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전통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과 벌이신 논쟁 장면 하나를 소개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자주 논쟁을 벌이는, 예수님의 적대자로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자주 만납니다.
바리사이들은 유다교의 기록 전승인 모세의 율법은 물론 구전 전승을 가리키는 조상들의 전통에 충실했던 사람들로서, 이 두 전승에 대한 철저한 준수가 구원을 결정짓는다고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바로 구원의 절대적 요소인 의(義)를 쌓는 일이라 생각했으며, 따라서 죄인들과의 접촉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편, 예수님 시대에 흔히 라삐(스승)라 불리던 율법 학자들은 대부분 바리사이파에 속했던 사람들로서 그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본디 율법 학자들은 서기관들로서 국가의 각종 문서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후에는 율법을 보존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오경을 집대성한, 유다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즈라입니다.
오늘의 문제는 식사 전에 손을 씻는 규정에 관한 것입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사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은 위생상의 권고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무더울 뿐만 아니라 먼지가 많은 지방에서, 그것도 음식을 섭취할 때 손을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손 씻음은 절대적인 권고 사항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절차가 하나의 규정으로 성문화될 때는, 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팽배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러한 규정을 사람의 전통으로 단정하신 다음, 사람의 전통에서 비롯된 더 심각한 문제로 넘어가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예수님은 그 한 예로 하느님의 법(神法)인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 부모 효도 문제를 꺼내십니다.
부모께 대한 효도는 마땅히 공양으로부터 시작해야 함에도, 효도에 필요한 공양물을 코르반(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으로 바치겠다 선언하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해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곧 공양 의무에서 해방된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규정을 고발하십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이며,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규정입니다.
하느님이 내리셨다는 의미에서의 신법하면 두려움부터 가질 수도 있으나, 그 신법이라는 십계명 안으로 들어가면, 두려워할 것도, 놀랄 것도, 특별히 연구해야 할 것도 없습니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윤리적이고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1~3계명은 비신자들에게 신적인 요소로 각인될 수 있으나, 하느님의 자녀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계명들입니다. 십계명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신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코르반 전통은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 비인간적인 전통이기에 없애버려야 하며, 식사 전에 손을 씻는 의식은 권고 정도로 충분하지, 굳이 규정으로 만들어 인간을 속박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정말 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내일 복음 말씀을 통해서 밝혀주실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계명 준수는 그 계명에 내 마음이 온전히 실려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준수해야 할 계명 또는 규정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터득할 수 있을 때,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동반될 것입니다.
이러한 계명과 규정에 담긴 하느님의 뜻은 세상과 인류 구원에 있음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하느님의 뜻 구현을 위해 힘쓰는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조금 더 기도하고 희생할 것을 다짐하는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