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9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마태오
6,19-23)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also will your
heart be.
말씀의 초대
거짓 사도들을
물리치려고 바오로 사도는 그들이 내세우는 자랑거리들을 자신과 비교하면서 그들과 논박을 벌인다. 물론 바오로도 이러한 자랑이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논리에 따라서라도 자기가 참된 사도임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적법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자기가 겪어야 했던
수고를 열거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재물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또 그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가 판가름 난다(복음).
☆☆☆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가
“많은 사람이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니”라고 계면쩍어하면서 말을 시작하지만, 사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속된 기준으로 자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랑을 잔뜩 늘어놓을 때 듣는 것을 민망해하면서도 정작 자기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도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자랑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서 대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거짓
사도들과 비교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바오로가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온갖 수고와 고생과 고난을 겪었다고
밝히는 이유는, 코린토 신자들이 그런 기준에 따라서라도 자기가 참된 사도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들이 그릇된 교설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오로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지위와 학력과 재산이 뛰어나다고 해서 남다르게 대접받아야 하며 더구나 그런 이유 때문에 자기가 참된 사도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속된” 것입니다. 그런 “속됨”에 빠지지 않으려고 바오로는 즉시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그의 주장대로 “우리가 비록 속된 세상에서 살아갈지언정, 속된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2코린
10,3). 그러니 속된 자랑거리나 자격을 많이 갖추고 있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인이라고 하여 늘 특별나고 특출한 행동이나 선행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마에 ‘성인’이라는 표찰을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성인도 우리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 가는 성인과 평범한 사람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점이 발견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재화를 나눌 때나 선행을 할 때에, 평범한
사람은 앞과 뒤를 충분히 재고 나서 ‘아니오’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성인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여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예’ 하고 대답합니다.
하늘에서 힘이 될
보물
-이기정신부-
보물1호는? 하면
공개할 수 있는 것 없는 것 외에 다양할 겁니다. 귀금속 돈 재물 집 땅 건강 애인 자식 생각하기 나름으로 다양합니다. 그러나 크게 둘로 나누면
보관 및 사용상 땅과 하늘 이렇게 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둘로
나눈다면 잃을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으로 말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보물에 힘을 얻어 그 덕에 살아갑니다. 봉사심 정의로움 선행
등을 쌓았다면 하늘에서 힘이 될 보물이겠지요.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오
6,19~21)”
-조재형신부-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중에 가장
헐벗고,
가난하며,
병든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가는 것들에도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자비가 깃들어 있음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제가 용문 청소년
수련장에 있을 때입니다.
서울에 일이 있으면
주로 용문 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이용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하는데 한 자매님이 제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서울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나요?’
저는 제가 서울로
가기 때문에 ‘저를 따라
오셔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될
줄은 잘 몰랐습니다.
그 뒤로 불교
신자인 자매님의 집을 방문하여 기도를 드렸고,
투병 중에 있는
형제님이 대세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고,
형제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미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중국에서
차(茶)에 대한 공부를
하신 자매님은 저에게 맛있는 차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제가 차를 다 마실
즈음이면 새로운 차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다기 세트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새로이
집을 장만하신 자매님 가정을 방문하였고,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기차역에 있었지만 그 자매님은 유독 제가 눈에 들어왔다고 하십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무척 선해 보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네요.
‘눈은 마음의
등불입니다.’
어쩌면 선한 마음은
그 사람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페이스 북에서
저보다 훨씬 멋진 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셨다고 합니다.
학교로 가는 길에
한 노인이 집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수님은 출근길에
노인과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고,
주말에는 노인의 집
정원의 잔디를 깎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2년을 지내면서도
노인의 가족은 누구인지,
노인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잘 몰랐다고 합니다.
2년이 지났을
무렵,
학교로 가는데
노인이 없어서 궁금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의 가족들이
교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노인의
유언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노인은 세계적인
기업인 코카콜라의 회장님이셨다고 합니다.
노인은
2년 동안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교수님에게 자신의 유산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노인이 남겨준
유산은 우리 돈으로 2500억
원이랍니다.
덤으로 노인께서는
회사의 주식 5%을 교수님에게
넘겨주셨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상대방이
누구인 줄 몰랐지만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엄청난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을 학교를 위한 발전 기금으로 기증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학교의
총장이 된 교수님은 엄청난 재산이 있었지만 늘 같은 시간에 학교로 출근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을
재산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재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금,
다이아몬드,
고가의
미술품,
땅,
현금’은 아닐
것입니다.
