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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주황 새를 쫓아 얼음 비탈을 오르다 보니
구 본 황
우리산악회의 가족 여행 시작과 변화
2013년 2월 12~13일의 우리산악회 제8차 가족여행은 김영철 선생님이 주도하여 새 멤버(김영철 선생님<창덕여고> 부부, 김석 선생님<당곡고>, 우리 부부)로 설날(2월 10일) 직후 새로이 즐거운 추억을 쌓고 돌아왔다.
되돌아보면 우리산악회의 가족여행은 2004년 8월 14~15일 시작되었는데, 이번처럼 동해안 여행이었으나, 임경유 선생님이 주도하였고, 참여한 분도 임경유, 이규영, 차영훈 세 홀아비(?) 선생님들과 기우현 선생님 부부, 우리 부부가 함께 하였었다.
포항, 울진, 영월 지역을 여행하였는데,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는 장면은, 이 선생님과 내가 내연산을 종주하면서 길을 잃고 소낙비를 만나 실종되어 산악구조요원들이 출동한 것과, 월송정 해변의 푸른 동해 물결에 사모님들과 옷을 입은 채 뛰어들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사건인데, 다행히 그 자세한 내용은 <동해의 싱그러운 물살에 몸과 마음을 싣고>에 기록되어 있다.
6차 여행까지는 임경유 선생님이 주도하였고, <공비산악회> 계통의 선생님들이 주요 멤버이었으나, 올해 이루어진 7차 여행부터는 김영철 선생님이 대장이 되어 인도하였고, <당산대형> 계통의 선생님들이 참여하여 멋진 추억을 남겼으니, 세월의 무게가 새삼 느껴진다.
5차 여행까지는 다양한 명찰을 달고 여행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6~7차 여행은 글에 담지 못하여 여기에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6차 가족여행의 추억들
2011년 12월 26~30일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퇴임한 장일원 교장 선생님, 임경유 ․ 류균상 선생님(송파공고), 기우현 선생님(서초고) 부부와 함께, 기 선생님 선친의 <고적답사기>를 따라 여행하였는데, 충남 금산, 부여, 공주 지역, 전북 완주, 전주 지역, 전남 화순, 장흥, 강진, 순천, 구례 지역을 둘러보았다.
여행 기간 중 눈은 내리지 않았으나, 엄동설한이라 두꺼운 옷을 겹쳐 입고, 아이젠까지 착용하면서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며 힘들게 답사하였다.
완주 지역에 있는 화암사를 살펴보고 돌아가는 길에, 절 입구 어귀에 있는 상운 기사 식당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맛난 백반에 가자미, 무 요리가 나오고, 밥이 부족하다고 하니, 양푼 째 덧밥을 주고 누룽지까지 대접 받았던 추억이 그립기만 하다.
화순 지역 쌍봉사 답사에서는 3층 목탑을 둘러보고, <꽃 보다 아름다운 승탑>을 찾아가는 길에 발견한 눈 속에 떨어진 홍시 감의 달콤한 맛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강진 지역에서는 백련사를 찾았을 때, 만경다설에서 시루에 쪄서 우려낸 떡차를 마시면서 젊은 일담 스님과 남도 불교문화를 토론하였던 것과 스님의 인도로 맛난 동치미와 남도의 김이 어우러진 감칠맛나는 점심 공양을 받았던 기억도 새롭다.
순천 지역에서는 신성리 왜성을 답사하였는데, 모서리 상단까지 깔끔히 마무리한 견고한 구조물을 만져보면서, 이 성을 쌓으면서 시달렸을 조선 백성의 신음 소리를 느낄 수 있었고, 이 고장 문화재와 가옥이 무참히 파괴되는 참상이 눈앞에 선연히 떠올랐다.
또한 선암사를 찾았을 때는 교장 선생님이 스님에게 부탁하여,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선방 후원에 자리 잡고 있는 4굽이로 절묘하게 돌, 나무로 이어 만든 수곽(물길)을 살펴볼 수 있었고, 추사 글씨가 반겨주는 무량수각과 부처님을 향해 참배하는 듯 엎드린 와송(누운 소나무)을 배경으로 웅장한 조계산 장군봉을 우러러 본 모습도 언제나 마음을 즐겁게 한다.
