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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양어사(不讓於師)
인(仁)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마땅히 용감하게 나아가 반드시 행한다는 말이다.
不 : 아닐 불(一/3)
讓 : 사양할 양(言/17)
於 : 어조사 어(方/4)
師 : 스승 사(巾/7)
출전 : 논어(論語) 第15篇 위령공(衛靈公) 35章
子曰: 當仁하얀 不讓於師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衛靈公 35)
(注)
當仁은 以仁爲己任也라 雖師나 亦無所遜은 言當勇往而必爲也라
당인(當仁)은 仁을 자기 임무로 삼는 것이다. 비록 스승이라 하더라도 또한 사양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마땅히 용감하게 나아가 반드시 행한다는 말이다.
蓋仁者는 人所自有而自爲之요 非有爭也니 何遜之有리오
대개 인이란 사람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고 스스로 행하는 것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니 무슨 사양함이 있으리오.
○ 程子曰 爲仁은 在己하니 無所與遜이어니와 若善名은 在外하니 則不可不遜이니라
정자가 말했다. "인을 행함은 자신에게 있으니 사양함에 간여되는 바가 없거니와, 선한 명칭으로 말하면 밖에 있으니 이는 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항상 윗사람에게는 공손하고 양보하는 것이 예의라고 가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을 주장함에 있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인을 먼저 실천함으로써 스승을 기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성공비결이 있다. 그것은 바로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점이다. 예컨대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거나 직장 선배의 조언 한 마디가 성공의 밑천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내게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모두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갈 때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으니, 좋은 점은 좇고 좋지 못한 점은 고쳐야 한다."
(述而21)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호학(好學)이다. 말 그대로 '배우기 좋아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엔 나와 100% 똑 같은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무언가 나보다 잘났거나 아니면 나보다 못난 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시기하거나 질투 하곤 한다. 가끔은 그의 재능을 깎아 내릴 때도 있다. 공자는 바로 이것을 경계하고 있다.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을 보면 그것을 부러워만 하지 않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스승을 만나는 첫 번째 비결이다.
둘째, 반면교사(反面敎師)이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이다. 호학으로 스승을 만나는 것은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났을 경우라면, 반면교사는 이와는 정반대로 나보다 못난 사람을 만났을 경우에 해당한다.
나보다 못난 사람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를 비난하거나 뒷담화를 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러한 뒷담화는 나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자는 타인의 잘못을 보고 자신에게는 그런 점이 없는가를 살펴보고 혹시 있다면 그것을 고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타인의 잘못을 보고 배운다는 말의 뜻이다.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실력이 더 좋을 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을 한다. 이것은 본래 '순자(荀子)'에 있는 "푸른색은 쪽풀에서 나왔으나 쪽풀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로 만들었으나 물보다 차다(勸學)"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푸른색은 쪽풀에서 나왔다'란 뜻에서 '청출어람'이란 말이 생긴 것이다.
스승은 내 인생의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은 존재다. 스승은 나에게 선현들이 남겨 놓은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르쳐 준다. 또한 인간의 도리를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그 만큼 내 인생의 멘토(Mentor) 중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바로 스승이다.
그러나 스승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길로 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예컨대 공자 역시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도 한다. 공자와 같은 성인(聖人)도 그럴진대 하물며 평범한 인간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여 스승은 부모와 임금처럼 높이고 존경했다. 따라서 스승에게 양보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
그러나 스승에게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해서 진리를 탐구하거나 그 진리를 실천하는 것까지 스승에게 양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공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진리를 얻고 실천하기 위해 스승이 있는 것이지, 스승을 위해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혹시라도 스승에게 잘못이 있다면, 제자의 도리를 다하여 간하지 못할지언정 오히려 그 일에 동조하거나 조장한다면 이는 스승과 제자의 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공자가 살던 시대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본보기가 될 만한 사제관계가 드문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행동
공자는 일생을 통하여 공부하는 것(學)을 싫어한 적이 없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敎)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그는 가르침과 배움을 통하여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따라서 가르침과 배움에 관한 사상은 곧 그의 사상과 학설에서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공자는 일정한 스승이 없었지만, 평생을 마음을 비우고 배우기를 좋아했다. '논어'에 나오는 배움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살펴보자.
위정편(爲政篇)에서 자로에게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했다.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안다고 떠들고, 모르는 것도 안다고 거짓말을 하는, '부지이작(不知而作)'의 세태를 비난할 자격도 없이, 때로는 나 자신마저 그 허물을 벗을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드는 대목이다.
