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연구 / 노무현과 이회창
명문가vs 서민 집안
이후보 친가ㆍ외가ㆍ처가ㆍ사돈 모두 엘리트?
노 후보 친인척은 ‘보통 사람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비교가 되지 않고 콘트라스트(대조)가 되는 게 문제입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핵심 측근 L씨는 최근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L 씨는 “대조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 총재가 과연 지지율 열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李光宰) 기획실장은 2000년부터 “노무현 장관이 후보가 되면, 이인제 고문과는
달리 이회창 총재와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서기 때문에 선거를 치르기가 쉽다”고 주장하곤
했다.
지지율에서 10% 이상 앞서고 있는 5월 현재로선 노무현 후보측의 필승 논리가 먹혀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 두 사람은 가족관계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척점(對蹠點)에 있다. 이 후보 집안은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명문가 집안으로 불린다.
부친 이홍규(李弘圭)씨는 경성제일고보(경기고의 전신)와 경성법전(서울대 법대의 전신)을
나와 1945년 광주지검 검사가 되었다. 이씨는 대표적인 강골 검사로 권력에 밉보여
‘현직 검사 구속 1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최근 이씨는 일제시대 친일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 후보의 본가(本家)는 충남 예산이다. 하지만 1935년 황해도 서흥에서 나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광주와 청주에서 보낸 것은 부친의 근무지를 따라 이사를 다녔기 때문이다. 큰아버지 이태규(李泰圭)씨는 우리나라 자연과학계의 태두(泰斗)로 불리는 과학자다. 이 후보의 모친 김사순(金四純)씨는 전남 담양 출신의 부농(富農)이었던 김재희씨의 3남4녀 중 막내딸이다. 이 후보의 외삼촌 홍용, 문용, 성용씨는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이모 삼순씨는 독보적인 세균학자로 학술원 회원이다.
외삼촌 세 사람 모두 국회의원 역임
이홍규씨는 1932년 김사순씨와 결혼해 슬하에 4남1녀를 두었다. 장남 회정씨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미국 브라운대학과 마운트사이나이 의대 병리학과 교수를 거친 병리학 분야의
권위자다. 1994년 귀국해 현재 삼성의료원 병리과장으로 있다. 셋째 회성씨는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와 미국 뉴저지주 러트거스대학에서 자원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에너지
자원 분야의 권위자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냈다. 회성씨는 지난 대선 당시 국세청을
동원한 불법을 자금 모입한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에 연루,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막내 회경씨는 미국 뉴욕 주립대에서 계량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과학기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후보는 4형제 중 둘째지만 큰형 회정씨가 미국 유학 중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장남 역할을 했다. 이 후보에게 부친 이홍규는 자신의 이상형(role model)이었다.
이 후보는 서울지법 판사 시절 한인옥(韓仁玉ㆍ64)씨와 중매결혼해 2남1녀를 두었다.
이 후보의 장인은 대법관을 지낸 경남 산청 출신의 한성수씨. 장인과 사위가 대법관을 지낸 것도
법조계에서 흔치 않다. 한인옥씨는 경기여고와 서울대 사범대 가정과를 나왔다.
이 후보가 대한민국 대표 명문가 자제라면 노 후보는 대한민국 대표 서민 집안 출신이다.
노 후보는 경남 김해군 진영에 태(胎)를 묻었다. 중견 작가 김원일의 소설 ‘노을’의 무대가
되었던 봉화산과 자왕골이 노 후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광복 전후 시골의 살림살이가
대개 어려웠지만 노 후보의 집안은 그중에서도 찢어지게 가난했다.
노 후보의 부친 노판석(1976년 사망)씨는 일제시대 객지에 나가 고생 끝에 모은 재산을
친척의 사기에 날려버렸고 조그마한 장사마저도 또다른 친척의 훼방으로 할 수가 없었다.
살림은 어머니 이순례(1998년 사망)씨가 도맡아야 했기에 목구멍에 풀칠을 하는 빈한(貧寒)한
생활이었다.
노 후보는 1946년 3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큰형 영환씨는 5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부산대 법대)을 나왔다. 영환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와 오랜 기간 고시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했고 오랜 동안 직업이 없이 지내다 1967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
공무원 생활을 했다.
