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산행
거문도 불탄봉(195m)
걷는 내내 이국적인 풍경, 절경에 감탄
오늘은 KTX를 타고 광주송정역으로 간다. 저 멀리 여수시 거문도의 불탄봉을 향하여... 그동안 기차 시간을 따지느라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수도권 근교로만 대상지를 잡은 것이 사실. 모처럼 맘 잡고 멀리까지 떠나보기로 한다. 때마침 코레일 수도권 마케팅팀이 거문도·백도 답사를 간다기에 함께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내년에 여수까지 KTX가 뚫린다면 서울에서 몇 시간 걸리는 건가요?"
"글쎄다. 한번 계산해 볼까? 내년이 돼도 아직 호남고속철도는 깔려있지 않은 상태니까. 서울에서 대전까지 1시간. 대전에서 익산까지 1시간. 다음, 문제는 익산에서 여수까지가 얼마나 걸리느냔데. 현재 무궁화호로 2시간 40분 정도 걸리니까. 복선공사가 완료되면 20분정도 빨라진단 말이지. 그래서 2시간 20분에다가 기존선 KTX 최고 속도 180킬로미터를 감안하면 다시 40분 단축. 그래서 익산에서 여수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총 3시간 40분이네! 여기에다 호남고속철도가 완공되면 익산까지 또 40분을 빼야지. 그러면 총 3시간쯤 걸리겠구나!"
한국 철도산악연맹 구조대 김윤수 대장의 '척척박사' 같은 대답. 그러니까 지금, 무궁화호로 용산~여수는 6시간 정도 걸리는데 KTX로 반 이상이 단축된다면, 하루 만에 저 멀리 전라도의 산들도 다녀올 수 있다는 말. 재빨리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며 남쪽 유명한 산들을 대상으로 다음 산행지를 물색한다. 가만있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언제부터 전라선 KTX를 탈 수 있는 것인가? 어리둥절해 하던 차에 한국철도공사 서울본부 영업팀 성기철 차장이 보충 설명을 해준다.
"2012년 여수 엑스포 유치를 앞두고 전라선 전 구간을 복선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빠르면 내년 초에 여수까지 KTX가 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거문도까지 하루 만에 다녀올 수 도 있습니다. 아마도 수도권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남지방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저희는 지난 11월 중순에 여수시 문화관광과와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관광활성화를 위해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 앞으로 우리 철도를 이용해 남쪽나라 좋은 곳 많이 구경 할 수 있을 겁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들뜬 기분과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광주송정역. 주말이라 그런지 우리 같은 여행객들이 '우수수' 열차에서 빠져 나온다. 대합실에는 여행사 별로 피켓을 들고 나와 손님들을 찾고 있는데 '돗대기 시장' 분위기다. 생소한 광경에 혼이 쏙 나간다.
"사람들 많은 것 보셨죠? 원래 주말에 내려오면 대접 잘 못 받습니다. 그래도 오늘 저를 만난 건 참 다행입니다. 제가 바로 거문도 전문갑니다!"
이틀 동안 가이드를 해 줄 거문도 관광여행사의 박춘길 대표. 그의 고향이 바로 거문도다. 젊은 시절, 중국·유럽 등 근 10년 동안 외국을 돌아다니며 관광업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와서 보니 이곳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그래서 아예 거문도 전문 여행사를 차려 거문도의 아름다움을 전국, 전 세계에 알리기로 작정했단다
거문도는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옛 이름은 삼도, 거마도 등이었으나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섬에 학문에 능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거문도(巨文島)'로 개칭하도록 건의,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한창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에 열을 올리던 구한말 고종 2년인 1985년 4월 15일, 영국 군함 6척과 상선 2척이 거문도에 조용히 닻을 내리게 됩니다.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는데 정작 이 땅의 주인인 조선 정부엔 일언반구 사전 협의조차 없었죠. 그리고 그 후 이 섬 이름은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이름인 포트 해밀턴으로 버젓이 세계 해도에 등재됩니다. 그러나 당시 최초 보고를 받은 조선정부는 이 섬 위치가 어딘지 몰라 허둥댔고 그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겨우 찾아낸 해법이란 것이 러시아와 청나라에 탄원을 넣은 것이 고작이었죠. 현재 독도문제도 이와 비슷하죠. 한 세기 전 거문도 사건이 문득 반면교사로 떠올려지는군요. 만약 영국 군함이거문도 철수를 완강히 거부했다면 현재 거문도의 지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근 거문도 서도에서 중국 한나라 화폐인 오수전이 발견됐단다. 이는 거문도가 한때 동북아시아의 중요항로였음을 반영하는 것인데 예전에는 이 섬이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고 박 대표가 덧붙인다.
