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수IC를 지나쳐 우리가 향한 곳은 남원시내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동쪽으로 나아가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지리산 트래킹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많이들 알만한,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
'인월'이라는 마을이다.
인월이라는 마을은 남원과 함양 사이에 있는 운봉고원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전라북도 소속이지만 이곳에서 흐르는 물길은 낙동강을 향해 흐르며, 남원시내보다 함양읍내가 가깝다.
그래서인지 말투도 전라도와 경상도가 오묘하게 섞인 독특한 말씨를 쓴다.
위치상으로도 지리산 천왕봉과 가장 가까운 버스터미널이 이곳인지라,
정식 명칭은 '인월 지리산 공용터미널'이라고 한다.
버스터미널 건물은 2층짜리 붉은 기와가 얹어진 작은 건물이다.
생김새만 놓고 보면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모양이지만 붉은 기왓장이 운치를 살려준다.
때마침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음침한 분위기와 조금 대비되는 모양새다.
이 조그마한 건물에도 나름 승차장은 갖춰져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들린다고 그것도 최신식으로 새로 꾸며놓은 모습이 보인다.
이런 조그마한 마을의 다 꺼져가는 지그재그형 승차장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깔끔하니 정돈된 모습도 썩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승차장 위의 간판하며, 버스 출입구 옆에 인도도 없이 달린 상점의 모습이 꼭 옛날 버스터미널을 보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몇십 년 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 자리한 공간이었으니까. 승차장만 리모델링을 했을 뿐, 오래전부터 사람들을 실어주던
버스터미널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마침 우리가 가던 날은 사람 없는 비수기의 평일, 그것도 해질녘이었다.
관광객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이 시기에 사람을 찾아볼 일이 거의 없기에,
정말 운 좋은 시기에 간 것 같다. 보통이라면 등산객으로 득실득실했을 텐데 말이다.
몇 년 전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쳤는지, 바깥의 승차장 뿐만 아니라 맞이방의 모습도 깔끔히 정돈된 모양새다. 그러나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있는 상업 광고 간판과 정신없이 나열된 시간표가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둘만 아니면 훨씬 깔끔하고 널찍해
보였을 것 같다.
리모델링 이전에 원래 매표소로 쓰였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옆에 화장실 입구가 있어 그냥 눈속임에 불과한
것 같다. 이 뒤쪽으로도 크나큰 시간표와 더불어 지리산 안내도가 나란히 붙어있고, 옆에는 게스트하우스 간판까지 붙어있어
정신없기는 매한가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왕래하는 사람 수가 적다면 굳이 광고가 이렇게 붙어있을 이유가 없는데, 다양한 종류의
광고가 여기저기 붙어있다면 은근히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뜻이다. 문 닫을 일은 없어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이 버스터미널이 위치한 인월면의 인구는 3천여 명이다. 같은 생활권의 운봉읍,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외지로 나갈 수 있는
아영면, 산내면, 그리고 함양군의 마천면을 모두 포함해도 인구는 겨우 만 명에 턱걸이된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숫자에 비해
다니는 버스의 수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몇 안되는 요지인데다, 지리산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대중교통 거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행선지로
나름 다양해서, 함양을 거쳐 진주, 창원, 부산으로 이어지는 버스는 다 합칠 경우 대략 1시간 내외의 배차로 다니고 있다. 호남
면 단위 지역을 통틀어서 영남으로 이렇게 많은 버스가 가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지역이 속한 남원으로 가는 버스는 말하면
입 아프다. 대부분의 계통이 남원을 거쳐 전주로 이어지는 노선인데, 대략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의 완행 노선과 비슷한
모양새다. 88 고속도로 라인으로 이어지는 광주행은 의외로 횟수가 많지 않다.
오른쪽에 더 알아보기 쉽게 시간표가 붙어있다. 영남권과 지리산 골짜기 위주로 시간표가 안내되어 있는데, 이쯤되면 여기가 어느 곳에 소속된 동네인지 헷갈릴 수준이다.
