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3장 1 - 5절
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정 때문에 바울의 마음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바울은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이자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기로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이유는 첫 째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굳건하게 할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위로를 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생활을 하다보면 환난이라는 것을 당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환난 중에 그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사할 때 보면 위로 세운 건물이 흔들리지 않게 바닥에 말뚝을 박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뚝을 박을 때 그 말뚝이 흔들리면서 박히게 되면 힘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말뚝이 박혀야 그 위로 높은 건물이 올라가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동일한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일주일 내내 흔들리는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 우리의 믿음은 높이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지지기반이 흔들리게 되면 위로 올라가는 믿음의 높이와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반이 약한 곳에는 때로 돌을 넣기도 하고 물을 부어서 지지기반을 든든하게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런 든든함 속에서 한 주간, 한 주간을 살아야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를 수가 있지 이런 기초 작업을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환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설 수 있을 정도로 믿음의 기반이 든든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의 특징을 야고보서에서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 한 번 불면 바닷물은 이리 요동하고 저리 요동하게 되는데 그런 곳에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이런 상태에서는 절대로 믿음의 성장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초를 쌓아서 환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상태가 되었을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했던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이런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환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든든한 믿음의 상태인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람 한 번 불면 요동을 치는 수준으로는 우리의 믿음이 높아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하루, 하루가 이런 훈련을 받으면서 믿음의 기초를 잘 다지고 있는가를 점검하고 지금보다 더 믿음 안에서 굳건해 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는 두 번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에 대하여 위로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팔복에 보면 두 번째 복이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위로를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4장 말씀에 보면 학대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위로를 받을 수가 없다고 말을 하면서 차라리 그렇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위로를 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전도서의 가르침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죽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위로 받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위로라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디모데처럼 사람을 통해 위로를 받든가, 아니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위로를 받든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위로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86편 17절 말씀에 보면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우리는 살 수 있지 하나님의 위로를 받지 못하면 우리는 마음이 상하게 되고 지치게 되어서 우리의 영혼이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 일에 집중을 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믿음의 기초를 다지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믿음의 기초를 굳건히 세우는 일을 해야 하고 또 한 가지는 우리의 상한 마음, 지친 영혼이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회복되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바울은 그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디모데까지 떼여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시는 이유도 똑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보내 주신 성령님을 통해 믿음의 기초를 다시 세우고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디모데 같은 사람들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세우고 위로자가 되어 기쁨을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