2시간 걸려 녹동항에 도착, '모비딕호'를 타고 거문도항으로 떠난다.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쾌속선. 하얀 포말이 뒤를 따르며 취재팀이 탄 배를 호위한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려 거문도항에 도착한다. 곧바로 배를 갈아탄 후 백도로 향한다. 30분 쯤 가니 백도의 여러 섬들이 나타난다. 상백도와 하백도의 기암봉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기둥처럼 우뚝 선 서방바위 주변의 기암봉들의 신비한 모습에 대부분의 관광객 들이 넋을 잃는다. 2시간여에 걸친 백도 유람을 마치고 거문항으로 돌아오니 어둑어둑 해진다.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거문도를 찾은 탓에 거문도항이 시끌벅적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불탄봉으로 가기 위해 서도를 향해 간다. 삼호교를 건너 덕촌마을에 도착. 마을 샛길로 들어가니 산 쪽으로 녹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그것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서니 곧 산길. 약한 오르막을 5분쯤 가자 짙푸른 바다가 펼쳐지며 앞으로 고도와 동도의 마을들이 보인다. 조금만 올라와도 이런 절경을 즐길수 있으니 거문도민들이 부러워진다.
길은 뒤쪽 숲으로 이어진다. 약간 가파르기도 한데 천천히 오르니 별 힘은 들지 않는다. 등산로를 에워싼 숲이 내륙의 산들과 달리 묘한 분위기를 낸다.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30분쯤 가니 오르막이 더 급해진다. 같이 가는 사람들의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지더니 끝내 "아이고, 나 죽네" 라며 곳곳에서 탄식소리가 들린다. 20분 지나자 드디어 불탄봉. 평평한 봉우리 끝으로 다이빙대처럼 바위턱이 나와 있다. 조망은 두말할 것 없이 시원스럽다. 오늘 목적지는 거문도 등대. 생각보다 먼 거리라 서둘러 다시 능선길에 오른다.
다시 정상 뒤쪽으로 돌아가 왼쪽 내리막으로 간다. 이윽고 억새밭이 나오더니 멀리 바다와 어우러지며 절경을 연출한다. "이야! 여긴 정말 다른 나라 같아." 오병건 부대장이 감탄하며 외친다. 그동안 수도권 내륙의 산들에 길들여진 탓인지 고개 돌리는 곳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에 취재팀은 넋을 잃는다. 정종원 기자도 여기저기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찰칵, 찰칵" 바쁘게 돌아다닌다. 이윽고 능선은 오른쪽 바위벼랑 쪽으로 붙으며 또 다시 새로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촛대바위를 오르니 절벽 밑으로 바다가 대리석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앞서가던 박춘길 대표가 일행들을 신선바위로 이끈다. 섬 밖으로 툭 튀어나온 바위봉우리 정상인 신선바위. 멀리 거문도 등대와 서도의 바위절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능선에 올라 보로봉(170m)을 넘는다. 여기까지 오니 그동안 질러대던 감탄의 비명 때문에 목이 쉴 정도. 그것을 헤아린 듯 길은 곧바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산길이 끝나자 목넘어고개가 나오며 거문도등대로 가는 길과 만난다. 평탄한 길을 20분쯤 가니 등대. 흰색의 등대가 골인지점 깃대처럼 우뚝 솟아있다. 그 앞 널따란 광장으로 '타박타박' 걸으며 거문도의 마지막 절경을 즐긴다. 참 멀리도 왔다. 저 등대 꼭대기에 오르면 늘 시끌벅적한 서울도 보이려나. 배가 오지 않아 이곳에 더 머물게 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산행길잡이
덕촌마을-(20분)-갈림길-(10분)-불탄봉-(40분)-촛대바위-(1시간)-신선바위 갈림길-(10분)-보로봉-(20분)-목넘어고개-(30분)-거문도등대-(20분)-유람선선착장
거문도는 여수에서 114.7km 떨어져 있으며 쾌속선으로 여수항까지 1시간50분이면 닿는다. 서도, 동도, 고도의 세 개의 주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다. 항만을 형성하는 안쪽으로 경사도가 완만해 6개의 부락을 이루고 있고 항구의 뒤쪽으로는 깎아지른 단애가 형성되어 있다. 이 두 지점의 경계선인 산 능선을 따라 음달산(237m)에서 거문도등대까지 이어진 능선은 아열대의 산림욕을 만끽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섬산행 코스다. 산이 높지 않아 부담없이 오를 수 있으며 오르내림도 그리 심하지 않다. 중간에 덕촌마을회관, 유림해수욕장, 목넘어고개로 이어지는 탈출로도 있어 언제든지 중간에 내려갈 수 있다.
