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언제나 자유로운 산책이다. 반드시 목적지와 일정을 가지고 길을 떠나는 정기 열차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초여름 피서를 겸한 여행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무작정 길을 나섰다가는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낭비하기 십상. 낭비하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겠는가. 몸도, 마음도 지쳐 여행을 망치기 쉽다. 경북 문경의 용추계곡. 문경이 감춰놓은 비경 지대다. 강도 좋고, 해수욕장도 좋지만 조용하고 여유롭게 주말을 보낼 수 있는 여행지로는 계곡이 적격이다. 용추계곡은 주변에 선유동, 쌍곡, 화양동계곡 등 이름 높은 계곡이 즐비한 덕에 사람들로 인한 몸살이 덜한 편이다. 더욱이 다른 계곡들이 갖지 못한 너른 암반 위를 흐르는 물과 우거진 숲의 조화는 용추계곡만의 자랑이다. 탄광이 40여 개에 이르렀고, 광부만도 1만 명을 헤아렸다. 한창 때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돈이 흔했던 고장이었다. 하지만 1994년 은성광업소를 마지막으로 탄광이 사라지면서 16만 명이 넘던 인구가 8만여 명으로 줄었다. 도시 전체의 수입이 줄어든 탓에 문경시는 새로운 타개책을 내 놓았다. 그것은 전국 제일의 관광·레저의 도시로 만드는 것. 석탄박물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등을 지어 성공작이란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버려진 기찻길을 활용한 철로자전거나 산악 지형을 이용한 산악자전거 타기, 깊은 산이 품은 유려한 계곡 트레킹 등 천혜의 자연 자원을 활용한 레저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중부 내륙의 관광 중심지로 우뚝 서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삶의 여유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레저 시설을 준비한 산골 문경. 그곳으로 떠나는 여행에는 여유가 묻어난다.
출발(16:30) → 진남교반·고모산성(18:30) → 불정자연휴양림(19:00)
더욱이 산지가 많은 문경 구간 외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가는 길도 한결 빠르고 쉬워졌다. 문경읍을 지나 점촌 방면으로 3번 국도를 따라 달려가면 S자로 휘어지는 강변과 함께 좌측에 진남휴게소가 나온다. 문경 여행은 휴게소에 주차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길태극이라 불리는 진남교반이 펼쳐지고, 뒤편의 산 정상에는 천 년 고성인 고모산성 이 버티고 섰기 때문이다. 휴게소 뒤편의 산길을 10여 분 정도 오르면 1,500여 년의 기나긴 세월을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진남교반을 굽어보고 있는 고모산성이다.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수직으로 쌓은 성벽은 난공불락의 요새임이 실감난다. 임진왜란 때 한양을 향해 진격하던 소서행장의 주력 부대를 군사 한 명 없이 만 하루 동안 진격을 지연시켰을 만큼 험준한 지세를 이용해 쌓은 철옹성이다.
그림처럼 펼쳐진다. 경북팔경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진남교반이다. 진남교반이란 진남교 부근의 아름다운 경관을 말한다. 산과 강이 만나 빚어낸 절경에 인공적으로 건설한 교각이 어우러져 진남교반의 절경을 이루는 것이다. 강을 가로지르는 철길은 쉴 새 없이 기적 소리를 울려대며 검은 탄가루를 실어 나르던 기차를 다 떠나보내고 지금은 오붓함을 즐기는 사람들의 산책로로 변했다. 폐선로를 따라 터널을 지나고 철교를 건너며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는 것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한몫한다.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영남대로의 옛 흔적을 밟아볼 수 있는 구간이다. 표지판을 따라 가면 험준한 벼랑을 끼고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협곡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넘기 전 영남대로 중에서도 가장 험하다고 하는 5km의 이 길을 엉금엉금 기다시피해서 넘어야
했다. 길이 없어 고민하자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진군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줘서 토천이라 불렀다"고 적혀 있다. 바위 벼랑을 따라 ㄴ자로 파서 길을 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밟혔는지 돌이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졌다.
관광사격장(09:00) → 철로자전거(10:30) → 용추계곡(13:00) → 석탄박물관(17:00) → 예인과 쉼터
펜션(20:30)
평소처럼 일찍 기상해 휴양림 내의 산책길을 걸으며 숲의 싱그러운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후 관광사격장에서 도시에서 짊어지고 온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사격장에서는 클레이사격, 공기총사격, 권총사격을 할 수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남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클레이사격. 날아가는 원반을 맞췄을 때의 쾌감이 가장 강렬하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표적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전문가의 지도를 따라 하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맛보게 된다. 진남역을 중심으로 1km 정도 오가는 20분 코스를 무료 운행 중이다. 구간이 짧은 것이 아쉽지만, 주말과 휴일에만 운영하기 때문에 평균 30분 정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내년부터는 진남역에서 출발하여 가은읍을 오가는 왕복 20km 코스를 유료로 운행할 계획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석탄이 쏟아질 때는 2만3,000명이나 되던 인구가 5,000명으로 줄었으니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거리도, 다방도, 음식점도 쓸쓸해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나마 주말이면 석탄박물관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활기를 되찾는다. 폐광이 된 갱도를 그대로 살려 채탄작업을 재현하고, 전시실에는 채탄 관련 장비, 각종 자격증과 관련 사진 등을 전시해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발전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각종 자격증과 관련 사진, 채탄 관련 장비 그리고 실제 채탄 작업을 재현한 디오라마를 돌아보면, 다음은 실제 사용하던 갱도의 일부를 보수해 전시 시설로 활용한 야외 전시장이다. 갱도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 중인 광부의 모습을 비롯해 실제 갱도 안에서 작업하는 광부들의 작업이 실감난다.
