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1,20―2,4ㄱ
20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
21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2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
곧 집짐승과 기어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25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2,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4 하늘과 땅이 창조될 때 그 생성은 이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13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알라반의 말씀사랑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희 프란치스칸들은 대체로 좀 지저분하고 품위없는 차림새와 허술하고 어눌한 언변 등 신사답지 못하다는 것이 세인들의 정평입니다. 양말도 잘 안 신고 샌들을 질질 끌고 다니고, 수도복도 지저분하고 수염도 잘 안 깎고, 옷도 싸구려 점퍼차림이 잘 어울리는 남정네들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한편에서는 그게 바로 매력이라고 위안도 해주더군요. 그래서 저희 수도회 회원중에 정상적인 품위를 갖추기만 하면 저희 수도회에선 신사로 손꼽히기도 하지요. 저희와 비교해 보면 교구신부님들이나 예수회원들은 그야말로 신사들이시죠. 깔끔하고 멋지신 모습들이 참으로 품위있어 보입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마르 7,5) 오늘 복음의 이 말이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랍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하는 어린 자녀가 밖에서 놀다 뛰어들어와 씻지도 않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으면, 그 부모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행여 밖에서 묻혀온 세균이 음식과 함께 입에 들어가 여린 몸에 병이라도 날까봐 겁이 더럭 나겠지요. 그래서 얼른 데리고 가서 씻겨 주며 잘 타이르겠지요. 손을 씻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한 만큼, 왜 그래야 하는지 알아듣게 해주고 싶을 겁니다. 사랑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켜야 할 관습"(마르 7,4)을 소홀히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비난의 날을 세웁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명과 율법이 세기를 거치며 해석이 더해지는 동안 "조상들의 전통, 지켜야 할 관습, 사람의 규정, 사람의 전통,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고착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정신은 어디 가고 형식만 견고히 남아버렸습니다.
독서에서는 어제에 이어 하느님의 세상 창조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하느님의 창조는 '사랑'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서로 돕고 도움이 되도록 순서지어 만드셨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이 되도록, 그리고 서로를 사랑으로 돌보고 가꾸도록 말입니다. 연약하고 가난한 피조물이 강한 피조물에게 기꺼이 양식(밥)이 되어주는 큰 사랑의 질서를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질서는 일곱째 날 쉼으로 축복의 절정을 이룹니다.
사실 사람에게 부여하신 "다스리고 지배하는" 권한은 태초 하느님의 주권 아래서는 '가꿈, 보살핌, 돌봄'의 의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인간 중심의 탐욕이 끼어들면서 '상하 위계와 불평등, 착취와 억압'이라는 권력의 때가 묻어버렸지요. 이 외형에 집중하는 동안 처음 부여하신 사랑의 정신은 의미가 변질된 문자의 틀에 눌려 질식되고 맙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마르 7,6)
이 말씀을 하시는 하느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헤아려 봅니다. 당신은 분명 사랑으로 시작하셨는데, 인간의 전통과 규정은 세기를 거치면서 당신의 뜻과 점점 격차가 벌어지니, 아무리 하느님 사랑이 뻔히 아시고도 번번이 속아주는 사랑이라지만, 그래도 안타깝고 허탈한 마음이 들어 하신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이 많이 바쁘고 허기졌나 봅니다. 저렇게 씻지 않고 급히 먹다 탈 날까봐 걱정됩니다." 이랬으면 참 좋았을 뻔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우리 안에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같은 심보가 들어 있지 않나요? 누군가 내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말, 윤리도덕의 관점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되거든 오늘 말씀을 꼭 떠올려 보십시오. 과연 내가 그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반응을 하는건지 아니면 내가 형식이나 틀에 매여 있어서 그런건지...
사랑은 그 사람의 약함을 치유시켜주고 변화시켜 줍니다. 단순한 평가와 단죄는 결코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나의 영혼에도 분노와 생채기를 남깁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랑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결국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