마지막으로 귀경하는 길에 고향인 부여 지역 능산리 고분을 찾았을 때는 오가야 마사코라는 일본 출신 미녀 해설사의 낭랑한 해설을 들었는데, 통일교를 통하여 부여 출신 남자와 10년 전 결혼하여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성명은 일본 것을 고수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국제화 시대에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교류 모델을 발견한 것 같아서 반가웠던 기억도 되돌아보면 미소 짓게 한다.
7차 가족여행을 돌아보며
2012년 7월 25~27일,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김대성 선생님(여의도고) 부부, 김영철 선생님 부부, 우리 부부 등 6명이 참석하였고, 처음으로 김영철 선생님이 주도하여 제주도를 다녀왔다.
저가 항공사인 T-way 항공을 이용하고, 제주도 현지에서는 롯데관광을 통한 패키지여행을 하였다.
여행 기간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장마가 지난 더운 시기라서 불볕더위와 씨름하면서 그늘을 찾아다녀야 했다.
첫날에는 저녁 식사로 맛본 제주도 특유의 흑돼지 고기가 입맛을 돋우었으나, 교육과정 연수로 제주도에 들른 기우현 선생님이 합류하여 찾은 노래연습장(거리에 흔한 노래텔은 유흥주점이라서 얼른 나왔음)은 좁은 공간에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야간 찜통더위 속에 시달렸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26일에는 작은 농장에 들렀는데, 상품으로 내놓은 초록 색 작은 귤이 의외에도 상큼한 맛을 자랑하여 놀랐었고, 더마 파크에서는 몽골 사람들로 이루어진 기마집단이 생생하게 징기스칸 시절의 몽골 역사를 재현하여, 감명을 받았었다.
마지막 날에는 오전에 한라산 중 산간지대에 위치한 에코 랜드 기차 여행이 마음을 상쾌하게 하여주었다.
깊은 산간지대라서 바위와 수목이 자연스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으며, 인공 호수를 가로지르는 산책길을 걷다가 동화 나라처럼 앙증맞게 꾸며놓은 예쁜 그네 위에서, 우리 팀 세 쌍은 번갈아 엉덩이를 걸치고 부부간의 사랑을 확인하곤 하였다.
또한 오후에는 성산 일출봉 해변에서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에 발등을 담그곤 망중한을 즐겼고, 섭지코지 언덕을 산책하면서 하얀 등대와 성당을 배경으로 신혼 시절의 낭만을 꿈꾸는 한 조각 멋진 추억을 만들기도 하였었다.
반년 만에 만난 기쁨에 웃음꽃이 잇달아 피어나다
2월 12일(화), 아내를 따라 음식이 든 가방과 옷이 가득 찬 배낭을 메고 아파트 문을 나섰다.
야탑역을 경유하여 약속 시간인 10시가 안되어 수서역 6번 출구를 나오니, 뜻밖에 배낭을 멘 푸른 등산복 차림의 김석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도, 이번 가족여행 멤버가 누구누구일까 새삼 궁금하여졌다.
10시가 조금 지나니, <서부의 멋쟁이 총잡이> 같은 호남아 김영철 선생님이 사모님을 모시고 마차(봉고차)를 몰고 나타나자, 7차 여행 후 반년 만에 해후한 아내와 김 사모님(김영철 선생님 사모님)은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끊임없이 회포를 풀어 제치는데, 다른 우리산악회원들은 학교사정, 가정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다는 대장님(김영철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아쉬운 마음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명절 후 장 거리에서 봉평 본토박이 음식으로
맛 기행을 시작하다
설 지난 평일이라서 경부고속도와 영동고속도로를 막힘없이 질주하였는데, 문막 휴게소를 지나 원주가 가까워오자 치악산 봉우리들이 삼국지,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처럼 장엄한 기상을 뽐내며 달려오는데, 대장님은 <이효석 문학의 본고장>인 봉평장을 구경하자며 마차 몰이의 채찍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적당히 시장기가 느껴지는 12시 3분, 장평IC에서 말머리를 돌려, 봉평장으로 향하였는데, 설 연휴 직후라 파업한 것처럼 썰렁하기만 하였다.
역시 시골에서는 <설 명절이 얼마나 대단한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장 거리를 걷다가, 12시 20분 경 김 사모님이 추천하는 <남촌>에 들러 이 고장 음식인 메밀막국수, 칼국수, 전병 등 메밀 시리즈와 보기에도 침이 고이는 옥수수 막걸리로 여행 첫날의 맛 기행을 시작하였다.
