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적을 ‘인간 돼지’로 만들어버린 악녀-여후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 죽자 여후는 ‘연적’인 척부인에 대해 보복을 가하기 시작하는데요. 내시들을 시켜 척부인의 음부를 발로 짓밟도록 하고, 죄수들로 하여금 척부인을 집단으로 윤간토록 합니다. 그리곤 척부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목과 발목에 쇠고랑을 채워 감옥에 가두고는 하루 종일 쌀을 찧도록 하였는데요.
그걸로도 분이 덜 풀렸는지, (유방의 정실이었던) 여후(여태후)는 살아있는 척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두 눈을 뽑고, 약을 먹여(혹은 혀를 잘라) 벙어리로 만들고, 귀에 유황을 부어 귀머거리가 되게 합니다. 그리곤 돼지우리(뒷간을 겸하는)에 던진 다음 ‘사람 돼지’란 뜻의 '인체(人彘)'라 부르게 하며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는데요. 심지어 척부인의 아들 유여의의 시체를 보여주며, 그녀를 농락했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태후가 척부인을 그토록 증오한 까닭이 뭘까요? 가후와 측천무후, 서태후와 더불어 ‘중국의 4대 악녀’로 불리는 여후는 젊은 시절 백수건달이었던 유방과 혼인을 하였고, 기원전 202년 유방이 한나라의 황제(고조)가 되자 당연하게도 황후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여태후가 창업공신인 한신의 허리를 끊어 살해하는 등 ‘악행’을 이어나가자 황제인 유방의 마음은 초·한 전쟁 중 눈에 들어왔던 척부인(戚夫人)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척부인은 자신의 아들로 후계자로 삼고자 유방을 졸라대는데요. 그러나 유방이 죽고 황제 자리에 오른 사람은 여후의 아들인 혜제(惠帝, 유영)였습니다.
이때부터 전권을 장악한 여태후는 척부인 아들인 유여의를 독살하고,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척부인에 대한 잔인한 복수를 시행해나갔던 것이지요.
물론 미천한 출신인 척부인이 이미 태자로 책봉되어 있는 유영을 대신하여 자신의 아들을 그 자리에 올리려 한 일은 잘한 일이라 볼 수 없지요. 그럼에도 여후의 행동은 도를 한참이나 넘는 것임에 틀림 없어 보입니다.
여후는 살아남은 유방의 서자들까지 겁박하고 암살하였으며, 대신에 자신의 친정 식구인 여씨 일족으로 하여금 권력을 독점하도록 하였습니다.
마침내 여후가 62세로 사망하자 공신들이 유씨 일가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그 결과 여씨 일족은 거의 몰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죽어 무덤에 묻힌 여후의 시체까지 훼손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궁 안에서의 권력암투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백성들은 일상생활에서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여태후가 ‘악녀’로만 규정된 것은 여성에 대한 ‘배척의 힘’이 작동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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