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초롱 서시
한울은
울파주가에 우는 병아리를 사랑한다.
우물 돌 아래 우는 돌우래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버드나무 밑 당나귀 소리를 임내 내는 시인(詩人)을 사랑한다.
한울은
풀 그늘 밑에 삿갓 쓰고 사는 버섯을 사랑한다.
모래 속에 문 잠그고 사는 조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두툼한 초가지붕 밑에 호박꽃 초롱 혀고 사는 시인(詩人)을 사랑한다.
한울은
공중에 떠도는 힌 구름을 사랑한다.
골짜구니로 숨어 흐르는 개울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아득하고 고요한 시골 거리에서 쟁글쟁글 햇볕만 바래는 시인(詩人)을 사랑한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詩人)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詩人)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 이름이 강소천(姜小泉)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 것이다.
동시집 『호박꽃 초롱』
강소천 (姜小泉, 1915년 9월 16일 ∼ 1963년 5월 6일)
강소천은 함흥 영생고보에 근무하던 백석(白石, 1912 ~ 1996) )의 제자였다
백석이 영생고보에 부임할 당시 강소천은 스무 살이 넘은 늦깍이 학생이었다
백석과의 나이 차는 불과 세 살밖에 나지 않았지만, 그는 백석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제자였다
.
.
.
.
강소천의 동시 원고는 백석의 가방에 실려 서울로 왔다
백석은 자신이 번역한 <테스>의 마지막 교정을 보면서 강소천의 원고를 받아줄 출판사를 물색했다
적당한 출판사를 알아보는 일은 표지화와 삽화를 많이 그렸던 백석의 절친 정현웅(1910~1976)이 도왔다
결국 강소천의 원고는 박문서관에서 출간하게 되었고
책의 장정은 정현웅이 맡았고 백석은 이 책에 걸맞는 서시(序詩)를 써서
제자 강소천의 책 출간을 축하했다
이 동시집에는 <닭> <호박꽃 초롱> 등 모두 35편이 실려 있다
닭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
호박꽃 초롱
호박꽃을 따서는
무얼 만드나.
무얼 만드나.
우리 애기 조그만
초롱 만들지.
초롱 만들지.
반딧불을 잡아선
무엇에 쓰나.
무엇에 쓰나.
우리 애기 초롱에
촛불 켜 주지.
촛불 켜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