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3인이 그룹이 되어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단체의 성격은 옛 직장 동료와 그 가족이고 여행목적은 구주산(久住山 1,787m)등산과 벳부(別府)에서 온천욕을 하기 위해서였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배로 후쿠오카의 하카다 항에 도착하여 구주산-아소산-벳부 그리고 다시 하카다항에서 부산여객터미널로 돌아오는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현지에 도착하여 버스를 탄 시간이 총 8시간쯤 되는데 한국에서 함께 간 가이드가 이 시간에 일본의 역사와 문화, 전통사회의 생활양식, 한류열풍 그리고 일본 사회의 최근 화제 거리를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이동 중에도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만족스런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1887-1948)가 쓴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이라는 제목의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이웃일본의 전통사회와 문화 그리고 일본민족성의 원형에 대해서 조용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국화와 칼”에서 저자는 일본인들의 행동양식의 고유한 덕목을 “의리(義理)”라고 규정하고 있다. 충과 효는 동아시아의 한국(책에는 언급되지 되지 않았으나 이글을 쓰는 사람이 임의로 추가),일본 그리고 중국이 공유하는 덕목이기 때문에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일본 전통사회의 행동양식의 동기가 되는 의리(義理)는 유교에서 온 것도 아니고 불교에서 유래 된 것도 아닌 일본 특유의 도덕적 행위라고 저자는 규정하고 있다.
저자는 의리를 다시 “세상에 대한 의리”와 “이름에 대한 의리”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대한 의리:
주군에 대한 의무.
친족에 대한 의무.
타인에 대한 의무.
먼 친척에 대한 의무.
2. 이름에 대한 의리:
타인으로부터 모욕이나 비난을 받았을 때 그 오명을 “씻어낼” 낼 의무.
자신이 전문으로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 실패나 무지를 인정하지 않을 의무.
일본식 예의에 따라야 할 의무. 예를 들면 모든 예의범절을 지킬 것. 신분에 어울리는 생활을 할 것. 감정을 함부로 표출하지 말 것 등.
오래전(1946년)에 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의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하여 주위사람으로부터 멸시당하고 소외되는 것이 일본사회의 분위기라고 주장하였다. 또 저자는 의리의 속성이 비록 신분이 높아 질 수 록 점차 무거워 지기는 하지만 신분의 고저와 상관없이 사회 모든 계급을 관통하는 공통된 덕목이라고 설명하여 의리를 무사정신의 전유물로 보는 견해를 평론가들의 창작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서구화의 물결 속에 전통문화가 해체 되어 가고 있는 지금 일본의 신세대들은 생활 속에서 의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있는지? 또한 구세대 일본인들도 아직까지 의리의 크기를 자존심의 크기로 생각할 만큼 생활원리로 받들고 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베네딕트는 도덕의 절대적 표준을 역설하며 양심의 가책에 기대하는 서구사회는 죄의식의 문화(Guilt Culture)라고 부르는 한편, 제시된 선행의 푯말을 따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체면을 잃어버린 것을 부끄러워하는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를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라고 규정하고 있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은 생활 속에서 수치심에 동반되는 개인적인 강렬한 번민의 감정을 도덕체계의 기초적인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수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어떤 경우에는 “유덕한 사람”, 때로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수치심은 서양윤리에서 죄를 피하는 것과 동일한 권위를 갖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베네딕트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수치심을 윤리의 원동력으로 하는 문화의 시원은 한국의 선비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의리”가 일본인 행동의 고유한 덕목이라면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즉 선비정신은 한국인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이자 고유한 한국인의 정신 유산이다.
논어 자로(子路) 편 에 제자인 자공이 스승인 공자께 선비의 자격에 대해서 물었을 때 스승이 대답한 내용을 축약하면 아래와 같다:
최상급의 선비는 “행동함에 부끄러움을 알며,...”
그다음 급은 “친척들이 효자라고 칭하며,...”
그다음 급은 “말이 반드시 믿음직스러우며...”
오늘날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아! 동량이 적은 인간들이니 축에 끼우기에도 족하지 않다.”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대해서 맹자 진심 상(盡心 上)에서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임기응변으로 계교를 부리는 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쓸 곳이 없다.... 부끄러워 할 것이 없는 것이 남보다 못하다면 무엇이 남보다 나은 것이 있겠는가?”
그러기에 대검찰청에 소환을 받고 출두하는 전직 고관대작들은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들 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통상 이렇게 말한다. “조금도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 검찰 심문에 성실히 임하여 진실을 밝히겠다. 운운..”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이 420억 원의 비자금이 더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노 전대통령이 “자신의 동의 없이 맡긴 재산을 처분했다”며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회장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 했다고 한다. 노전대통령측이 이번에 수사를 요청한 것은 미납추징금(대법원 인정 추징금중 미납분 231억 원)을 내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뉴스 A”가 전하는 속사정에 의하면 노전대통령의 외아들인 노재현 씨가 신전 회장의 맏딸인 신정화씨와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재산 분할 문제로 갈등이 커지자 수사요청에 나섰다는 설을 제기했다.
노전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진정서를 접하고 검찰이 추가 비자금 수사에 착수 했다는 보도를 듣고 필자와 같이 평범한 시민이 문득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내 안에 선비정신의 유전자가 살아 숨 쉬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조선의 선비정신은 수치를 아는 마음 즉 염치가 내면 윤리의 기조로 작동하여 이기적인 동기로 범하고 싶은 파렴치한 행동의 유혹을 억지하며 스스로 품격과 체통을 유지한 윤리적인 삶의 뿌리가 아닌가 싶다.
신문을 펼치면 대통령을 꿈꾸는 잠룡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차기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무엇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부끄러움을 아는 깨끗한 참모들을 발탁하여 뒤집힌 세상을 바로 잡을 비전을 펼쳐 보이며 유권자를 감화 시켜야 할 것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얌체는 “얌치가 없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고, 얌치는 염치를 얕잡아 이르는 뜻으로 많이 쓰인 다.” 라고 적혀 있다. 염치는 더불어 사는 건강한 공동생활에서 필수 불가결한 덕목이다. 염치가 없는 사람은 가치판단의 기준이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 속에 주관적으로 형성되어 독선으로 흐르기 쉽다. 때문에 자신만이 온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염치에서 봉사정신이 나오고 타인과 더불어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공생정신이 발원 한다.
선비는 책을 읽는 사람이기 전에 건전한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파렴치한 행동을 스스로 억지하고 법으로 강제 할 수 없는 관습이나 규범을 지키며 덕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염치는 전통사회의 윤리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사회적 정서이며 계승하여야 할 정신문화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양극화의 심화로 갈등 해소와 사회통합이 절실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바라건대 절제와 극기 그리고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한국의 선비정신이 동양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덕목으로 생활 속에 정착하여 갈등해소와 치유 궁극적으로 뒤집어진 공동체 윤리를 본래 모습으로 복원 하는데 이바지하기를 기대해 본다.
뻔뻔함과 무례함이 득세하는 세상에 염치를 말하는 것이 어리석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염치의 복원을 위하여 어른들이 본분과 도리를 다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 줄 최고의 정신 유산이기 때문이다. 염치야 말로 한국적인 공생정신의 상징이다.
When a stupid man is doing something he is ashamed of, he always declares that it is his duty. George Bernard Shaw(1835-1950) 바보가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을 저지를 때에는 통상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선언한다. 조지 버나드 쇼.(1835-1950)
Glory built on selfish principles is shame and guilt. William Cowper(1731-1800) 이기적인 원칙위에 쌓아 올린 영광은 수치이고 죄이다. 영국시인 윌리엄 카우퍼(1731-1800)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