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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굿뉴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설교했던 도미니코 사제!
오늘도 여전히 성인 성녀들이 꾸준히 탄생하고 있습니다. 성인 성녀들은 각 시대의 필요성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부자와 기득권층에 둘러쌓여 본질을 잃어갈 때, 하느님께서는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인을 세우셨습니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던 아이들이 넘쳐나던 시절,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청소년들의 아버지 돈보스코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도미니코 사제(1170~1221) 역시 시대적 요청의 결과물입니다.
도미니코회 역사 자료에 따르면 그는 언제 어디서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복음의 전달자라는 신원의식을 드러냈습니다. 낮 동안 동료들과 엮어가는 수도 생활 속에서 그는 더없이 명랑하고 소탈했습니다. 얼마나 다정다감하고 붙임성이 많았는지 그의 주변은 언제나 그를 존경하는 동료 수도자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러다가 밤 시간이 다가오면 그보다 더 열렬히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주 밤새워 기도하곤 했는데, 너무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 동료 형제들이 그의 기도 소리에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덕행 중에 눈에 띄는 것 한 가지는 그의 과묵함입니다. 그는 수도공동체의 분열과 상처의 주원인이 되는 말을 지극히 아꼈습니다. 그가 입을 여는 순간은 주로 이런 때였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할 때. 형제들을 칭찬할 때. 하느님 앞에 형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드릴 때.
무엇보다도 도미니코는 지극히 겸손했습니다. 그의 탁월한 인품과 높은 성덕에 감화를 받은 그 지역 교황대사가 몇 번에 걸쳐 그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 마다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교직에 오르기보다는 공동체 형제들과 더불어 겸손하고 가난한 한 수도자로 남기를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이 살아가셨던 12~13세기는 교회, 정치, 경제적으로 급변하던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인구의 증가와 도시의 발달, 여러 국가들의 출현이 있었지만, 그에 따른 빈곤층을 양산했습니다. 십자군은 이슬람과의 끝도 없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이런저런 이단으로부터의 위협이 있었습니다. 당시 인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 청빈주의, 극단적 금욕주의를 지향하는 이단들이 성행했는데, 알비 지방의 카타리파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토록 어려운 시기에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선물을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가 바로 도미니코였습니다.
도미니코는 여러 이단들로부터 가톨릭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통 교리에 능통한 설교단이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유능한 설교자들로 구성된 도미니코회를 창설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정통 가톨릭 신앙의 파수꾼으로서 선봉에 선 도미니코회 회원들은 언제 어디서건 누군가의 회개를 위해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갑니다.
그들의 모토인 ‘진리를 관상하십시오! 그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에 따라 밤낮없이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를 공부하고 그 깨우친 바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도미니코 성인이 남기신 모범 가운데에서 오늘 날 우리 사제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말로서 만의 설교’가 아니라 복음 선포자가 먼저 복음대로 살아감을 통해 가르치는 ‘행동이 뒷받침되는 설교’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미니코의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설교의 배경에는 늘 깊은 하느님과의 일치와 기도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안식년
하바쿡 1,12─2,4 마태오 17,14ㄴ-20
산을 옮길 믿음이 있다면 삽부터 산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간질병 마귀에 걸린 아이를 치유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타볼산에서 변모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내려오시는 중이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안 계시니 먼저 제자들에게 이를 청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그 마귀를 쫓아낼 수준까지는 올라오지 못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실 때 제자들도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있는 가운데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에 제자들이 못 쫓아내는 마귀가 없고 못 고치는 병이 없기를 바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매우 암담합니다.
우선 우리 안에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때 제자들은 시도라도 해 보았습니다.
저도 본당에 있을 때 아프다고 안수해 달라고 오시는 분들이 제일 겁났습니다.
어차피 제 믿음으로는 안수해 줘 봐야 치유가 안 일어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고서도 “병원 가보셔야죠!”, “수술 잘 받고 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음 안에서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열매로 주어질까요, 씨앗으로 주어질까요?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을 옮기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런데 만약 복권에 당첨될 믿음이 있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먼저 복권을 살 것입니다.