지도자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라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몰라서 그러니 가르쳐 주십시오" 아는 척하는 것은 무지보다 더 사악하다.
술이편(述而篇)에서는 "세 사람이 함께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좋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으면 그에 따르고,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으면 고치면 된다(三人行, 必有牙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고 하였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은 당연히 나의 스승이지만, 나보다 못한 사람도 훌륭한 스승이 된다. 인간의 가장 못된 근성 가운데 하나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고, 나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 절절매는 것이다. 진실로 위대한 사람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깨닫는 사람이 아닐까? 따라서 성공한 케이스를 공부하는 것에 못지않게, 실패한 케이스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敏而好學, 不恥下問)"고 하였다. 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는 "인을 두고서는 스승이라도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當仁, 不讓于師)"고 했다. 오로지 진리와 정의만을 인정해야지, 인간적 한계가 있는 자연인으로서의 스승을 맹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는 스승을 사랑하지만, 진리를 더 사랑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뜻이다.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권력과 권위와도 대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승의 학문적 업적을 뛰어넘는 것이 제자로서의 의무일진데 우리 학계의 현실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과 함께 공자와 같은 큰 스승이 그리워진다.
그는 자기가 공부했던 경험을 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찍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루 종일 밥도 먹지 않았고, 밤이 새도록 잠도 자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별로 유익한 것은 없었고,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못했다(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위정편(爲政篇)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를 않으면 위험한 인간이 된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한 것과 통하는 말이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이라도 책을 통해서 지식을 배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자신이 대단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옛사람이 이미 그와 유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공자 이전에는 '학재관부(學在官府)'라 하여 교육자나 피교육자나 모두 귀족들이었다. 공자가 사립학교를 설립한 이후로는 '국적과 계급을 가리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다(有敎無類).' 공자의 학생들은 11개 제후국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배우겠다는 사람은 모두 몰려왔다.
학습목적에 관해서 공자는 "배워서 출사(出仕)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제자들에게 주지시키고, 평민출신의 학생들이 정치적 재능을 발휘하기를 바랐다. 그가 이러한 학풍을 일으킨 이후로 신분의 귀천과 고하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학문을 연마하는 풍조가 크게 일어났다.
나름대로의 공부를 한 사람들이 권력을 강화하려고 시도했던 제후들과 결합하자 천하는 더옥 혼란에 빠졌다. 전국시대는 공자가 조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에 있어서도, 공자는 학생들의 성격과 학업능력 그리고 처지를 감안하여, 최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있는 이야기이다. 공자는 자로와 염유(冉有)가 똑같이 "들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실행을 해야 하는가?"는 질문을 했을 때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대답했다. 자로에게는 부모와 형제가 있으니 "어떻게 그대로 하겠느냐?"고 말렸으며, 염유에게는 "당연하지!"라고 대답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공서화(公西華)라는 사람이 왜 서로 다른 대답을 하는지 이상하다고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염유는 망설임이 많고 추진력이 없기 때문에 배우면 그대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로는 생명력이 강하여 열정과 기백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 그러므로 지나침을 경계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공자는 자로의 이런 점을 염려하여, 늘 "저 놈은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공자의 이러한 경계에도 불구하고, 자로는 싸움터에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고 싸우다가 죽고 말았다. 요즘 말로 하면 공자의 맞춤식 교육이다.
또한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지적 욕구를 격발시키기도 했다. 논어 술이편(述而篇)에는 이러한 공자의 교육방법이 나온다. "격분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르치지 못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분발하지 않으며, 한 쪽 모서리를 들어 보일 때 나머지 세 쪽 모서리를 돌이켜 깨닫지 못하면, 본래의 자기 지혜를 되찾지 못한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격분은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왕성한 욕구를 말한다. 강력한 모티베이션이야 말로 학구욕의 원천이다. 공자는 학생들의 학구욕을 자극하기 위하여 때로는 무안을 주고 때로는 다른 학생과 비교를 하기도 했다.
배우겠다는 각오가 단단하지 않은 학생을 가르칠 수는 없다. 또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단순히 기존의 지식을 습득하고 외우는 것으로는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공자는 당인(當仁) 불양어사(不讓於師)라 하여 자기가 생각하는 인이 있으면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고 따지라고 했다. 꼿꼿한 사나이 한유도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현명하지는 않다(師不必賢於弟子)"고 했다.