*교통
용산역에서 여수역까지 KTX는 내년 초에 개통된다. KTX 광주송정역에서 녹동항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 용산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수시로 운행하며 요금은 38,400원. 3시간 걸린다.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녹동항까지 시외버스가 다닌다. 요금은 13,400원. 2시간40분쯤 걸린다. 녹동항에서 거문도행 모비딕호가 있으며 녹동→거문도는매일 08:00, 14:00, 거문도→녹동은 매일 11:00, 16:00에 출발한다. 1시간20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24,000원. 청해진해운 녹동 061-844-2700.
여수역에서 거문도로 가는 방법도 있으나 KTX가 개통되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여수에서 거문도까지는 배로 2시간30분쯤 걸린다.
*거문도 관광 팩키지 상품
1박2일 KTX(용산역~광주송정역~녹동항~거문도항~백도~불탄봉~거문도등대~녹동항~광주역~용산역), 2인1실 기준 204,600원.
2박3일 무궁화(용산역~여수역~거문도항~여수항~2012 여수세계박람회 홍보관~여수역~용산역, 2인1실 기준 227,700원.
용산역 여행센터 02-3780-5555, 서울역여행센터 02-3149-3333, 거문도관광여행사 061-665-7788.
*잘 데와 먹을 데
거문항 주변에는 해동각(061-666-4242), 거문장(666-8052), 삼호장(666-85334?) 등의 숙박시설이 많다. 서도에도 덕촌리민박(665-0177)을 비롯한 여러 개의 민박집이 있다. 고도에는 황금어장(666-7734), 바다나라(666-2203), 강동횟집(666-0034) 등이 있다.
*볼거리
백도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속해 있는 섬들로 명승 제7호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일부다.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약 28km 지점에 있는 39개의 무인군도로서 상백도군과 하백도군으로 나뉜다. 거문도 어장의 중심지역으로 조기, 갈치, 돔, 민어 등의 어장으로 유명하다.
거문도등대 1906년에 서도 수월산에 세워졌다. 자동 통신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무선신호가 있어 짙은 안개 속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등대다. 등대 앞에는 남해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도록 관백정이 세워져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이용한다. 이곳에서는 바다와 면한 수원산의 바위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아스라이 보이는 백도의 모습도 무척 아름답다.
영국군 묘지 영국해군이 1885년 4월23일부터 1887년 3월1일까지 약 2년 동안 불법점령했었다. 당시 익사, 병사, 총기사고 등으로 사망한 사병들의 무덤이다. 고도의 산기슭에 있으며 그 너머 언덕에서는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다.
글쓴이:윤성중 기자
참조:거문도 불탄봉~보로봉
참조:삼호교~수월산 거문도 등대~보로봉~불탄봉
참조:동백꽃 남도산행 불탄봉
참조:심춘산행 불탄봉~보로봉
참조:불탄봉 억새산행
참조:불탄봉~보로봉 봄맞이섬산행
참조:비박하며 노을, 일출보기 섬산행 거문도 불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