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탁구영웅" 탄생을 알리는 낭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날아들었다.
지난 2월19일 . 2008 헝가리 주니어 오픈 탁구대회에서다. 이 낭보를 전해온 주인공은 중학교 3학년생.
직접 만나 보니 아직은 수줍음 많은 앳된 소녀다. 군포중학교 3학년 양하은 선수. 그는 2008 헝가리 주니어 오픈 탁구대회의 단체전과 개인전, 개인복식에서 3관왕에 오르며, 그 이름을 세계 탁구계에 또렷하게 각인시켰다.
대한민국의 "탁구신동" 에서 , 세계적인 탁구선수로 그 이름값을 새긴 것이다. 특히 헝가리 대회는 18세 이하의 고등학생이 주축이 되어 경기가 치러지는 대회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중학교 3학년이 세 개의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자, 국제탁구연맹(ITTF)
에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하은이의 질주는 계속 이어졌다. 헝가리 주니어 오픈 바로 다음 주에 열린 스웨덴 대회에서도 여자 복식에서 우승, 2주 연속 세계 정상에 올랐다. 최근 들어 양하은 선수가 출전한 7개의 대회 중 6개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거침없는 상승세다. 경기도는 물론 국내 탁구계에서는 지금 '차세대 에이스' 의 탄생을 축하하고, 반기고 있다.
사실 헝가리 대회 참가에서 하은이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상대 선수들이 고등학생이라 덩치도 큰 데다, 힘 좋은 유럽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나이도 하은이가 가장 어렸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이번 헝가리 대회에서 하은이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물론 자신감이다. 양하은 선수의 전형은 세이크 핸드 전진 속공형. 빠른 스피드와 끈질긴 승부욕이 그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 상대해야 할 선수가 저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이라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꼭 이겨야겠다는 정신력으로 우승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앞으로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해 부족한 체력을 더 보강해야 하는 게 숙제예요"
지난 2월말 군포에 있는 실내 체육관. 헝가리,스웨덴 주니어 오픈에 연이어 참가한 뒤 피로를 느낄만 한데도 하은이에 손에는 다시 라켓이 쥐여져 있었다. 봄 방학 기간중, 군포 흥진고 선배들과 함께 맹연습 중이었다. 흥진고의 코치이자, 하은이의 탁구 지도를 맡고 있는 김인순 코치는 바로 하은이의 어머니다. 20여 년 전, 한국여자탁구가 세계 정상권이던 시기 양영자,현정화 선수와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대우증권 창단 멤버다. 아버지 양인선씨는 얼마 전부터 하은이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연습장이고, 대회장이고 곁을 지키며 하은이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고 있다.
"여섯 살 때 생활체육 코치를 하셨던 엄마와 언니를 따라 다니며 탁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때 30분씩 탁구를 치며 놀았는데, 그게 너무 재미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탁구를 하겠다고 졸랐어요"
탁구에 대한 딸의 남다른 열정을 눈치 챈 '어머니 코치'는 하은이가 초등학생이 되자 본격적인 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언니 양하나 선수 역시 군포 흥진고에서 탁구를 하고 있다. 김인순씨는 하나와 하은이에게 늘 "엄마보다 더 훌륭한 탁구선수가 될 수 있다"고 용기를 심어 주었었다. 지금은 언니와 경기를 할 경우 하은이가 결코 밀리는 법이 없다.
"엄마는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지내셨다지만, 저는 꼭 국가대표 선수가 될 거예요. 나중에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도 딸 거고요."
하은이의 말에서 다부짐이 느껴졌다. 체육관에서 처음 만나 인사 나눌 때 수줍음 많던 그가 아니었다.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과 끈기가 좋은 게 장점이다'고 들려주던 김인순 코치의 말이 실감이 났다. 하은이의 또 다른 장점은 플레이를 누구보다 즐긴다는 점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지혜를, 어려서부터 탁구를 통해 터득해 온 하은이였다.
하은이에겐 앞으로 다른 선수들이 좀처럼 깨기 힘든 기록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선수들이 나가는 동아시아 호프스대회에 4학년 때부터 3년 연속으로 출전한 기록이다. 또 초등학교 시절, 교보생명컵 대회에 나가서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매년 단 한 차례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었다. 대회 6연패의 위업이었다. 이때부터 이미 또래에는 적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던 하은이였다. 요즘은 종종 실업팀 언니들과 훈련할 기회도 갖는다.
이 대목에서 환하게 웃어 보이는 하은이다. 선수생활 9년여 동안, 지는 경기에 익숙치 않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하은이도 지난해 '크게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3월에 있었던 종별선수권대회에서다. 강력간 우승후보라는 예상을 깨고 8강에서 탈락했다.
"지고 나니까 참 허망했어요. 연습을 게을리 한 결과였어요"
이때 하은이는 "괜찮아, 다음에 이기면 돼" 라며 마음을 굳게 먹었단다. 대회 참가를 앞둘때는 아침 9시부터 저녁시간까지 종일 훈련이 기다린다. 일요일도 예외란 없다. 요즈음에도 한시라도 게을리 할 수 없는 건 기본 훈련이다. 탁구대와 그물 벽을 앞에 두고 포핸드와 백핸드, 쉼 없는 연습을 해야 한다. 특히 서브에 이은, 파워가 실린 제3구 빠른 공격. 하은이에게 부족하다는 이 점을 집중 보완해 나가는 중이다.
그런 하은이에게 탁구가 왜 좋은지 물었다. "그 자그마한 공을 라켓으로 쳐낼 때면, 손끝에서 짜릿함이 전해져 온다" 며 제법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하은이가 현재 당장의 목표로 삼고 있는 대회는 2010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제1회 유스올림픽.
이 대회에는 청소년 국가대표 3명이 참가하게 된다. 하은이는 지난 2월 세계 주니어오픈 2주 연속 우승의 여세를 몰아, 이 대회 원년 챔피온이 되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중극의 벽을 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