그렇게 해야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참다운 지혜를 터득한다는 말이다. 지혜는 내성(內省)을 통하여 자기화가 되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공자가 학생들에게 강조한 가장 기본적인 학습방법은 열심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었다. 그는 술이편에서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재빨리 터득했던 사람일 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而求之者也)"고 했다.
'생이지지(生而知之)'는 태어날 때 이미 어떤 지식을 갖추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아마도 '학이지지(學而知之)'가 아닐까? 배워서 아는 것이니까 공자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나 '발비망식(發備忘食)' 또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모두 '학이지지'를 가리키는 말일게다.
논어 위정편에는 공자가 배우기를 자신만큼 좋아했던 안회를 평가하며 "내가 안회와 하루 종일 이야기를 했지만, 한마디도 거스르지 않아서 바보 같았다. 그러나 안회는 집으로 돌아가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말한 것이 무슨 뜻인지를 밝혀냈다. 안회야말로 바보가 아니었다"고 칭찬했다. 안회에 대한 공자의 편견은 좀 지나치다할 정도이다. 성인도 편견을 가지기는 하나보다.
반면에 공야장편(公冶長篇)에는 낮잠을 자다가 들킨 재여(宰予)를 꾸짖으며,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가 없고, 푸실푸실해진 담장은 손질을 해도 헛일이다. 그러니 재여에게 기대를 하지 말아라"고 말했다. 재여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 말을 잘하기로 이름난 사람이다.
공자는 제자들의 재능을 언어, 문학, 덕성, 정치 등 4가지로 구분했다. '논어' 곳곳에는 말 잘하는 사람에 대해 그리 높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공부시간에 졸다가 들켰으니 꾸중을 들어도 싸다.
그러나 공부시간에 졸리면 자는 것이 좋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면 맑은 정신으로 돌아간다. 그것을 몰랐던 공자가 아니므로, 아마도 공부시간에 졸았던 재여의 건강상태를 걱정한 말일게다. 오히려 자도록 그냥 두어라는 스승의 배려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몸이 약한 사람이 머리가 좋다. 구당(灸堂) 김남수선생은 "천재는 대부분 오줌싸개"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신기하게도 그 말씀이 사실이었다. 맹자도 진심장에서 "덕, 지혜, 기술, 지식이 뛰어난 사람은 대부분 우환이나 질병이 있다"고 했다.
송대의 유명한 철학자 소강절(邵康節) 선생도 선천적으로 햇빛을 보지 못하는 이상한 질병이 있어서 죽을 때까지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황극경세(皇極經世)'와 '하락이수(河洛理數)'와 같은 저술은 그러한 사람이 썼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웅대하다.
공자는 또 배움과 견문을 결합하고, 거기에 진지한 사고가 곁들여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술이편에서 공자는 약간의 자기 자랑이 섞인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창작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많이 듣고 그 가운데 좋은 점이 있으면 따르고, 많이 보고 그것들을 기억해 두는 것이 원래부터 아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
내게는 상당히 찔끔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쓰다가 한 참 주저하고 말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글을 쓰는 것을 '부지이작(不知而作)'이라 한다. 나야 어차피 견문을 넓히는 의미로, '부지이작'을 하기로 작정했으니까 그냥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
위정편에서는 "배우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했다. 인재는 재능과 덕성과 학문이 겸비되어야 한다. 덕성이야 타고나는 것이지만, 재능은 후천적이다. 양자를 겸비하도록 하는 방법이 학문이다.
공자는 '주역' 건괘 문언전에서 학문의 방법론을 4단계로 설명했다. "학이취지(學以聚之)하고, 문이변지(問以辨之)하고, 관이거지(寬以居之)하고 인이행지(仁以行之)라."
진리에 이르는 길은 우선 배워서 견문을 넓히고, 이러한 식견의 타당성을 분별하기 위하여 훌륭한 스승을 찾아가 질문을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나와 다른 견해를 널리 포용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민망한 말이지만, 나는 역경의 이 대목을 읽기 전에, '학문(學問)'을 한자로 '학문(學文)'으로 쓰는 줄 알았다. '학이불사(學而不思)'는 배우기만 하고 자기화가 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며, '사이불학(思而不學)'은 객관성이 없는 독선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배우고 물어서 얻은 지식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자기화를 하는 것과, 깊은 사고를 통해 얻은 통찰을 객관화하는 것은 진리에 이르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무엇보다 공자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배운 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논어 이인편은 현실적으로 인이 어떻게 활용되는가에 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공자는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지만 행동에 옮길 때는 재빠르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고 말했다. 진정한 인자는 빈 말은 잘 하지 않지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행동이 민첩해진다.
