이다. 안산은 모양에 따라 여러 이름이 붙는다. 그 가운데 문필봉을 최고 명당으로 꼽는다. 산의 형상이 먹물을 가득 머금은 듯 봉긋하게 솟은 산자락을 문필봉이라 이른다.
난초처럼 생기기도하고 창포처럼 생기기도 한 붓꽃이 있다. 붓꽃은 습지를 좋아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외래어로 아이리스라 부르기도 하고 독일붓꽃이라고도 부른다. 근래 콘크리트로 덮었던 도심하천을 생태하천으로 바꾸고 있다. 복원시킨 생태하천에 많이 심는 습지 식물이 창포와 붓꽃이다. 이런 식물들은 연이나 부레옥잠처럼 오염된 하천수를 정화시켜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동안 전임지에서 걸어서 출퇴근한 창원천변이었다. 집을 나서 퇴촌삼거리에서 반송공원 북사면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도심에 살면서도 계절의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창원천변 식생을 통해서였다. 이른 봄 버들개지가 부풀었다. 벚꽃이 지고 가로수가 신록으로 물드는 늦은 봄이면 앞서 언급한 창포와 붓꽃이 피었다. 바야흐로 지금이 그 계절이다.
지구온난화는 계절도 앞당기는 듯했다. 등꽃은 오월 초순, 아카시꽃이 오월 중순에 피었다. 그런데 이런 꽃들이 한 열흘 정도 앞당겨 핀다. 사월 말이면 등꽃이 피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카시꽃도 향기를 뿜어 벌을 불러 모을 낌새다. 붓꽃과 창포는 등꽃과 아카시꽃과 같은 시기에 피었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붓꽃과 창포가 피는 시기도 앞당겨졌다. 서둘러 사월 말에 피기 시작하였다.
도심 하천이나 주택 정원에 자라는 붓꽃 사촌쯤 되는 각시붓꽃이 있더이다. 이 꽃은 평지나 들판에서 피는 꽃이 아니었다. 산자락을 웬만큼 오른 가랑잎 덤불 속에서 피어났다. 산중에서 붓꽃 피는 시기보다 더 이른 삼월 하순이나 사월 초순 피어 시선을 끌었다. 파릇한 잎맥을 펼쳐 보라색 꽃을 피웠다. 붓꽃과 아주 비슷한데 잎줄기가 좀 야위고 꽃잎이 작아 난초처럼 청초해 보였다.
다시 붓꽃으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련다. 나는 그간 내가 근무하는 교정에서 봄날 피어나는 여러 꽃들을 살펴 그 존재가치를 드러내었다. 사월이 가는 마지막 주말을 앞둔 금요일 아침이었다. 학교 뒤뜰 산언덕 자연석을 쌓은 축대 아래에서 피어난 보라색 붓꽃을 발견했다.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의 눈에 쉬 뛰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아직 덜 핀 꽃은 꼭 먹물을 함초롬히 머금은 듯했다. 17.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