푸짐한 음식이 들어가니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이번 여행의 총무 감투는 내가 맡겠다고 선언하고, 우선 1인당 5만원 씩 회비를 걷었다.
(대장님 부부는 주유비를 별도로 부담하여, 5만원만 받음)
정동진 모래시계 아래에서 삶의 자세를 반성하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대장님이 너무 일찍 본부(하조대 아파트)에 도착할 것 같다면서, 가고 싶은 장소가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가 정동진에 아직 못 가본 것이 떠올라서, 얼른 정동진을 추천하였다.
2시 5분, 남강릉IC에서 나와 지방도를 경유하여, 트럭에 실려 오르내리곤 했던, 군 시절의 추억이 깃든 7번 국도를 달리는데, 도로 주변 모래 언덕에는, 그 시절의 그리운 얼굴들인, 붉은 가지와 푸른 이파리가 빛나는 <미끈한 청년, 숙녀>소나무들이 오늘도 앞 다투어 마중 나와서 반갑기만 하였다.
2시 30분 경 마차가 좁은 해안 길을 꼬불꼬불 달려서 정동진(서울에서 동쪽 방향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나, 동위도로는 도봉산 부근이니, 한강 부근을 서울 지역 정동향으로 가정한다면 동해시가 정동진이 되어야 할 듯)에 도착하니, 새삼 마차를 몰고 이곳까지 온 대장님께 미안한 마음이 일어나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모래사장 위 언덕에는 푸른 바탕에 멋진 그림으로 치장한 관광열차가 수시로 왕래하지 않는가!
사모님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마치 새해 일출맞이 관광열차를 몰고 온 듯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광지가 되어 인공 구조물이 많이 설치된 탓인지, 눈에 띄게 모래사장이 바닷물에 푹푹 패여 나가 있어서 안타까웠다.
정동진의 자랑, 높다란 산꼭대기에 크루즈선이 걸린 듯 기묘한 스카이라인이 돋보이는, 썬크루즈 쪽으로 찬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발길을 옮기다 보니, 거대한 모래시계가 우리 일행을 반겨주는 것이었다.
아직 2월 중순이라 천정에 비해 바닥에 떨어진 모래 알갱이는 소량이었으나 그 앞에 서서 촬영하니, <인생이란 모래시계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삶의 자세를 반성하였는데, 안타깝게도 내 스마트폰은 갑자기 먹통이 되어 이후 전혀 사용 불능이 되고 말았다.
추위를 피해 수상가옥으로 꾸며진 찻집(요트 계류장이기도 함)으로 들어가니, 유리 바닥 아래로는 파도가 찰랑이고 전시관에는 멋진 범선 등 다양한 공예품들이 눈길을 잡아끌었으나, 우리 일행은 원활한 일정을 위해서 정동진 전선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하고 썰물처럼 찻집을 빠져나갔다.
등명약수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새롭게 되돌아보고
3시 30분쯤 <등명약수>로 유명한 괘방산 낙가사를 향하여 마차는 산길을 재촉하였다.
유명한 약수 물은 절 입구에 있었는데, 명성과는 다르게 <철 성분이 짙어서 과다복용은 해로울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어서, 신나게 약수를 권하던 김석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머쓱해하시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보약, 명언이라도 지나치면 자연스런 우주의 운행에 거스르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이 산중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독실한 신자인 김석 선생님이 참배하고 나오시길 기다리면서, 곳곳에 얼음판이 도사리고 있는 경내를 소요하는데, 안내판에 <고대 자장율사가 개창한 이래 고려 시대까지 번창하였으나, 조선 시대 억불정책에 밀려서 폐사되었다가 50년대에 중창되었고, 이 산에서 공부한 선비들이 다수 급제하였다>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전근대 시대에도 <시험>이 얼마나 사회 계층 상승의 중요한 통로이었는지 실감이 나고, 입시, 고시 열풍의 유래가 유구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동해안 여행의 추억이 깃든 주문진 항구에서
펄떡이는 생선을 흥정하고, 38선을 통과하다
4시 40분 경, 지난 날 아내와 이곳을 찾아와 하염없이 걸었던 동해안 여행의 추억이 어린 주문진 항에 도착하여, 마차는 하늘 집(주차 빌딩)에 세워놓고, 미로처럼 상가가 얽혀 있는 수산시장을 찾았다.