또 "인을 체득하지 못한 사람을 싫어하는 인자는 스스로 인을 행하여 상대가 더 이상 불인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加乎其身)"고 하여, 솔선수범을 통하여 교화를 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인자는 어떻게 할까? 공자는 어떤 사람의 잘못이 그 사람의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을 보면, "인자는 자기반성의 기준으로 삼을 뿐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군자는 그 일의 도리를 생각하지만, 소인은 혜택이나 이익을 생각한다"고 비난을 하기도 했다.
또 "보통의 사람들은 주로 땅과 같은 재산의 증식에 관심이 많지만, 인자는 오로지 어떤 것이 올바른 도리인지를 생각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땅 투기꾼은 적어도 인자는 아니다.
또 "인자는 일을 할 때는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공적을 세우고 나면 대가를 차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상당한 관직에 엽관제도를 바탕으로 등용이 되는 오늘 날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노자도 "공이 이루어지고 이름이 나게 되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功成名遂, 身退, 天之道也)"라 했다.
◼ 仁을 행함에는 스승께도 양보하지 않는다
子曰 當仁하야는 不讓於師니라
(論語 衛靈公 35章)
흔히 세상 사람들은 '논어'에 권리 사상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하지요. 또한 권리 사상이 없기 때문에 문명국에서는 논어를 온전하게 교육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릇된 견해이자 오해일 뿐입니다.
역시나 공자교(孔子敎)를 표면적으로나마 관찰하면, 더러는 권리사상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기독교를 정수로 한 서양 사상과 비교하자면, 분명히 권리 사상이 박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아직껏 공자(孔子)를 참말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처음부터 종교로써 세상에 나왔지만 유교는 불교, 기독교와는 전혀 다르게 성립했던 것입니다. 특히 공자가 살던 시대에 중국의 풍습은 그 무엇보다도 의무를 우선시하고 권리를 나중에 두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성장한 공자를 두고 2천년 후인 오늘날, 전혀 사상이 다른 기독교와 비교하는 것은 이미 비교가 불가능한 것을 두고 굳이 비교하는 형국일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이 논의는 처음부터 그 뿌리를 잘못 찾은 게 아닐까? 하여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럼 공자교에는 권리 사상이 전혀 없는 것일까? 제가 생각하는 바를 조금 피력해 작은 힘으로나마 이 사회를 약간 깨우쳐 볼까 합니다.
논어주의(論語主義)는 '자신을 다스리는'게 가르침의 취지입니다. 사람은 당연히 이런저런 처신을 해야 한다. 혹은 사람은 응당 저렇게 해야만 한다고 옴니암니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것을 소극적인 방식으로 '인도(仁道)'라고 설명하지요.
만약 우리가 정말로 이러한 주장을 널리 보급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럼, 사람들을 반드시 천하에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의 진의를 미루어 헤아려 보면, 공자는 처음부터 종교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설을 세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공자에게 교육 관념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공자에게 정권을 장악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선정을 베풀면서, 부국안민(富國安民)을 하고 왕도(王道)를 실현시키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공자는 애초에 경세제민(經世濟民)을 하는 정치가가 되고자 했습니다. 공자가 경세가의 입장으로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문하생(門下生)들이 여러 가지로 복잡한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해 공자는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었던 것이지요.
문하생들도 다양한 계층을 이루었기 때문에 질문도 상당히 광범위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정치에 대해 묻고, 어떤 학생은 충효(忠孝)에 대해 묻고, 어떤 학생은 신학(禮學)이나 문학(文學)을 묻기도 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러한 문답을 한데 모으자, 이윽고 '논어(論語)' 20편이 엮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는 만년인 68세에 이르기까지 시경(詩經)을 연구하고, 서경(書經)을 주해하고, 역경(易經)을 편집하고, 춘추(春秋)를 지었습니다. 공자는 단지 68세 이후 세상을 뜨기 전 5년간만을 포교적인 교학에 전념한 걸로 보입니다.
이처럼 공자는 권리 사상이 결핍한 사회에서 생활을 한 것이지, 결코 종교적 입장에서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한 게 아닙니다. 공자의 교육학에서 권리사상을 확연하게 강조하지 않은 것은 실제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에 반해, 완전히 권리 사상에 충실한 가르침이지요. 원래 유태(猶太; 이스라엘)와 이집트 등의 나라 풍습은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강하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들의 사회에서 수많은 예언자들이 나왔죠.
