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대는 부산진성을 모성으로 하고, 그에 상대하여 자식의 성이라는 뜻으로 사용 되었다.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의 전투장면을 자세하게 그려놓은 -부산진성 순절도-에 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내성과 외성이 있었다. 내성은 동구 좌천동에 있는 증산을 둘러싼 본성이고, 외성은 현재 자성대라고 불리는 곳이다.임진왜란때 증산에 있었던 본래의 부산진성이 일본군에 의해 허물어져 사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조선 순군은1607년 부산왜성의 지성인 자성대왜성을 부산진성으로 사용 하면서 새롭게 수축하였다고 보인다.
처음 우리가 도착했을때 부산진성이 보였다.
안내도를보면서 제일처음 간곳이 영가대였다,.
역사관구경을 하고 싶었으나 코로나로 인하여 문이닫힌 역사관.코로나가 끝나면 또들리고싶은곳.
최영장군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여 일편단심으로 나라를 위하였고 장군의 위대한 정신으로 민족의혼이 되어 우리가슴에 남아 부산연해의 각처 감만동 수영동,영도,자성대[ 왜구를섬멸한 장군의 고마움을 하나의신앙으로 승화시켜사당을 지어 마을의 수호신으로 장군의 영을 모시면서 매년 5월5일 단오에 지역주민에의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우주석은 집이나 성의 모퉁이 경계에 세운 돌기둥을 말한다.부산진성서문 성곽우주석은 임진왜란이후 옮겨 이진 한 부산진성의 서문 바깥쪽의 좌우모퉁이에 경사지게 세웠던것으로 추정된다.기둥에는 이곳은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이다.라는뜻 남요인후글자가 새겨있고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같다라는 뜻의서문쇄약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이것은 국토의남쪽에있는 부산국방의 중요성을 더울 강조한것으로 볼수 있다.
부산진성의 옮바름을 가르쳐주시고 역사이야기 자성대는 한부분이고 큰의미로는 부산진성이 서문,동문 등 모든것이 부산진성이라고 하셨다. 이 사진을 찍은 문의 이름은 서문인데 서문은 일본이 쳐들어 올때마다 서문으로 오기 때문에 나라의 목에 해당된다고 하셨다. 이렇게 많은 역사가 여기 있는데 관광하러 오는 사람들은 해운대나, 광안리를 간다고 하셨다.서문의 양쪽 돌기둥은 아주큰 의미가 담겨있다고 강조하셨다. 우리조상들이 왜군에 침략당하지말고 잘지키라는뜻으로 돌기둥을 세웠지만 그뒤 한번더 일본침략으로 부산진성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문은 특히 부산진성의 중요한 상징이 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하셨다, 부산진성의 바른이해를 널리 알리고 싶으신 분을 만나게되어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부산진성은
이렇게 정말 아픈역사가 담겨있다. 자성대에 오시면 부산진성을 자성대로 알고있는 부분에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주시니 한번가보시면 둘레길도 돌아보고 역사도 듣고 아주 괜찮은 시간이 될수있겠다.
-신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