김 사모님과 오랫동안 거래한 단골집에 가서 5만 8천원을 주고, 펄떡이는 모듬 횟 거리 생선을 사서 손질한 다음, 다시 7번 국도를 달리니 양양군 경내에 들어서고,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애항이 손을 내미는가 했더니, 누운 관세음보살 바위로 유명한 휴휴암이 미소를 짓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38선 기념비가 30여년 세월을 가로질러, 비석 앞에서 도열하여 휴식을 취하였던 신병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는데, 새삼 지난 해 입대한 막내아들이 눈앞에 겹쳐 떠올랐다.
스마트폰으로 1000리를 가로질러 음식 배달을 하다
하조대 안내판을 지나쳐 솔 숲길을 지나치자, 아내가 예전 숙자씨와의 동해안 여행 추억을 들려주는데, 왼편으로 크게 <심미>라고 이름표를 붙인 아파트가 <오늘의 목적지가 바로 이곳이다!>라고 목메어 부르고 있지 않는가!
이 아파트는 대장님 친구 소유로, 거주하지는 않고 여행할 때 사용하기 때문에, 친한 이들이 미리 요청하면 빌려준다고 하는데, 마침 이번 여행 기간은 천시가 잘 맞아서, 우리산악회 친구들이 혜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배낭과 장흥정 꾸러미를 둘러메고 들어서니,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처음에는 썰렁하였으나, 보일러가 본격적으로 가동하자 뜨끈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고, 선생님들이 방 정리를 하는 사이, 사모님들은 익숙한 솜씨로 맛난 회 요리를 준비하였다.
하나로 마트에서 사온 오대산 찰옥수수 막걸리와 함께 푸짐한 모듬회 요리가 어우러지고, 거기에 집에서 명절 음식으로 직접 만든 각종 전과 맛난 갓 김치, 상큼한 매실 장아찌가 제각기 <내가 최고 요리다!>하고 뽐내니, 임금님이 부러워할 진수성찬이 마련된 것이 아니겠는가!
대장님과 내가 이구동성으로 <이번 여행에 참석 못한 김대성, 기우현, 권용태 선생님께 이 음식들을 촬영하여 보내드려서, 침을 흘리게 하자!>하고 제안하니, 김석 선생님은 즉각 스마트폰으로 1000리를 가로질러 음식 배달 수고를 하여주셨다.
하조대 언덕 위에 힘차게 솟구치는 일출을 보고,
대추 꽃이 귀여운 현미 찹쌀 부꾸미 맛도 보고
2월 13일(수), 어제 밤늦게까지 강원도 곡주를 들며 <국민오락>고돌이를 즐긴 탓에 7시 30분쯤에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거실에 나와 보니 마침 하조대 언덕 위로 힘차게 <2월의 해>가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선명하고 찬란한 모습이라, 아내가 창문을 열고 감탄사를 터뜨리자, <우리산악회의 사진 전문 기자>인 김석 선생님이 그 고운 모습을 놓칠세라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일정이라 귀경 시간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서, 선생님들은 아침 식사에 앞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청소를 마친 다음 배낭꾸리기까지 완료하였다.
사모님들이 정성껏 서울과 분당에서 준비해온 음식이, 노란 강원도 곡주와 어울리니, 어제 저녁 보다 결코 손색이 없는 아침상이 마련되어 방안 가득 웃음꽃이 활짝 피는 것이었다.
특히 현미 찹쌀 부꾸미는 맛도 맛이려니와 가운데에 대추, 호두 등을 박아 넣은 모습이 귀여워서 많은 칭찬을 받았다.
척산 온천으로 발길을 돌린 아내와 작별하고,
두 번의 통행료를 지불한 다음 설악산에 입장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를 모았던 설악산 울산바위 등정을 위해 9시쯤, 일행은 배낭을 가볍게 꾸리고 씩씩하게 마차에 올랐는데, 관절 통증으로 장도에 오를 수 없는 아내는, 지난 날 2번 씩 여독을 달랜 좋은 추억이 있는 척산 온천에 가겠다고 제안하며 속초에 사는 혜경씨(이혜경, <맛있는 오징어 물회도 먹고, 군 시절의 추억도 더듬고> 참조)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9시 24분, 목우재를 통과하여 지난 동해안 여행의 추억이 담겨 있는 척산 온천에 아내를 내려주고 나서(<여왕과 함께 아침 식사를> 참조), 4용사는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리인이 칼 같이 주차료를 징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33분에 설악동 매표소를 통과할 때도 사찰 입장료의 명목으로 1인당 3500원씩이나 설악산 통행료를 별도로 징수하여 안타까웠다.