기독교의 선조인 아브라함부터 기독교의 2천년 역사 동안 모세라든지, 요한 등의 예언자들이 나왔습니다. 또는 예언자풍의 성왕들이 나와 치세를 펼쳤습니다. 혹은 국왕들은 일반적인 신처럼 세상을 다스렸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시대에 기독교가 생겨났는데, 로마 총독은 예언자의 말을 믿고 자신을 대신해 세상을 통치하는 이가 나타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근처의 모든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다른 곳으로 다행히 도망을 쳤기 때문에 재앙을 면할 수가 있었지요. 기독교는 실제로 이렇게 잘못된 몽상의 시대에 태어난 종교이기 때문에 교리가 명령적이고 권리 사상도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愛)과 논어가 가르치는 어짊(仁)은 거의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의 차이가 있지요.
가령 예수교 쪽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다른 이에게도 베풀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논어는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가르칩니다. 문득 보면 공자는 거의 의무만 신경을 쓰고 권리 개념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양극단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두 가지 말은 목적이 종국에는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종교로써, 또는 경문으로써는 예수교의 가르침이 좋습니다만,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로써는 공자의 가르침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의 관점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제가 높이 신뢰하는 것은 공자 사상은 기적을 논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간에 기적이 매우 많이 있지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은 후 3일 만에 다시 소생한 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물론 이러한 기적이 우수한 인간의 몸에 결단코 나타나지 않는다고 우리가 단언을 할 수야 없지만, 보통 사람들의 지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만약에 그러한 기적을 완전히 믿는다면, 혹여 미신에 빠진 것은 아닐런지요. 일단 이와 같은 기적을 하나하나 사실이라고 인정하면 우리의 지식은 전부 종적을 감추어야만 하는 게 아닐까요?
주술(呪術)에 의해 물 한 방울이 의약품 이상의 효과를 내고, 질냄비에 삶은 쑥 한 포기가 치료 효과를 내거나하는 믿음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마침내는 커다란 재앙으로 변질되고 말 것입니다.
일본은 문명국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지만 엄동설한에 흰 옷을 입고 신사(神社)에 참배를 한다든지, 콩을 뿌리고 움직이지 않는 신을 부르며 액운을 쫓는 풍습이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신의 나라라고 힐난을 받아도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인 것이지요.
하지만 공자는 기적이라든지 미신이라든지 하는 것은 믿을 수 없기에 논하지 않았습니다.
子不語, 怪力亂神.
공자께서는 괴상한 일, 무력을 사용하는 일, 덕을 어지럽히는 일, 알 수 없는 귀신에 대한 일, 이 네 가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고 답했다.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번지가 지혜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지켜나갈 도의에 힘쓰고, 귀신을 존경하되 멀리하면 지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공자를 믿는 이유이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조건이 아닐런지요.
논어에 권리 사상이 들어가 있는 증거는 "인을 행함에는 스승께도 양보하지 않는다(當仁, 不讓於師)"고 말한 대목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도리가 올바르다면 곧바로 자신을 관철시키며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스승은 당연히 존경해야 하지만 仁(어짊)을 실천함에는 스승님일지라도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이 말씀에 생동하는 권리 사상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요? 사실 오직 이 구절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논어의 각 장을 섭렵하다 보면 이와 유사한 구절들을 많이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 공자의 인(仁) 사상이 주는 교훈
공자는 유교의 시조로서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유교는 조선 500여 년의 생활신조이기도 했다. 이러한 유교 문화는 현재에도 우리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며 생활 속에 토착화되어 많은 가르침과 교훈을 주고 있다.
공자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덕목으로 인(仁)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인(仁)은 사람 인(人)과 두 이(二)로 된 글이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자는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어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제자 증삼은 이를 "스승의 도는 충서(忠恕)일 따름이다"고 풀이했다. 충서(忠恕)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인격을 쌓고 그것을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공자는 사람의 최고 가치 인(仁)은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이며, 충(忠)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중용의 소리이며, 여(恕)는 남을 나와 같이 여겨 사랑하는 마음이 조화를 이룬다는 인(仁)사상은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공자의 많은 제자 중 '안연(顔淵)'은 "선생님! 인(仁)이란 무엇을 뜻합니까?"고 묻자, 공자는 "사람을 대할 때는 성실하고 온화하고 진실하게 대해야 한다. 또한 불행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이다.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학문이나 재물을 필요한 경우 널리 베풀어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말과 행동에서도 자기 자신의 뜻이나 욕심만 앞세우는 주장을 일삼아선 아니되며 항상 예절을 갖추어 지나침이 없고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하여 실행할 때 그것이 바로 인(仁)이다. 그리하여 인(仁)은 스스로 실천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 안연은 "예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자, 공자는 "예법이 아닌 것은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에는 신분에 따라 군신(君臣), 부자(父子), 귀천(貴賤), 상하(上下), 친소(親疎)의 구분이 엄격하고 예의를 숭상하였다.