한 번에 안 되면 또 살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들이 맞아가며 정말 믿음이 성취될 수 있음을 더 확고하게 믿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엔 반드시 당첨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이 자라나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자들이 예수님께 꾸중을 받는 것은 “그동안 왜 믿음을 성장시키지 못했느냐?”인 것이지, 믿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한자성어를 잘 압니다.
중국의 어느 마을에 ‘우공’이라는 사람이 죽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을 앞에 있는 큰 산 때문에 외지와의 소통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산을 옮길 계획을 짭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어디서부터 옮길 것인가를 궁리하고 삽을 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못하면 내 아들이 이을 것이요, 아들이 못하면 손자가 이을 것입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게 한 노인이 산을 옮기기 위해 매일 산을 파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자, 이에 감복한 임금이 산을 옮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인도에서 ‘다쉬라트 만지히’라는 농부가 바위산을 뚫은 일이 있습니다.
그가 살던 마을은 바위산으로 갇혀있어 다른 마을로 가려면 70km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다쳤을 때 그 산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 그가 산을 파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그는 염소를 팔아 망치와 정을 사고 그것으로 22년간 돌을 깨서 110m의 길을 만듭니다.
이로 인해 70km가 5km로 단축되었습니다.
인도 정부에서 그에게 상을 주려고 했을 때 그는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만든 길을 포장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길이 완성된 것입니다.
현대에 이렇게 치유의 기적이 부족한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은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씨로 뿌려집니다.
살이 빠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식사량을 줄이기 시작하고 운동을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믿으면 옮겨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삽과 곡괭이를 사야 합니다.
재테크 크리에이터 주언규 씨가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왔습니다.
그의 수익이 한 달에 1억 8천이 넘을 때도 많다고 합니다.
180만원 월급쟁이에서 어떻게 100배의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재테크 비법 때문입니다.
비법은 간단합니다.
우선 삽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쇼핑몰을 만드는 데는 그리 큰 비용이 안 든다고 합니다. 물론 잘 안 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안 되는 카페도 한 명은 손님이 있게 마련이라는 생각으로, 매일 한 개씩, 수백 개의
쇼핑몰을 만드는 것입니다.
잘 되는 쇼핑몰이 하루 10개를 판다면 그는 100개의 쇼핑몰을 만들어 하나씩만 판다고 합니다.
결국, 다 합치면 한 달에 엄청난 수입이 들어옵니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도 키워나가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몸이 아프다고 안수해 달라고 하는 분들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나에게 치유할 능력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크게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산 성당에 있을 때는 미사가 끝나고 나면 항상 수십 분의 신자분들이 머리를 숙이고 계셨습니다.
100명 안수해 드리면 2~3분은 몸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볼 때 감기가 낫는 정도인 것도 있고 조금 신기한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본당 평일 미사 중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치유의 미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분께 병자성사를 드리면 한두 분은 분명히 치유되는 분이 나올 것입니다.
병자성사는 돌아가실 분들만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성사입니다.