둘째형 건평씨도 1968년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이 되면서 노 후보 집안은 비로소 찌든
가난의 때를 씻을 수 있었다. 건평씨는 1978년 면직된 후 고향 진영읍 본산리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다.
큰형 영환씨는 1973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노 후보가 부산상고 졸업 후 고시공부를 한다며 고향 움막집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머니 이순례씨는 막내 아들이 큰형처럼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누나 두 명은 모두 부산에서 살고 있는데 남편과 사별(死別)했다. 큰누나 명자(74)씨는
교사인 큰딸과 살고 있고 작은 누나 영옥(64)씨는 혼자 외손자들을 키우고 있다.
노 후보의 부인 권양숙(權良淑ㆍ55)씨는 남편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지 않았다면 거의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권씨는 가정환경으로 인해 부산 계성여상을 중퇴했다.
수업 일수는 채웠지만 고3 때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내지 못해 졸업생 명단에서 빠졌다고 한다.
경선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노 후보의 장인(권오석ㆍ1922~1971년)은 6ㆍ25 동란 중 좌익활동 경력이 있다.
장인의 좌익 부역활동을 뒷받침하는 기록은 대검찰청이 발간한 ‘좌익사건실록’에 있다.
실록에 따르면 권오석씨는 1950년 1월 군당(郡黨) 선전부장에 임명됐고 같은 9월 양민 9명을
학살하는 현장 부근에서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노 후보측은 “권씨가 1948년 막걸리에 탄 메틸알코올을 잘못 마셔 실명을 했고
그 상태에서 6ㆍ25 당시 공산군의 부역을 강요받아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다”고 설명한다.
권오석씨는 5ㆍ16 직후 군사정부가 사회불안 요소를 격리한다는 명분으로 자행된 예비 검속으로
다시 투옥돼 1971년 마산 교도소에서 옥사(獄死)했다. 노 후보의 장모 박덕남씨는 맏딸과 함께
부산에서 살고 있고 처제 권진애씨도 자영업을 하는 남편 이승남씨와 함께 부산에 살고 있다.
처남 권기문씨는 부산에서 은행지점장으로 있다.
노 후보 딸은 주한 영국대사관 근무
노 후보가 권양숙씨와 결혼한 것은 1973년 1월. 노 후보가 군대에서 제대한 후 고향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197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할 때만 해도 노 후보는 앞날을 보장하기 어려운 고시준비생이었을 것이다.
노 후보는 권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건호(建昊ㆍ29)씨는 연세대 법대 4학년이다.
건호씨는 동국대에 다니다 군에 입대, 7사단에서 포병으로 복무했다. 군 제대 후 다시
입시공부를 해 연세대 법대에 진학했다. 건호씨는 현재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
민주당 경선 기간 중 노 후보 경선 사무실에 나와 일을 도왔다. 딸 정연(靜姸)씨는 홍익대
역사학과를 나와 지금 주한(駐韓) 영국대사관에 근무 중이다.
이회창 후보는 2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 정연(39)씨와 차남 수연(36)씨는 이미 지난 대선 때
병역 면제로 인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정연씨는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필리핀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근무했고
현재는 하와이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 정연씨 부부는 한때 원정출산 의혹을 받기도 했다.
정연씨의 장인은 5공화국 시절 상공부장관을 지낸 이봉서(李鳳瑞) 국제화재해상보험회장.
동국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수연씨는 미국 유학을 거쳐 현재 서울에서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이화여대 수학과를 나온 딸 연희씨의 남편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최명석(崔明錫) 변호사.
지난 3월 가회동 빌라 의혹이 터졌을 때 3층을 사용해온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최씨의 부친은 재력가로 알려진 최기선 한국인삼제품협회 회장.
이 후보는 이력(履歷)이나 가족 관계로 볼 때 의심할 바 없는 한국 사회의 중심부(中心部)라
할 수 있다. 반면 노 후보는 주변부(周邊部)에 해당된다. 내세울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
집안이다. 노무현과 이회창, 대조적인 삶의 궤적을 걸어온 두 사람 중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勝者)가 될 것인가?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maple@chosun.com>mapl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