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정순재 신부, 사진 수상집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 펴내

[Anna]

* 강론을 한 장 사진으로 응축 *

정순재 신부, 사진 수상집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 펴내

　고통받는 인간 내면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모습을 찾아 사진에 담아내는 작업.

　정순재(대구대교구 은퇴) 신부의 사목 40년에서 강론과 사진은 '둘이 아닌(不二)' 것 같다. 강론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한 장 사진으로 응축되고, 삶의 현장에서 포착한 사진 한 장은 영혼의 샘에서 길어올린 샘물처럼 달고 풍요로운 메시지로 풀려나온다.

　1977년 대구에서 첫 사진전을 가진 이래 서울과 대구에서 여덟차례 전시를 가진 정 신부가 다시 사진 수상집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해누리, 1만원)를 냈다.

　천진하게 낮잠 자는 어린아이, 장터 아주머니, 쇠고랑 찬 죄수, 기도하는 수녀, 차 마시는 승려, 눈꺼풀이 주저앉은 할머니 등 64편 글에 실린 흑백사진들은 일상 여기저기, 혹은 우리가 미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못하던 이웃의 삶, 그 양태를 렌즈를 통해 진솔하게 투영해낸다.

　어쩌면 주름살투성이인 우리네 삶, 그 다양하고도 다채로운 모습이 흑과 백, 그 강렬한 대비를 통해 선명하고 아프게 펼쳐진다. 거기에 맛깔스런 글까지 붙여지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정 신부는 그러나 그 삶의 고통을 단순히 고통으로만 여기지 않고 삶에 대한 긍정, 나아가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승화시켜 응시하고 관조한다. 그래서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과 시와 함께 어우러지는 한 편 한 편의 글은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단비처럼 다가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줄이나 잡기 삼아 이만큼 호작질해 온 터라 맹문이의 가는 눈이 더 흐늑거리기 전에 진홍빛 산다화 낙엽을 책갈피에 끼워 두듯 그게 저만저만 뉘우칠 허물이 될 줄이야 몰랐습니다.… 희한한 회한(悔恨)이 곧장 자성(自省)이다가 어쩔 수 없는 면벽의 독백 삼아 세상과 저어스러운 낡은 빈 수레라도 끌고 갑니다."(서문 '회심(回心)' 중에서)

　1932년 대구 태생으로 61년 사제품을 받은 정 신부는 40년간 의성ㆍ칠곡ㆍ태전ㆍ경산ㆍ고산ㆍ용성본당 주임을 역임했으며 은퇴 뒤 제주를 거쳐 포항에서 사진과 집필에만 전념하고 있다. 사진집으로 「사진으로 보는 구한말」을, 연작사진모음으로 「인곡(人曲)」을, 포토 에세이로 「바람처럼 돌아오는 사람이 그립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작은 보따리 속의 자유」 「쓰러지는 갈대, 바람의 노래여」 등을 냈다.

(사진설명) 정순재 신부 작 '나도 아니 저러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