하늘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재물,
결코 남들이 가져갈
수 없는 재물,
사라지지 않은
재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의 결실인
희생,
봉사,
나눔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하늘나라에 우리의 재물을 쌓아 보시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나의 보물 1호
-반영억신부-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하신 예수님의 의중을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지요? 천상을 그리워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나의 보물
1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예수님으로 족합니까?
이 시간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셨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2,7-8).
세상의 사람들은 감히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지배하고 더 많이 소유하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를 피곤하게 합니다. 서로를 섬기면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되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믿는 이의 삶은 당연히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아는 바를 행함으로써 선한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워 기도하신 후 특별히
열 두 제자들을 뽑으셨는데 뽑힌 이들을 보면 아주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죄인으로 멸시 받던 세리 마태오, 혁명당원 시몬, 배반자가 된 유다,
베드로…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밤새워 기도한 것이 실패였나요? 그 반대입니다. 품이 크시니까 모든 과거를 용서하시며 미래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
희망을 안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의 허물을 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하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용서하고 아버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용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악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오직 사랑이라는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때때로 기적을 베풀고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능력을 드러냈을 때, 딴지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소신
있게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도 시작한 일이 하느님의 뜻에 의합하고 선하다면 흔들림 없이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11,28).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모든 멍에와 짐을 예수님께 돌려드리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하신 예수님의 의중을 살피시기 바라며 부디 주님을 닮을 수 있는 은총의 날이 되길
빕니다. 한 점 욕심이 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보이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요, 모든 것이 기쁨입니다. 주님의 눈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볼 것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늘의 문은 여기 삶의 자리에서 열리고 있는 만큼 우리 마음이 늘 천상을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내
안의 값진 보물
-양승국신부-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는
예수님의 권고말씀을 곰곰이 묵상해봅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내게 있어 과연 보물이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청빈서원을
한 수도자로서 다이아몬드 반지나 금 목걸이들을 고이고이 모아둔 개인금고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아니면
아름다운 루비며 사파이어를 살 수 있는 거금이 들어있는 통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
털어봐야 한 달 사목비 겸 용돈 20만원뿐입니다.
그것도
용돈 막 탄 월초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 보물에 대체될만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봅니다.
아마도
내 안에 깊이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아닐까요?
내
안에 아직 다 소모되지 않은 긍정적인 에너지들이 아닐까요?
내
안에 들어있는 어려운 이웃을 향한 측은지심,
결국
내 안에 현존하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가 가장 큰 보물입니다.
또한
내 안에 아직 연소되지 않고 남아있는 사랑의 불꽃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보물입니다.
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전체를 허송세월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아무런 의미도 영양가도 없는 소모적인 하루를 보낼 때가 있습니다.
때로
갖은 걱정과 고민으로 소일하며 스트레스만 왕창 축척한 마이너스 하루를 산적도 많습니다.
그런
하루는 왠지 허탈하고 왠지 송구스럽습니다.
값진
보물인 내게 주어진 ‘하루’가
그냥 사라져버렸기 때문이겠지요.
그
소중한 하루 안에 현존해계셨던 하느님의 자취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을 보다 의미 있게 사용해야겠습니다.
일
분 일 초를 아까워하며 불꽃처럼 타오르며 살아야겠습니다.
그
유명한 아빌라의 데레사 수녀님이 그러셨습니다.
수녀님은
여러모로,
대내외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간절한 기도를 통해 자신들 안에 하느님께서 숨겨놓으신 가장 큰 보물이 무인인가 찾고 또 찾았습니다.
그
결과 정말 값진 보물 하나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바로 허물어져가는 중세교회의 쇄신과 재건을 향한 자신의 열정,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마음,
결국
교회와 하느님을 향한 강렬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바탕으로 데레사 수녀님은 갖은 반대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새로운 교회,
새로운
수도회 건설에 전념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여자의 몸으로 스페인 전역에 17개나
되는 대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허물어져만 가던 교회,
희망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던 타락일로의 교회를 자신의 온몸을 바쳐 다시 재건했습니다.