버스터미널의 특성상 시외 노선만이 아니라 시내버스 안내까지 아주 자세하게 소개된다.
아영면으로 들어가는 시간표가 아주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아영면이라는 동네의 인구는 2천명이 채 안되지만 횟수는 제법 자주 있는 편이다. 그 동네가 어느 정도로 여기에 의존하는지 알 수 있다.
남원에서
주천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가 붙어있는데, 위치상으로 남원시 주천면과는 전혀 교통 쪽으로 관련이 없어보이는 이곳에 왜 저 시간표가
붙어있는지 의문이다. 설마 주천면 말고 또다른 주천이 근처에 있는 것인지... 금계라고 써있는 곳은 함양군 마천면에 속한
금계마을로 추정된다. 이곳이 지리산 둘레길과 계곡으로 제법 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울 가는 노선, 대전 가는 노선까지 있다. 서울행은 무려 동서울과 남서울, 두 개로 쪼개져 있다.
횟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거의 어지간한 군내 터미널과 맞먹을 정도로 남부럽지 않게 풍족한 노선을 자랑한다.
버스터미널 앞의 시내버스 정류장에는 남원시내로 이어지는 시내버스가 안내되어 있다.
버스터미널
주변 주민들의 상당수는 횟수가 많은 시외버스를 이용할 것 같지만, 시내버스도 충실히 연계되어 있다. 고작 터미널-터미널 간을
연결하는 시외버스와는 달리, 얘네는 운봉을 포함한 중간 마을을 죄다 들릴 뿐더러 남원시내 중심가, 남원역까지 이어주기 때문에
시내버스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허나
이곳을 종착지로 삼는 시외버스는 없다. 양쪽에 남원, 함양이라는 큰 고을이 있는데 굳이 자그마한 이 동네까지만 운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을 들리는 버스 노선들은 중간 경유지가 많은 편이고, 그런 이유로 서울행과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요금이 센 편이다. 같은 동네인 남원시내로 가는데만 해도 3,400원이라는 거금(?)이 들어간다. 오히려 함양은 겨우
2,000원이면 갈 수 있다.
출입구 옆의 상가 역시도 편의점 하나, 카페 하나가 버젓이 들어와 있어 나름 활기찬 모습을 띄고 있다. 사람이 많을 시기에 온다면 꽤나 번잡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로 독특한 면모를 띄고 있기에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조그마한 마을에 다 죽어가는 모습을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비록 조그맣지만 마을의 가게들도 꽤나 품목이 다양하고, 나름대로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
내리는 울적한 날씨 속에 맞이한 지리산 자락의 조그마한 산골 터미널은 짧지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 곳이었다. 앞으로
가야할 경상도 지역의 버스터미널과 마을 분위기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된 것 같고, 주변의 계곡과 산은 어떤 모습으로 우릴
반길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다. 많고 많은 일이 있었던 이 날의 하루를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식히러
남원시내로 들어갔다.
첫댓글 방문했을때가 좀 됐는지 서울남부행이 2회일때네요.
현재는 3회(11:15 증회 ) 운행중입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한번은 꼭 가보고싶은 터미널이네요.
밑의 광주, 담양, 순창 게시물과 같은 시기에 다녀왔으니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나중에 시간되시면 한 번 가보셔도 좋을 겁니다.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오랜만에 좋은 내용 잘 보았습니다
@부산교통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너무 오랜만입니다. ㅎㅎ
군생활하며 가끔 지나던 동네네요. ^^
그렇군요...^^
오랜만에 맵시멈님 터미널 기행기 잘봤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글 정말 반갑게 잘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뵈서 너무 반가워요~~
안양.부천 가는 노선도 있네요
생각보다 다양한 노선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저 노선은 함양을 들리는군요~
@Maximum 함양지리산고속에서 운행한다고 합니다
오랜만의 터미널 여행기 반갑습니다^^
비오는 저녁의 시골 터미널 풍경이라 그런지 더욱 정감이 갑니다..
오랜만입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 비 오는 날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