2009년 공룡능선 산행 때처럼, 임경유 선생님을 흉내 내어,
“이 차엔 노인 세분이 타고 계시고(김석 선생님, 대장님, 내가 경로 우대 노인 행세를 한다), 애기 하나가 타고 있으니(김 사모님이 졸지 에 여고생이 된다), 만원만 받으시지요.”
라고 강변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세 번째 공룡을 다녀와서> 참조)
설악동 소공원의 정경
설악동 너른 공터에는 가이드가 깃발을 들고 인솔하는 외국 단체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곳은 눈 쌓인 멋진 산과 바다가 함께 하고 있으니, 스키장과 연계하여 관광 인프라를 잘 갖추면 국부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었다.
어제와는 완연히 다른, 청명하기 이를 데 없고 바람 한 점 없는 이른 봄날 같은 날씨라서, 웅장한 화채능선으로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를 바라보니, 지난 날 권금성에 올랐다가 빗속에서 철수한 추억이 떠올라, 아내가 이곳까지 왔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또한 세존봉을 비롯한 공룡능선 줄기, 가지가 지난 날 우리산악회의 공룡 산행 추억을 일깨워주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지 않은가!
작은 주황 새를 쫓아 얼음 비탈을 오르다 보니
그러나 설악동 삼거리에서 비선대를 거쳐 마등령으로 오르던 왼편 코스를 오늘은 사양하고, 오른 쪽으로 흔들바위, 울산바위를 향하여 발길을 옮기는데, 김 사모님은 일행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며 먼저 깡총깡총 앞서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달마봉 기슭으로 잔잔한 오르막이 이어지는 길 전체가 온통 얼음판이라 몹시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걱정을 비웃듯이 사모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다람쥐> 수준을 넘어서, <작은 주황 새>(사모님이 주황색 등산 재킷을 착용)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것이었다.
아이젠도 착용하지 않고 빙판 길을 내닫는 사모님이 염려되어서 속도를 높이다 보니 땀이 흥건히 배어, 선생님들은 방한셔츠와 목도리를 벗고 때 아닌 산악 마라톤 경주를 벌이게 되었는데, 좀처럼 사모님과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아서 놀랍기만 하였다.
결국 김석 선생님은 탈락하고, 얼음 비탈이 무섭게 위협하는 흔들바위, 계조암 구간을 지나면서 시계를 보니 10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어서, 1시간 30분 거리를 불과 1시간에 주파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울산바위를 오르면서 눈부시게 빛나는
대청봉과 공룡능선을 바라보다
작년 11월 30일부터, 울산바위를 오르는 코스가 바뀌어졌다.
1985년에 계조암을 지나 200m 지점에 직선 코스로 철 계단을 놓아서 오르도록 하였는데, 너무 경사가 급하고 낡아 등반 사고가 끊이지 않아서 <공포의 808 철 계단>이라고 불리었었다.
결국 철 계단은 올해 5월까지 철거하기로 하고, 왼쪽으로 우회하는 코스로, 나무 계단과 돌길로 널찍하고 전망대, 쉼터까지 조성하여 새 길을 낸 것이다.
계조암을 지나면서부터 산행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역시 흔들바위 코스까지가 일반인들의 산행 코스인 것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새로운 등산로가 마중하는 울산바위 입구에서야 우리의 <작은 주황 새>와 무사히 도착한 것을 서로 기뻐할 수 있었고, 기념으로 사모님은 설악산의 웅장한 자태를 배경으로, 스마트폰을 꺼내서 모습을 담아주셨다.
이제 충분히 운동이 되었다면서 먼저 등정하기를 권하는 사모님의 요청에 밀려서 하릴없이 혼자 뚜벅뚜벅 계단 길을 감돌아 오르다보니, 구름 한 조각이라도 나타나면 도르르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파른 하늘 아래 기기묘묘한 바위들과 소나무가 길손을 반기는 것이었다.
거인 바위 왼쪽 어깨 너머로는 화채봉이 아우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줄지어 서 있고, 중앙에는 대청봉과 작은 공을 머리에 인 중청봉이 빛나는 은색 도포를 걸치고 이곳 최고 영주인 것을 뽐내고 있는데, 지친 산행객이 휴식을 탐하는 오른 쪽 등산로 건너편으로는 거대한 동양화 벽화 같은 황철봉 능선 줄기와 공룡 능선 가지들이 <설악산의 진면목>을 살며시 보여주어서, 차마 발걸음을 떼어놓기가 힘겨웠다.
