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를 걷는 삶(8/8)
-참 기쁨의 순간-
하루를 살아가고 일주일을 살며 그리고 한 달을 지내다 보면 정해진 나의 기쁨의 순간들이 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일을 하다가 오후 4시가 넘어가면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이유는, 조금 있으면 퇴근하고서 집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요일 혹은 토요일도 마찬가지다. 그다음 날 쉬기 때문이다.
좀 힘이 들고 고난이 겹쳐도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도리어 여유가 생기며 웃음이 나오게 된다.
야외에서 울퉁불퉁한 곳에 텐트를 치고 휴가를 즐겨도 마찬가지다. 불편한 잠도 즐거우며 편리하게 씻지 못하여도 즐겁게 지내게 된다.
왜일까? 그것은 집에 가기 때문이요 집에서 휴식하며 가족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간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집에서의 휴식 그리고 평안일 것 같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이 세상의 것들로는 결코 인간이 요구하고 소망하는 참 안식과 평안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통 말뿐이지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주지 못한다.
여기에, 세상에서는 나에게 진정한 쉼과 평안을 주지 못하지만 그것을 주시고자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있으시다.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는 오셔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그리고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그런데 문제는, 인간 자신들이 가장 소원하는 것이 쉼이요 평안이면서도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열심히 노력하는 것 모두가 조금 후 편히 쉬고자 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생각만 하다가, 꿈만 꾸다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채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마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그렇다고 죽는 것으로 인간의 생이 끝이 난다면 괜찮지만 그렇지가 않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권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바울은, 몸은 비록 감옥에 갇혔으나, 세상이 줄 수 없고 알 수 없는 하늘의 평안과 안식을 깨닫고 소유했으므로 당시 고난과 핍박을 함께 당하는 믿음의 형제된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기뻐하고 기뻐하라고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고 원수된 우리 인간들을 다시 하나님과 회복되고 화목하게 하는 화목 제물의 표적이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의 통치에 의해 안식과 평안을 누리시며 그리고 우리의 육신이 다하는 날에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과 참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