공자의 인(仁) 사상은 대체로는 지덕(至德), 지선(至善)의 뜻을 지니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명분을 바르게 하고(必也正名乎),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君君臣臣),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父父子子) 각자가 본분을 지킴으로써 국가와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다.
인(仁)을 지향하고 예(禮)에 정진하며 실천하는 사람이 군자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소인이자 악인으로서 군자가 덕을 생각할 때 소인은 이익만을 생각하며, 악인은 타인에게 해를 끼쳐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행한다.
예(禮)가 엄격하고 절도가 있으며 성품은 엄숙하면서 원만하였다. 제자를 교육함에서는 각인(各人)의 능력과 이해 정도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성품을 계발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에서 인(仁)을 지향하고 예(禮)를 실천에 옮긴다면 틀림없이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인(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자의 인(仁)사상은 역사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임진왜란 시 이순신 장군을 위시하여 많은 의병활동은 물론 경술국치 전후 안중근 의사를 위시한 많은 우국 열사들의 활동 등 국가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이 바로 유교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仁)사상에서 예(禮)를 중시한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즉, 이웃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대승적으로 자기희생까지 감수하는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공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인(仁)의 사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 공자는 지혜를 남용하거나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독선을 부리는 일이 없이 실천하면서 오직 제자의 훈도와 백성들의 교화에 힘쓴 것을 보면 당시의 성인군자인 것은 틀림이 없다.
공자의 유교 사상 핵심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은 어질고, 의롭고, 예의를 알며, 지혜롭고, 신망이 두터운 인간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인(仁)의 사상이 정리된다.
일찍이 공자는 인생의 삼락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에 지루함을 모르는 즐거움, 오랜 벗이 멀리서 찾아오는 즐거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 쓰지 않는 즐거움이라 했다. 그러나 각자의 취향이나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공자의 군자삼락이야말로 만인에 통용되는 낙(樂)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자의 도덕성 회복은 바로 인(仁)이다. 이는 인격자로서 만인을 사랑하고 인간다움을 지니라는 의미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제시한 항목이 바로 효제충신(孝悌忠信)이다. 즉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 내면적 성실과 이웃 간의 신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노력하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물질문명의 풍요로움 속에 살아가면서 도덕 문명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공자는 "총명하고 지혜롭더라도 어리석음을 지녀라. 공적이 세상에 가득해도 겸양을 지녀라. 용감함이 세상에 떨쳤어도 소심함을 지녀라. 세상을 다 가질 만큼 부유하더라도 겸손을 지녀라"는 명언이 공자의 인(仁) 사상으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으로 삼아 살아가면 좋겠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讓(사양할 양)은 ❶형성문자로 譲(양)의 본자(本字), 让(양)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씀 언(言;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襄(양; 다툰다)으로 이루어졌다. 서로 말다툼하다의 뜻이 전(轉)하여 사양하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讓자는 '사양하다'나 '양보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讓자는 言(말씀 언)자와 襄(도울 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먼저 襄자를 살펴보면 衣(옷 의)자와 口(입 구)자와 같은 매우 복잡한 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상(喪)을 당해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襄자에 言자를 결합한 讓자는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을 '(말로) 도와주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讓자는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준다는 의미에서 '양보하다'나 '사양하다'는 뜻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讓(양)은 ①사양하다 ②양보하다 ③겸손하다 ④넘겨주다 ⑤꾸짖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겸손할 손(遜), 겸손할 겸(謙)이다. 용례로는 권리나 이익 따위를 남에게 넘겨 줌을 양도(讓渡), 지위를 남에게 사양함을 양두(讓頭), 길을 남에게 사양함 또는 길을 서로 비켜 줌을 양로(讓路), 토지의 경계선을 사양함을 양반(讓畔), 남에게 좌석이나 길이나 물건 따위를 사양하여 물러나는 것을 양보(讓步), 남에게 앞을 양보함 또는 먼저 하기를 사양함을 양선(讓先), 넘겨받음을 양수(讓受), 자기의 소유를 보상없이 남에게 넘겨 줌을 양여(讓與), 임금이 자리를 물려 줌을 양위(讓位), 나누어서 넘겨 줌을 분양(分讓), 겸손한 태도로 사양함을 겸양(謙讓), 남에게 옮기어 줌을 이양(移讓),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겸손하게 응하지 않거나 받지 아니함을 사양(辭讓), 겸손히 마다하며 받지 않거나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사양지심(辭讓之心), 물려줌과 내침이라는 뜻으로 고대 중국에서 임금의 자리를 세습하지 않고 덕이 있는 이에게 물려주는 일과 악정을 행하는 제왕을 몰아내어 토벌한 일을 일컫는 말을 선양방벌(禪讓放伐), 상대방 또는 남에게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일보불양(一步不讓), 겸손하게 사양하는 미덕을 일컫는 말을 겸양지덕(謙讓之德) 등에 쓰인다.
