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1. 지난 1915년, 강원도 통천군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정주영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하려고, 가출했다가 붙잡혀 오기를 반복한 끝에 1937년 경일상회라는 미곡상을 차릴 수 있었다. 이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도전 정신으로 한국 산업화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정주영 회장은 건설로 시작해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중공업을 국내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킨 다음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 철강이 제조업 왕국의 마지막 꿈이었다. 그러나 일관제철소 프로젝트는 번번이 정부의 반대로 좌절됐다.
하지만 지난 1월 5일, 정주영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은 아들 몽구 회장에 의해 실현됐다. 충남 당진에 위치한 일관제철소인 현대제철 용광로가 이날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대제철 건설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현장에 내려가 건설 현장을 지휘했다. 공사 막바지에는 아예 공사 현장에 잠자리를 잡고 현장에 출근할 정도였다. 용광로에 처음으로 불을 지피는 화입식(火入式)을 앞두고 혹시 지각할까 봐 하루 먼저 현장에 내려갔을 정도로 신경을 썼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숙원 사업을 잘 끝내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2. 고(故) 최종현 SK 그룹 회장은 1929년 경기도 수원시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고 귀국했다.
선경직물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1973년 선경그룹(SK 그룹 전신) 창업주 최종건 회장이 세상을 뜨자 그룹을 맡았다. 석유파동으로 인한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대한석유공사(SK에너지)와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을 사들여 그룹의 양대 성장동력을 새롭게 마련했다.
그는 '도전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창업에 도전하라는 기업가 정신을 설파했다. 최종현 회장은 1998년 폐암으로 투병하면서 "내가 죽으면 화장하고, 훌륭한 장례문화 개선에 앞장서달라"고 유언했다. 이 유언은 12년 만인 지난 1월 12일에 실현됐다.
아들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 공원에 500억원을 들여 장례문화센터를 만들었다. 최태원 회장은 오래전 청계산 인근에서 화장터 부지를 찾았지만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보는 사회적 인식과 입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러다 2007년 말 세종시에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최태원 회장은 "정성스럽게 조상을 모시고, 후손에게 미래가 담긴 자연환경을 지키고 가꿀 수 있게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실현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3. 오는 2월 12일은 삼성그룹을 만든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날이다.
그는 1910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36년 마산에 협동정미소를 세워 사업을 시작했다.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대구시내에서 주로 청과물과 건어물을 사고팔던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이병철 회장은 '고객 제일주의'와 '기술과 품질의 일등주의'를 내세워 한국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가 설립한 회사는 아들 이건희 회장(삼성 그룹), 딸인 이인희 고문(한솔 그룹)과 이명희 명예회장(신세계 그룹), 장손인 이재현 회장(CJ 그룹)이 나눠 맡아서 국내 최고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커 나가고 있다.
가업을 물려받은 2세·3세 기업인들은 창업주의 도전 정신을 이어받아 끝없는 혁신으로 성장의 미래를 계속 열어가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많은 젊은이들이 제2의 이병철 정주영을 꿈꾸며 창업에 과감히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1/18일자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