그 좋은 것을 돌아가시기 직전인 분들에게만 주기 위해 묵혀두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키울 때야 주님께서 오늘 제자들에게 들으라고 하시는 이 꾸중을 듣지 않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성사담당사제
복음: 마태 17,14-20: 믿음은 불가능한 것이 없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는 권능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마태 10,1 참조),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소년을 치유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 원인을 “믿음 없음”이라 지적하시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20절)라고 하신다. 여기서 믿음은 단순한 심리적 확신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드러나는 신뢰와 의탁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믿음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기도와 단식으로 정화된 마음이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할 때 비로소 능력을 드러낸다.”(n Matthaeum Homilia LVII 요약) 즉, 믿음은 지식이나 외적 권능의 문제가 아니라, 내적 겸손과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의 문제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겨자씨는 작지만, 땅에 떨어져 죽을 때 큰 나무로 자라난다(마태 13,31-32). 이는 믿음의 생명력이 비록 작게 시작되더라도, 하느님께 뿌리내릴 때 엄청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믿음을 씨앗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믿음은 겨자씨와 같다. 그것이 작아 보이지만, 사랑의 불로 태워질 때 열매 맺고 성장한다.”(Sermones 요약) 따라서 믿음은 우리 안에서 자라나도록 기도와 사랑, 단식과 희생으로 양육해야 한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9,29)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을, 단식은 자기중심적 욕망을 버리는 행위를 뜻한다. 교리서는 “유혹을 이기려면 기도와 절제가 필요하다. 기도는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고, 단식은 우리의 욕심을 낮춘다.”(540, 1434항 참조)라고 가르친다. 즉, 악을 몰아내는 힘은 하느님과 깊이 연결된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복음에서 간질병 환자의 아버지는 아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주님께 간청한다. 이는 믿음의 공동체적 차원을 보여 준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과의 일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치를 낳는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이들은 서로를 형제로 사랑하게 된다.”(Adversus Haereses, IV 요약) 하느님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다른 이의 고통과 문제에 더 민감해지고, 그들의 짐을 함께 지려는 마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늘날 우리도 제자들과 같은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가정 문제, 사회적 불의, 개인의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과 진실한 기도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희망을 준다. 우리가 겨자씨 같은 믿음을 지니고, 기도와 단식으로 주님께 의탁할 때,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과 욕심이라는 “마귀”가 물러가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기도하는 것이 힘들어요. 미사에 집중할 수 없어요. 스마트폰만 계속 보게 돼요. 시간 활용을 제대로 못 해요. 너무 게으릅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정말 힘들어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자기의 부족함에 죄책감이 든다고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나도 그런데….’
맞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산다고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너무 많은 이가 틀린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완벽한 모습을 꿈꾸는 우리입니다. 어쩌면 삶 안에서 완벽하기 위해 너무 힘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 운동 배울 때 코치님께서 항상 말씀이 생각납니다.
“힘 빼!!!”
우리 삶에도 힘을 빼면 어떨까요? 이것이 겸손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면서 자기 자리에서 조금 더 노력하는 삶을 주님께서는 원하십니다.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에 빠져 죄스러운 마음 갖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문제없음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뇌전증(간질)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고쳐 달라며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제자들에게 먼저 데려가 보았지만 고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마태 17,17)라고 말씀하신 뒤에, 호통을 쳐서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제자들이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마태 17,19)라고 말합니다. 실패를 숨기거나 남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께 답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예수님은 믿음의 양을 문제 삼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그 믿음이 온전히 하느님을 향해 살아있다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실패했던 이유는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기술에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자기 암시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어.”라는 철저한 의탁에서 나옵니다.
힘을 빼는 삶, 하느님께 철저히 의탁하는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면서, 더불어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때가 되면 일을 일으킨다(관자)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8.08.토.성 도미니꼬 사제 기념일.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마태 17,20)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는
은총입니다.
은총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중심을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믿음은 작은 겨자씨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점을 깨달을 때
성장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하느님께
맡길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사람입니다.
우리의 한계에 스스로 갇혀 있는
어리석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믿음을 선택하는
우리 존재의 결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작은 믿음 안에서
놀라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길은
믿음의 길입니다.
성 도미니코 사제는
사람을 살리는 사랑이
참된 믿음임을
일깨워 줍니다.
산은 믿음을 멈추게 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하느님께 더 가까이 오라는
은총의 초대입니다.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는
뜨거운 여름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은총은 믿음을 일으키고,
믿음은 은총을 삶으로
살아 내게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숨기지 않는
우리는 은총의 도구이며
은총의 그릇입니다.
※카톡 신부님 - 굿뉴스
※김경진 베드로 신부님 - 한마음청소년수련원
기도 안에서 그분 안에 머물러 있을 때
미사 중에 성체와 성혈로 우리에게 오실 때
예수님은 피와 살이 되어 우리의 일부가 되어 주십니다.
