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공주 송산리 고분에 대하여...
: 송산리 고분군은 공주시 중심부에서 서북방으로 약 1㎞ 지점인 금성동과 웅진동에 연접한 송산소라는 지역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백제는 문주왕(457∼477, 재위)이 475년 지금의 서울인 한성으로부터 천도한 이래 삼근왕(477∼479, 재위), 동성왕(479∼501, 재위), 무녕왕(501∼523, 재위)을 거쳐 성왕(523∼554, 재위)이 538년 수도를 다시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옮길 때까지 5대 63년간 지금의 공주인 이 곳 웅진에 도읍하고 있었다. 송산리 고분군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들은 바로 웅진 도읍기에 재위하였던 백제의 왕들과 왕족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동쪽으로 수려한 공산성이 건너다 보이고, 서쪽으로는 곰나루의 금강이 아늑하게 감싸돌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충청남도의 명산인 계룡산이 눈앞에 펼쳐져 풍광이 뛰어난 이 곳은 가히 명당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당시에 이미 사신사상에 따라 묘지를 선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에서 밝혀진 고분들의 내부 구조는 크게 석실분과 전축분의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북방 상부에 동서 일렬로 늘어서 있는 4기의 고분과 남방 하부에 위치한 3기의 고분 중 동남쪽의 5호분은 현실과 현실로 들어가는 길인 연도를 네모꼴로 다듬은 돌로 축조한 석실분이고, 남방 하부의 나머지 두 고분, 즉 무녕왕릉과 6호분은 벽돌로 쌓은 전축분이다.
1971년 우연하게 발견되어 발굴 조사된 무녕왕릉은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진수를 유감없이 드러내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국내외 학계의 백제 문화 연구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2.무령왕릉
:1971년 7월 7일부터 동년 10월 28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발굴됨으로써 그 전모가 드러났다. 송산리 제5, 6호분과 서로 봉토를 접하고 있다. 분구는 지름 약 20m의 원형 플랜을 가지며 널방의 바닥면에서 분정까지 7.7m이다. 널방은 연화문전·문자전 등으로 쌓여진 단실묘로 평면 4.2m×2.72m의 크기인데 북으로 축선을 둔다.
천장은 아치를 성하고 바닥면으로부터의 최고값은 2.93m이다. 벽면에는 제6호분과 똑같은 모양의 소감과 그 아래에 연자창 모양으로 된 것을 북쪽 벽에 1개 동 ·서벽에 각각 2개를 만들고 각 감내에는 등잔이 들어간다. 출토된 유물은 백제고분으로서 전례없을 정도로 풍부하고 화려하다.
널길에서 발견된 한 개의 뿔을 가진 철제 석수, 청자육이호 동제의 발 ·시 ·오주전과 함께 이 분묘의 피장자가 무령왕 부 부분을 밝히는 각자석판 2장이 나왔다. 널에는 청자사이병 ·청동용기류 ·철모 ·현금 등의껴묻거리와 금 ·은의 식금구가 달린 흑칠이 칠해진 목관이, 왕의 것은 동쪽에, 왕비의 것은 서쪽에 매치되어 있었다. 붕괴된 관 안에는 목침 ·족좌 ·동경 ·단룡환두의 칼, 울두와 동제의 용기류 화염형관식 ·수식 ·이식 ·과대 ·식리 ·팔찌 등의 꾸미개가 들어 있었다. 또한 왕비의 제3대구치가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