▶️ 於(어조사 어, 탄식할 오)는 ❶상형문자로 扵(어)의 본자(本字), 于(어)는 간자(簡字)이고, 烏(까마귀 오)의 옛 글자의 약자이다. 까마귀의 모양을 본떠, 음을 빌어 감탄사, 관계, 비교를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於자는 '~에'나 '~에서'와 같은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於자는 方(모 방)자와 仒(구결자 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仒자는 한문 문장에 구두점을 찍는 용도로 쓰이는 글자로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 게다가 於자는 方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於자의 금문을 보면 烏(까마귀 오)자에 仒자가 결합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於자는 본래 까마귀가 내는 소리에 빗대어 '아아'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였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는 얼마 쓰이지 않은 채 지금은 다양한 '어조사'로만 쓰이고 있다. 烏자는 해서에서부터 方자로 바뀌었다. 그래서 於(어)는 (1)한문 투의 문장에서 장소를 표시하는 말이 얹히어에서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조사(~에, ~에서) ②기대다, 의지하다 ③따르다 ④가다 ⑤있다, 존재하다 그리고 ⓐ탄식하다(오) ⓑ아아(감탄사)(오) ⓒ까마귀(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까마귀 오(烏)이다. 용례로는 이제야 또는 여기에 있어라는 어시호(於是乎), 마음속 또는 주로 ∼에 꼴로 쓰이는 어심(於心), 벌써나 어느새는 어언(於焉), 가운데가 되는 정도라는 어중(於中), 바둑판에서 배꼽점을 중심으로 한 부분을 어복(於腹), 거의 중간쯤 되는 데를 일컫는 말을 어중간(於中間), 부인이 예장할 때 머리에 얹는 다리로 만든 커다란 머리를 일컫는 말을 어유미(於由味),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뜻으로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말하기에 따라 사뭇 달라짐을 일컫는 말을 어이아이(於異阿異),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어쨌든을 일컫는 말을 어차어피(於此於彼),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는 동안에를 일컫는 말을 어사지간(於斯之間), 썩 흡족함을 일컫는 말을 어량족의(於良足矣), 자기 분수에 만족함을 일컫는 말을 어분족의(於分足矣), 온갖 일을 일컫는 말을 어천만사(於千萬事), 그때를 한창으로 함을 이르는 말을 어사위성(於斯爲盛), 그것으로 만족함을 일컫는 말을 어사족의(於斯足矣), 알지 못하는 동안에 어느덧을 일컫는 말을 어언지간(於焉之間), 푸른 색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것을 비유하는 말을 청출어람(靑出於藍),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라는 뜻으로 약한 자가 강한 자들 사이에 끼여 괴로움을 받음을 이르는 말을 간어제초(間於齊楚), 가마솥 속에서 논다는 뜻으로 생명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이르는 말을 유어부중(游於釜中), 지극히 선한 경지에 이르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람은 최고의 선에 도달하여 그 상태를 유지함을 이상으로 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지어지선(止於至善),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뭍에서 배를 민다는 뜻으로 고집으로 무리하게 밀고 나가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추주어륙(推舟於陸), 혀가 칼보다 날카롭다는 뜻으로 논봉의 날카로움을 이르는 말을 설망어검(舌芒於劍), 백성은 신의가 있을 때에 안정된다는 뜻으로 백성은 신의에 의해서만 잘 다스려진다는 말을 민보어신(民保於信), 먼저 곽외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말한 사람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선시어외(先始於隗), 스스로 목매어 도랑에 익사한다는 뜻으로 개죽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경어구독(經於溝瀆) 등에 쓰인다.