수많은 세상의 목소리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사제는 미사성제 안에서
복음이 살아있어야 하고
말씀이 우리 삶 안에서 움직여질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준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도구인 사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제가 교만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도구’로만
자리를 잘 지키고 있으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기적이 우리 삶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그분께서 도구를 통해 다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이루시는 일을 보고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도 트랙터는 아니지만
작지만 주님 손에 꼭 쥐어질 수 있는
호미 한 자루가 되어야겠습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하바1,12-2,4 마태17,14ㄴ-20
“의인은 성실함으로,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은 인간품위의 기초다>
"주님,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이면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시편92,3)
계절의 흐름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어제 입추후 오늘 아침 공기는 선선한 가을 분위기입니다. 사람은 생명이지만 AI는 기계입니다. 사람은 얼굴이 있지만 AI는 얼굴이 없습니다, 사람은 믿음이 있지만 AI는 믿음이 없습니다. 사람만이 생명을, 얼굴을, 믿음을 지닙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 표지글이 강렬했습니다.
“AI습격에 저항하라. 사람이 먼저다! 인공지능은 들불처럼 확산되고, 사람들은 그것이 인류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인류는 그것을 원하는가? 일자리와 기후, 사생활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는 디지털 몰록(Moloch) 앞에서 저항은 세계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현대판 몰록, 강력한 우상이, 얼굴도, 생명도, 믿음도 없는 기계인 인공지능 AI입니다. 참으로 절실해지는 <믿음의 삶>입니다. 생명의 믿음이요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믿음입니다. 얼마전 <겨울 숲 노년인생이 좋다>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여름오니
겨울 좋은 줄 알겠다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겨울 숲
여름 숲 나뭇잎들 온통 하늘을 덮었는데
겨울이 되면 나뭇가지들 본질만 남고
환히 드러날 배경 하늘과 산
이래서 젊음의 환상 허욕 탐욕들 거품 다 걷힌
그래서 믿음만 남은
텅 빈 충만 겨울 노년 인생이 나는 좋다..”<2026.6.27.>
더불어 생각나는 <소원>이란 엣 자작시입니다.
“누웠을 때는
넉넉한 들판이 되고
앉았을 때는
듬직한 산이 되고
서있을 때는
늠름한 나무가 되고
걸을 때는
유유히 흐르는 강이 되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다”<1998.3.12.>
다 증발되고 남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노년의 품위 유지의 우선적 순서는 1.믿음, 2.건강, 3.돈이라 강조합니다.. 하느님 믿음이 없고. 밥과 돈, 건강 욕심뿐이라면 노욕老慾의 노추老醜에 참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일 것입니다. 그러니 노년이 되어 갈수록 품위 있는 삶에 각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주 예전 왜관 본원에서 저녁 어둠 속에 걷는 노수도자들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참 초라해 보였습니다. 순간 <믿음이 걷는 모습>으로 보이면서. 존경스러운 마음 가득했던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좌우명시 제목도 “믿음으로” 말마디를 집어넣어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았습니다>로 해야 완전합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믿음뿐입니다. 믿음의 빛이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믿음의 <푸른 솔>같은 참으로 품위 있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식과 제자들의 물음과 예수님의 답을 통해 뚜렷이 부각되는 믿음입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라.’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삶의 거품이 걷혔을 때 과연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남아 있을런지요? 진짜 부자는 믿음 부자요 진짜 가난한 자는 믿음이 없는 자임을 깨닫습니다. 탓할 바 주님이 아니라 내 믿음 부족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날로 닮아가는 성화의 여정은 그대로 믿음의 여정이 됩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믿음입니다. 주님은 초조해하는 하바쿡 예언자에게 기다림과 인내의 믿음을 촉구합니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죽음처럼>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살리라.”
<죽음처럼> 말마디는 제가 삽입했습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입니다.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살 때 거품은 걷히고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믿음의 삶만 남을 것입니다. 결코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는 유혹에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믿음으로 삽니다. 모든 성인들이 특히 오늘 기념하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창립자인 도미니코 성인이 그 좋은 모범입니다. 그는 수도공동체를 거룩한 배움의 중심지로 삼고 구성원들의 연구, 교육, 설교, 그리고 기도에 전념하도록 했습니다. 성무일도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간소한 형태로 낭송했으며, 최초로 육체노동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수도회였습니다.