이
은총의 새로운 아침,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또 다시 일생일대의 중대한 과제 하나를 부여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숨어있는 값진 보물이 무엇인지 열심히 찾는 일입니다.
우리
각자는 먼지처럼 하찮은 존재인 것이 사실입니다.
때로
중죄인이며 비참한 인간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투박한 질그릇 같은 우리 각자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해계십니다.
그분이
환한 빛을 우리 안에서 비추고 계심으로 인해 우리는 존귀합니다.
가치
있고 품위가 있습니다.
따라서
애써 명품 옷,
잘
나가는 유명 브랜드 구두로 우리를 애써 치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급
명품 브랜드가 우리를 빛나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안에 현존해 계시는 하느님의 빛이 우리를 빛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치,
나의
아름다움,
나의
고귀함과 품위를 발견하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은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이웃도 함부로 대하고 나아가서 하느님도 함부로 대합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이수철신부-
오늘
복음 묵상 중 떠오른 얼마전
써놓은 자작自作 애송시愛誦詩입니다.
-하늘을/바라볼
때 마다 마음을/들어
올린다 온갖
생각들/하늘 구름에 띄워 보낸다 마음은/다시
푸른 하늘이 된다-
하늘이
상징하는바 하느님입니다.
마음을
하늘이신 하느님께 들어 올리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땅의
현실에 집착하거나 좌절하여 가라앉은 마음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이래야
넓고 깊은, 가까이는 물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영적시야를 지닙니다.
알게
모르게 땅의 현실에 집착하여 하늘의
영원과 더불어 이런 영적시야를 잊고 자기감옥에
갇혀 지내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1."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하늘이신
하느님 안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가지도 못합니다. 제일
안전한 곳, 하늘이신 하느님 안에 보물을
쌓아 두는 이가 진정 현자입니다.
무슨
보물입니까? 믿음,
희망, 사랑의 신망애信望愛 삼덕의 보물입니다. 이보다
더 귀하고 좋은 보물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런
보물을 마음의 하늘 깊이에 계신 하느님
안에 쌓아두는 이들이 진정
현자賢者요 성인聖人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물론 우리 가톨릭 교회의 모든
성인들이 이렇게 하늘에 보물을 쌓았습니다. 이런
이들이 정말 내적부요의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어리석은
사람들이 보물을 땅에 쌓아 둡니다.
영원토록
하느님께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쌓아
두는 게 아니라 이 귀중한 보물을 보이는
땅의 세상에 쌓아 두는 이들입니다.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기
좋은 땅의 세상입니다.
이렇게
땅에 보물을 쌓아둘 때 보물을
지키려니 늘 긴장이요 불안입니다. 참
평화도 기쁨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늘을 바라볼 때 마다 마음을 들어 올려 하늘에
쌓아 둔 보물을 확인하고 또
보물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더불어
온갖 분심 잡념들, 삿된 생각들 하늘
구름 은총에 띄워 보내는 것입니다.
2."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명언이요
진리입니다. 마음을
보면 그 사람의 보물이 어디 있는지 압니다.
영원한
기쁨과 평화의 사람들은 보물을
하늘이신 하느님께 쌓아 둔 사람들입니다. 많은
것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평화가 없고 웬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은
바로 땅에 보물을 쌓아 둔 이들입니다.
우리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둘 때 우리
마음은 하늘에 있고 하늘은
바로 우리 마음이 됩니다.
다시
마음은 순수한 마음이, 푸른 하늘이 됩니다.
마음
가난한 겸손한 이들,
마음
깨끗한 순수한 이들,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둠으로 마음은
하늘이 된 이들입니다.
진정
자유롭고 행복하고 부유한 이들이요 이미
현세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가
겪은 고난 목록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옥살이,
매질, 죽을 고비, 채찍질, 돌질, 파선, 깊은
바다에서의 표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
정말
바오로 사도의 삶은 상상을 초월한 고립무원, 사면초가의
삶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약함을 강함으로 바꿔주시는 자신의
영원한 보물,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바오로입니다.
바오로에게
'교회에 대한 사랑'은 바로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었음을 봅니다.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렵니다.“
참된
사도, 참된 겸손의 사람, 영원한 감동의 사람, 바오로
사도입니다.