▶️ 師(스승 사)는 ❶회의문자로 师(사)의 본자(本字)이다. 왼쪽(지층의 겹)과 오른쪽(골고루 돎)의 합자(合字)이다. 옛날에는 언덕에 사람이 모여 살고 또 군대(軍隊)가 주둔했으므로 사람이 많다에서, '군대'의 뜻이 되었다. 또 사람의 모범이 되어 남을 이끄는 사람에서, '선생'의 뜻이 되었다. 사람이 많다는 뜻에서 '수도(首都)'도 師(사)라 한다. ❷회의문자로 師자는 '스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師자는 阜(언덕 부)자와 帀(두를 잡)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帀자는 '빙 두르다'라는 뜻을 표현한 모양자이다. 그러니 師자는 언덕을 빙 두른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師자는 본래 군대 조직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고대에는 약 2,500명의 병력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니 師자는 군인의 수가 언덕 하나를 빙 두를 정도의 규모라는 뜻이었다. 師자는 후에 '스승'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는데, 가르침을 얻기 위해 스승의 주변을 제자들이 빙 둘러 앉아있는 것에 비유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師(사)는 (1)스승 (2)고대(古代) 중국의 군제(軍制)에서, 여(旅)의 5배, 곧 2천 500인을 이르던 말 (3)조선시대 때의 세자사(世子師)를 달리 이르던 말 (4)조선시대 때 세손사(世孫師)를 달리 이르던 말 (5)고려 때 세자사(世子師)를 달리 이르던 말 등의 뜻으로 ①스승 ②군사(軍士), 군대(軍隊) ③벼슬아치 ④벼슬 ⑤뭇 사람 ⑥신령(神靈), 신의 칭호(稱號) ⑦전문적인 기예를 닦은 사람 ⑧악관(樂官), 악공(樂工) ⑨육십사괘의 하나 ⑩사자(獅子) ⑪스승으로 삼다, 모범으로 삼다 ⑫기준으로 삼고 따르다, 법으로 삼게 하다 ⑬수효가 많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스승 부(傅),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우 제(弟)이다. 용례로는 모든 행동과 학덕이 남의 스승이 될 만한 모범이나 본보기를 사범(師範), 스승으로 섬김을 사사(師事), 학예에 뛰어나 남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사장(師匠), 스승과 제자를 사제(師弟), 스승의 의견이나 학설을 사설(師說), 가르침의 은혜가 높은 스승을 아버지처럼 높이어 일컫는 말을 사부(師父), 학식과 덕행이 높아 세상 사람의 표적이 될 만한 사람을 사표(師表), 스승의 집을 사가(師家), 스승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사법(師法), 스승과 벗을 사우(師友), 스승의 은혜를 사은(師恩), 학술이나 기예를 가르치는 스승을 교사(敎師), 병을 진찰 치료하는 사람을 의사(醫師), 학교의 부탁을 받아 강의하는 교원을 강사(講師), 은혜를 베풀어 준 스승이라는 뜻으로 스승을 감사한 마음으로 이르는 말을 은사(恩師), 으뜸 장수 밑에서 작전을 짜고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을 군사(軍師), 스승과 제자가 함께 길을 감 또는 스승과 제자가 한 마음으로 연구하여 나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제동행(師弟同行), 군사를 출정시킬 때에는 엄한 군법으로 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사출이율(師出以律), 자기의 생각만을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사심자시(師心自是), 스승이 엄하면 자연히 가르치는 道도 존엄해짐을 이르는 말을 사엄도존(師嚴道尊),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법이 이어져 전해 감을 일컫는 말을 사자상승(師資相承), 덕을 닦는 데는 일정한 스승이 없다는 뜻으로 마주치는 환경과 마주치는 사람 모두가 수행에 도움이 됨을 이르는 말을 덕무상사(德無常師),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나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은 무엇이나 내 몸가짐에 대한 깨우침이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다는 말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후세까지 오래도록 모든 사람의 스승으로 숭앙되는 덕과 학문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백세지사(百世之師),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으리오 라는 뜻으로 성인에게는 일정한 스승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하상사지유(何常師之有), 책 상자를 지고 스승을 좇는다는 뜻으로 먼 곳으로 유학감을 이르는 말을 부급종사(負芨從師),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한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존사애제(尊師愛弟) 등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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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