용추계곡이 시작되는 완장리 벌바위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에서 계곡 입구까지는 승용차로 약 10분 거리. 논 사이로 난 포장길을 따라 천천히 들어가면 매점과 민박을 겸한 식당들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용추계곡의 시작이다. 우거진 숲과 널찍한 너럭바위, 그 위를 흐르는 맑은 계류가 처음부터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펴고 주저앉고 싶은 풍경이다. 그러나 용추계곡의 백미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추. 이제까지의 풍경은 용추를 더욱 빛내기 위한 전주곡에 불과하다.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를 따라 15분 가량 오르면 용추에 이른다. 등산로는 잘 닦여 있어 힘들지 않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싱그러운 숲 향기를 맡으며 걷는다. 모두 3단으로 되어 있는 그 생김새는 참으로 신비하다. 제일 상단은 거대한 암반이 수천 년 동안 물에 닳아서 원통형의 홈이 팼고, 그 홈을 타고 맑은 계류가 엿가락처럼 꼬아 돌며 아래로 떨어진다. 특히 상단에 팬 홈은 멀리서 바라보면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다. 물 속에서보면 항아리처럼 되어 있어 손잡이가 없다. 위험하다. 절대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 매년 익사사고가 나는 곳. 마치 잘 다듬어 놓은 천연의 목욕통을 연상시킨다. 그래서인지 '위험하므로 수영을 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음에도 젊은이들은 더위를 피해 소로 뛰어들어 나올 줄 모른다. 하단은 중단부터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3m 가량 암반을 타고 물이 흐르고 밑에는 얕고 넓은 소를 이루고 있다. 어른 무릎을 조금 넘는 깊이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 놓고 물장난하기에는 적격이다 더욱이 중단에서 하단으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암반은 천연 슬라이드로 전혀 손색이 없다.
그 모양새가 용 비늘 자국과 흡사해, 옛날에 이곳 소에 살던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남겼다는 용 비늘 자국이라고 한다. 용은 물을 상징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라 날이 가물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 대야산 정상을 향해 등산로를 20분 정도 오르면 망석대 지나 널찍한 암반이 펼쳐진 월영대가 있다. 이곳 역시 숲으로 둘러싸여 시원하다. 이름처럼 밝은 달이 산 위로 떠오르면 물에 비친 달의 아름다운 모습이 저절로 상상되는 그런 곳이다. 그 위로도 계곡은 한동안 계속된다. 하지만 이전처럼 멋들어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으므로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면 월영대까지가 적당하다. 넓은 반석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바람은 나무에 부딪혀 부서지고 나무는 바람의 뜻에 따라 춤추는 듯하다. 계류는 이런 모습을 반기며 박수치듯 소리 내어 흐른다. 계곡은 바람과 물을 보듬어 안고 나무는 그 속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어디에서 또 이만 한 장소를 찾을 수 있겠는가?
문경온천(09:00) → 문경새재(10:30) → 출발(14:00) → 도착(19:00)
뜨거운 욕탕 안에서 느끼는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 전날의 산행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어쩐지 이보다 더 좋은 여행의 마무리는 없을 거란 예감이 든다. 문경온천의 명성은 그동안 경험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다. 국내에서 가장 좋은 칼슘-탄산염천으로 탄산가스가 피부에 흡수되어 모세혈관을 자극해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온천수를 마시면 방광염, 만성변비, 기관지염에 탁월하다고 한다.
고개에는 넘는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고, 소원을 빌며 쌓아올린 돌무더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옛 고갯길에는 태고의 향수가 느껴진다. 장원급제의 부푼 꿈을 안고 길을 나선 유생, 괴나리봇짐을 메고 한몫 잡아보려는 보부상 등 저마다 사연을 품고 이 고개를 넘었으리라. 영남의 마지막 관문에서 곱게 다져진 흙길을 맨발로 걸으며 흙의 온기를 접하고, 발길 닿는 곳마다 첩첩이 쌓인 옛 서정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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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겐 오직 하나 뿐인 하나─┼ 원문보기 글쓴이: 하나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