그리스도의
불퇴전不退轉의 믿음의 전사戰士, 바오로
사도의
이런
불가사의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바로
오늘 복음에 있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어 늘 하늘의 마음을 지녔기에 그
파란만장한 고난과 시련의 삶중에도 망가지거나
무너지는 일 없이 독야청청한
바오로의 영혼이었음을 봅니다.
3."눈은
몸의 등불이다.“
우리
눈이 맑으면 온 몸도 환하고, 우리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둡습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눈은
마음의 거울이다'라는 말마디입니다.
그러니
'하늘-보물-마음-눈-몸'이 일련一連 관계에 있음을 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둘 때, 마음은 푸른 하늘이 되고, 마음의
거울인 눈은 맑고 밝아 지며, 온몸도
마음 따라, 눈 따라 맑고 밝아 진다는 것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아둘 때는 탁하고 짙은
어둠의 병든 마음과 몸이지만, 하늘에
보물을 쌓아둘 때 진정 맑고 밝은 건강한
마음과 몸임을 깨닫습니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빛으로
전환시키는 지름길은 끊임없이 하늘에
신망애信望愛 삼덕의 보물을 쌓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하늘 높이 마음을 들어 올려 하늘의
우리 보물을 확인하고 또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시간이요, 온갖
불순한 생각들을 하늘
은총 구름에 띄워 보내는 시간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때 저절로
다음과 같은 고백의 시도 나올 것입니다.
-햇빛/환한
날도 좋고, 비오는/어둔 날도 좋다 모든
날이 다 좋다/기쁜 날, 행복한 날, 주님의 날이다.-
아멘.
재물
-고준석신부-
오늘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가르치십니다.
땅 위에 쌓아둔
재물은 좀과 녹과 도난의 대상이 되지만 하늘에 쌓아 둔 재물은 안전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재물을 좀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재물이 있어야 이
세상을 살아가기 편하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재물이 있는 곳에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있다는 것입니다.
재물이라는 것이
묘해서 한번 맛들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모두 빼앗아 갑니다.
눈이 몸의 등불이듯
마음은 영혼의 등불입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지면 마음까지 어두워집니다.
영혼을 밝혀야 할
마음의 빛이 그 힘을 잃으면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고 우리의 마음은 고통을 받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빛을
영혼에 비추며 살아야 합니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은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왜
재물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재물은 쌓아
두라고, 모으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은 사용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만을 위해
재물을 사용했다면 땅에 쌓아 두는 것이요,
세상과 이웃을 위해
사용했다면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21) -오상선신부-
여러분의
보물1호는 무엇인가요? 1~5호까지
한번 나열해 보세요.
자,
되셨나요? 그럼
이제 그 보물들 중에 가장
빨리 없어질 것부터 순위를
역으로 매겨 보세요.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게
진짜 보물1호입니다.
진짜
보물은 그래서
물질적인 것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보물이긴하지만
영원하진 않습니다. 그러니
진짜 보물은 영적인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칫 가짜
보물을 진짜로 알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은
나의 진짜 보물1~5호를 다시
정해보는 날 됩시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이영근수사-
주님!
제 마음 당신께
있사옵고
제게는 당신이
보물이오니
제가 당신께 달려
있습니다.
제 자신을
떠나
당신께 사로잡혀
있기를 바라오니
항상 당신을 첫
자리에 두고,
그 어느 것도
당신 사랑보다 낫게
여기지 말게 하소서.
제 눈이
항상 당신을 향하여
있고
제 마음이
항상 당신께 가
다다라 있게 하소서.
제 마음
당신 안에 가두소서.
제가 당신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당신 마음 제게
두소서.
제 마음은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의 마음에 저를
가두소서.
아멘
-한상우신부-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기도가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기도를
통해 자라납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기도라는 보물이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라는
보물로 변하지
않는 하느님
사랑을 우리마음
안에서 만나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시는
분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항상 기도할 수
있는 보물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
사랑의 보물인
기도로 감사와 기쁨을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을 밝히는
것또한 기도의
선물입니다.
기도가
커질수록 우리의
마음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힘써야 할
것은 지속적인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보물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기도로
하늘에 보물을
쌓고 기도로 온
삶이 성하여지고 온 마음이
환해지는 하느님과 우리를
위한 기도의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가
있는
곳에 우리의
삶도 보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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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합니다. 행복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