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자정(陸子靜)은, “우주(宇宙) 사이의 일이란 바로 자기 분수(分數) 안의 일이요, 자기 분수 안의 일은 바로 우주 사이의 일이다.”
라고 하였다. 대장부라면 하루라도 이러한 생각이 없어서는 안된다. 우리 인간의 본분(本分)이란 역시 그냥 허둥지둥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사대부(士大夫)의 심사(心事)는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이 털끝만큼도 가리운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에 부끄럽고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전혀 범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포목(布木) 몇 자, 동전 몇 닢 때문에 잠깐이라도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호연지기가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인(人)이 되느냐 귀(鬼)가 되느냐 하는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극히 주의하도록 하라.
다음으로는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가 모두 완전하더라도 구멍 하나가 새면 이는 바로 깨진 옹기그릇일 뿐이요, 백 마디가 모두 신뢰할 만하더라도 한 마디의 거짓이 있다면 이건 바로 도깨비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너희들은 조심해야 한다. 말을 과장하여 떠벌리는 사람은 일반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법이니 가난하고 천한 사람일수록 더욱 말을 참아야 한다.
우리 집안은 선세(先世)로부터 붕당(朋黨)에 관계하지 않았다. 더구나 곤경(困境)에 처한 때부터는 괴롭게도 옛 친구들에게까지 연못에 밀어넣고 돌을 던지는 경우를 당했으니, 너희들은 내 말을 명심하고 당사(黨私)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버려야 한다.
큰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은 백성들이 수만 명이나 되므로 하늘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내가 굶어 죽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대체로 모두 게으른 사람들이었다. 하늘은 게으른 자를 미워하여 벌을 내려 죽이는 것이다.
나는 전원(田園)을 너희에게 남겨줄 수 있을 만한 벼슬은 하지 않았다만 오직 두 글자의 신부(神符.부적)가 있어서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에 이제 너희들에게 주노니 너희는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수용(需用)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근(勤)이란 무얼 말하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때까지 미루지 말며, 갠 날에 해야 할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 오는 날에 해야 할 일을 날이 갤 때까지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할 바가 있고 어린이는 다니면서 받들어 행할 바가 있으며, 젊은이는 힘드는 일을 맡고 아픈 사람은 지키는 일을 하며 아낙네는 밤 사경(四更)이 되기 전엔 잠자리에 들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집안의 상하 남녀가 한 사람도 놀고 먹는 식구가 없게 하고 한순간도 한가한 시간이 없도록 하는 것을 근(勤)이라고 한다.
검(儉)이란 무엇인가? 의복은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을 취할 뿐이니, 가는 베로 만든 옷은 해어지기만 하면 세상없이 볼품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거친 베로 만든 옷은 비록 해어진다 해도 볼품없진 않다.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모름지기 이후에도 계속하여 입을 수 있느냐의 여부를 생각해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가는 베로 만들어 해어지고 말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고운 베를 버리고 거친 베로 만들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음식이란 생명만 연장하면 된다. 모든 맛있는 횟감이나 생선도 입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리므로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전에 사람들은 더럽다고 침을 뱉는 것이다.
사람이 천지간에 살면서 귀히 여기는 것은 성실함이니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한다. 하늘을 속이는 것이 가장 나쁘고, 임금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데서부터 농부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상인을 속이는 데 이르기까지 모두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오직 하나 속일 게 있으니 바로 자기의 입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식물(食物)로 속이더라도 잠깐 그때를 지나면 되니 이는 괜찮은 방법이다.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茶山)에 있을 때 상추로 쌈을 싸서 먹으니 손(손님)이 묻기를, “쌈을 싸서 먹는 게 절여서 먹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까?” 하기에, 내가, “이건 나의 입을 속이는 법일세.” 라고 한 일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모름지기 이런 생각을 가져라. 정력과 지혜를 다하여 변소간을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으리라. 이러한 생각은 눈앞의 궁한 처지를 대처하는 방편일 뿐만 아니라 비록 귀하고 부유함이 극도에 다다른 사군자(士君子)일지라도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방법으로 이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버리고는 손을 댈 곳이 없을 것이니 너희들은 가슴 깊이 새겨두도록 하라. 경오(1810) 9월에 다산의 동암에서 쓰다.
出典: 『여유당전서』 문집18권 「又示二子家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