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칼럼>
"파오차이 냉장고는 없다"
안형철 중부일보 문화부 기자
30년 동안 지속된 전쟁은 굴욕적인 항복으로 끝나고 100년간의 가혹한 수탈과 압제의 시간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시계를 800년 전으로 돌려야하는 이 시기는 오랜 시간이 흘러 감정적으로는 무뎌졌으나 어쩌면 일본제국주의 아래 치욕과 강압의 시간보다 더한 시간이었다.
130년간 이어진 이런 파탄적 관계 속에서도 교류는 이어지고 문화는 꽃 피웠다.
당시 ‘몽골풍’이라 부르는 몽골의 문화와 양식이 고려에 전래돼 유행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살아있던 것도 있고 현재도 일부가 살아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몽골풍은 소주, 설렁탕, 연지곤지 등이다. 소주의 경우 몽골이 중동지역에서 들여온 증류법을 전파했다. 설렁탕은 불교를 믿어 육식이 낯설었던 고려인들에게 몽골 유목민들이 자신들이 고기국을 끓여먹던 방법을 알려주면서 발전했다고 한다. 연지곤지와 비교적 최근까지 사용된 족두리는 몽골평원의 여인들의 치장법이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역으로 몽골에서도 고려의 문화가 유행해 이를 ‘고려양’이라고 불렀다. 케케묵은 몽골풍과 고려양의 이야기를 꺼내드는 것은 파탄적 관계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쓸모 있고 사랑받는 문화는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자 함이다.
이에 더해 문화는 어떤 곳에서 누구와 만나 어떻게 융성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연적 교류와 세월이 덧대 빚어놓은 현존하는 지구상의 수많은 문화와 양식들은 다양성이라는 문화의 성질을 대변하는 동시에 문화 그 자체다.
800년 전 몽골을 통해 들여온 소주만 봐도 어떠한가. 몽골에서는 명맥만 남아있는 것들이 고려와 조선에서는 상류층이 즐기는 고급술을 거쳐 대한민국에서는 사람들의 기쁨과 시름을 함께 하던 서민의 술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한류에 힘입어 소주라는 이름으로 미국, 유럽, 일본, 아시아 등에서 유행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 중국에서 파오차이를 김치의 원류라고 부르며 김치 자체를 파오차이로 부르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어 한국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파오차이가 김치의 원류이니 김치도 중국 것이라는 논리로 확장 전개되기도 한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 ‘애처롭다’는 마음이 드는 한편, ‘그럼에도 위협적이다’라는 두 가지 감정이 양립해 올라온다. 중국의 움직임은 늘 한국에게 부담이다. 그들은 크고, 많고, 가깝다. 역사 속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상호호혜로 실현되거나 대등했던 경험은 적다. 대부분 결말은 좋지 못했고 파탄적이고 종속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한국에는 중국에서 비롯된 많은 문화가 있다. 하지만 중국이 이 땅에서 많은 것을 가져갔던 경험도 있다. 긍정적인 경험도 있겠으나 가져가는 방식 가운데 역사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것들은 대부분 강탈의 형태를 띠고 있어 더욱 오래도록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이 때문에 중국이 김치를 가져가고자 하는 움직임을 마주했을 때 우리의 마음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은 역사적 DNA에 새겨진 화학반응이 아닐까.
다만 지금의 시기는 중국과 상호호혜를 추구하고 대등한 관계를 추구할 수 있는 몇 없는 시기 중 하나로 보인다. 종속적이었다면 파오차이 논쟁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굳이 두려운 상황을 상상해본다면 중국 사람들이 김치를 즐겨 먹게 되는 것이다. 사실 위협에 앞서 드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어쩌다가 오래되고 찬란한 문화 자랑했던 중국이 그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옆 나라의 문화에까지 군침을 흘리게 됐는가 하는 것이다. 파오차이를 비롯해 최근 원조를 앞세운 행동들은 중국사회에 남은 것들이 조악한 것들뿐이라 이렇게라도 자존감을 채우려는 발버둥으로 보여 애처롭기까지 하다.
지금 원조에 대해 게거품을 물고 외쳐대는 중국의 모습은 초라하고 빈약해진 현재 중국문화에 대한 반영일 뿐이다. 모든 것을 깡그리 지우고 불태워버린 문화대혁명의 상흔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고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설적으로 중국의 행동은 그들이 탐을 내고 샘이 날만큼 우리의 것이 아름답고 뛰어나다는 반증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뛰어나고 아름답다 해도 사람들에게 사용하지 않는 문화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진열장에 수집하듯 문화는 가져가 수집할 수 없다. 단지 진열장에 갇힌 문화는 죽어버릴 뿐이다. 문화에서 원조는 힘이 없다. 사람들에게 쓰이지 않는다면 사랑받지 않는다면 그저 유물로 남을 뿐이다. 중국 쓰촨성에서 즐겨먹는다는 음식 파오차이, 물론 그 지방도 한국보다 크지만...
파오차이가 원조라 하여 지금의 김치를 중국 사람들이 사랑하는가? 김치를 먹어본 적 있는 중국인은 몇 명이나 될까. 김치는커녕 파오차이도 한국인들이 김치를 먹는 것처럼 즐기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아니라 어느 나라건 탐이나 가져간다고 해서 그곳의 문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그곳의 사람들에게 쓸모 있고 사랑받아야 한다. 한국의 김치 사랑은 꽤 유별나다. 거의 매일 식탁에 김치를 올리고, 김치를 맛있게 먹기 위해 김치냉장고까지 개발했다. 구차한 질문일수 있으나 중국에 김치냉장고가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파오차이냉장고라도 있는가? 집집마다 김치를 담글 줄 아는 사람은 있는가? 파오차이라도 담글 줄은 아는가? 짐작컨대 아닐 것이다.
이러니 중국이 정말로 김치를 사랑하고 즐기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원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가져가봐야 중국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는 아이가 떼를 쓰듯 어거지를 부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다 해도 결국 아이가 싫증나면 장난감을 던지 듯 내팽개칠 것이 훤하다.
실제 중국이 원조이면서 지금도 한국에서 사랑받고 힘을 발휘하는 것들이 많다. 100년 전 산동성 출신 화교들이 인천항에 자리 잡으며 만들어 팔던 작장면이 세월이 지나 한국의 짜장면이 된 것처럼 말이다.
굳이 김치를 가져가고 싶다면 혹은 염장채소의 문화를 꽃 피우고 싶다면 본인들의 파오차이부터 중국에서 유행시켜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김치를 먹어는 보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알다시피 사랑은 누가 등을 떠민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첫댓글 모든것은 대한민국의 힘이 아닐까??우리것은 우리가 지켜야 되지 않을까???
현재 중국 본토에서 사라지고 없는, 기제사도 중국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나?
모택동의 가장 큰 잘못 2가지는 (1) 홍위병을 동원한 문화대혁명으로 공자(유학) 부정 및 유적(유습) 파괴, (2) 한자의 간체화로 문맹률은 줄었으나, 조상이 남긴 전적을 후손이 읽지 못하는 폐단을 유발. 컴퓨터의 등장과 보급을 예상하지 못한,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버금가는 헛발질.... 참고로 대만과 홍콩은 조상이 남긴 번체자를 그대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