프란치스코와는 달리 뛰어난 조직가였고 공동책임의 선구자였습니다. 도미니코는 간결하고 조정의 여지가 있는 아우구티누스 규칙을 선택했고 더 큰 효과와 효율성을 위해 몇 가지를 추가했으며, 유럽 전역, 아시아, 북미, 중미, 남미로 까지 전파된 선도적인 선교단체중 하나가 됩니다. 성인의 말년 삶에 대한 묘사입니다.
“도미니코는 육류를 피했으며, 정해진 단식 시간과 침묵 시간을 준수했고 사치스러운 침소를 피하고, 될 수 있는 한 가장 누추한 거처와 가장 초라한 옷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입술은 슬픔이나 부정적인 말 대신에 오직 하느님을 찬미하는 소리만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의 하나인 묵주기도가 가톨릭교회에 널리 확산되어 활발히 보급되기까지 도미니코가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도미니코는 금욕적인 생활과 노동으로 몸이 버티질 못해서 결국 51세에 선종합니다. 도미니코는 죽기 전, ”형제들 간에 서로 사랑하여라, 겸손하여라, 청빈을 자발적으로 실천하여 영적인 보화를 만들어 가도록 하여라.” 유언한 후 1221년 8월6일 정오에 선종합니다. 1234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300년 경에는 500여 곳의 수도원에 1만 여명의 회원들을 지닌 수도회로 성장합니다.
성인의 성덕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참으로 믿음의 거인, 도미니코 성인이었습니다. 믿음의 여정, 믿음의 의인이요 성인들입니다. 의인은 성실함으로, 믿음으로 삽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루하루 <믿음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성실한 의인으로 품위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하시는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생각하심 그 얼마나 깊으시나이까"(시편92,6). 아멘.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17,20)
'믿음의 힘!'
오늘 복음(마태17,14ㄴ-20)은 '예수님께서 어떤 아이에게서 마귀를 내쫓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마태17,15-16)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마태17,17) 하신 다음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가고,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낫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마태17,19)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17,20)
베드로 사도가 '겸손의 덕을 간직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권고'(1베드5,5-11)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마귀는 늘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면서 우리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믿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꼭 붙어있는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우리도 마귀를 쫓아낼 수 있습니다.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귀의 모습'은 '악령'입니다.
'교만과 탐욕과 인색과 음욕과 분노와 시기와 게으름'과 같은 '질죄종의 모습이며, 육의 행실들'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갈라5,21ㄷ)
믿음의 힘으로 내 안에 있는 마귀들을 쫓아내고, 성령의 열매들로 채웁시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갑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5,22-25)
(~ 이사13,22)
복음말씀
제1독서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 하바쿡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12─2,4
12 주님, 당신은 옛날부터
불멸하시는 저의 하느님, 저의 거룩하신 분이 아니셨습니까?
주님, 당신께서는 심판하시려고 그를 내세우셨습니다.
바위시여, 당신께서는 벌하시려고 그를 세우셨습니다.
13 당신께서는 눈이 맑으시어 악을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잘못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시면서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바라보고만 계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이를 집어삼켜도 잠자코 계십니까?
14 당신께서는 사람을 바다의 물고기처럼 만드시고
우두머리 없이 기어다니는 것처럼 만드셨습니다.
15 그는 사람들을 모두 낚시로 낚아 올리고
그물로 끌어 올리며 좽이로 모으고 나서는
기뻐 날뛰며 16 자기 그물에다 제물을 바치고 좽이에다 분향을 합니다.
그것들 덕분에 그의 몫이 기름지고 음식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17 이렇게 그가 줄곧 그물을 비워 대고 민족들을 무자비하게 죽여도 됩니까?
2,1 나는 내 초소에 서서, 성벽 위에 자리 잡고서 살펴보리라.
그분께서 나에게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내 하소연에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보리라.
2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
3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4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믿음이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4ㄴ-20
그때에 14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15 말하였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