울산바위 정상에서 동해를 바라보다
울산바위 등정 10분 전, 5분 전 표지를 지나 정상(등산로로 오르는 정상 쉼터의 높이는 837m이고, 오를 수는 없으나 쉼터에서 북쪽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진정한 정상, 수정봉은 876m 높이)에 올라서니, 11시쯤 되었다.
작은 주황 새를 쫓다 보니, 소공원에서 울산바위까지 3.8km 2시간 20분 코스를 1시간 30분도 못되어 오른 셈이다.
뒤 이어 오른 대장님, 사모님과 멋진 포즈로 촬영하다 보니, 이번 가족여행의 또 한 가지 보람을 만끽하게 되는데, 동해 바다 쪽으로는 지난 날 울산바위를 우러러보았던 미시령 고개와 아내와 거닐었던 영랑호와 청초호가 손짓하고 있어서, 저 아래 척산 온천에서 울산 바위를 바라보고 있을 아내 모습이 눈에 잡힐 것만 같았다.
사모님 스마트폰으로 다시 감격적인 여러 모습을 담아내고, 부부가 운영하는 쉼터 찻집에서 입맛대로 생강차, 칡차, 꿀 대추차를 시켜서(아저씨가 촬영해준 대가로, 1잔에 5000원 씩 고가의 수고료 지불) 점점 식어가는 체온을 달래주었다.
30분이 지나서야 김석 선생님이 도착하여 다시 아저씨께 촬영을 부탁한 다음, 아직 차도 마시지 못한 선생님과 작별을 하고 하산 길에 올랐는데, 사모님은 얼음비탈을 오를 때와는 달리 먼저 내려갈 것을 권하는 것이었다.
해적 소굴에 찾아가서 <형님!>이라고 인사하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하산한 김석 선생님을 모시고 1시 40분쯤 설악동을 출발하면서 아내와 통화하니, 아내는 혜경씨를 만나 온천 부근에 있는 설악 문화 회관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결국 아내와는 우리의 본거지인 하조대 심미아파트에서 만나기로 하고, 다시 하조대를 향해 마차를 몰아 남진 행군을 하였다.
하조대에 도착하여 마차가 해변 가에 걸음을 멈추었는데, 뜻밖에 울창한 송림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백사장이 아득히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여기가 유명한 하조대 해수욕장인데, 길이가 4km에 이르고, 수심도 얕은데다가, 군데군데 맑은 시냇물이 흘러서 해수욕장으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대장님은 백사장 입구에 총을 든 해적 모형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식당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해적 보다는 인상이 다소 부드러운 사나이에게 <형님!>이라고 인사를 하지 않는가!
하광정리에 있는 하조대 횟집이 기사문리에 있을 때부터 5년 이상 단골로 찾다 보니, 사장님 내외와는 안팎으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여서, 부러운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이었다.
회를 즐겨하지 않는 사모님을 제외하고, 아내 친구들과의 동해안 여행 추억의 음식-오징어 물회를 1인당 1만원 씩 드리고 시켰는데, 엄청나게 푸짐한 양이라서 울산바위 등정에 소모한 에너지를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부귀와 고난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친구들과 이 순간의 추억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식사 후에 이번 여행 마지막 추억을 장식할 하조대 언덕을 향해 3시쯤 마차를 몰아 해안 길을 달려갔다.
해안 초소가 위치한 지역이라 오후 5시까지만 개방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고, 철조망이 연결된 출입문을 통과하여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하조대 언덕에는 제주도 섭지코지 언덕 같은 하얀 등대와 <하조대>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육각형의 정자가 좌우로 기암괴석과 바위섬들을 거느리고 길손들을 반기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곳을 한번 거친 이는 저절로 딴사람이 되고 10년이 지나도 그 얼굴에 산수자연의 기상이 서려 있게 된다고 기록될 정도로 경치가 수려한 지역이다. (2009년 명승 제68호로 지정)
하씨 집안의 총각과 조씨 집안의 처녀 사이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에서 하조대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조선 초에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숨어산 곳이어서 명칭이 유래하였다고도 하는데, 하륜과 조준이 직접 새겼다는 각석이 길가에서 발길을 붙드는 것이었다.
하륜과 조준은 태조와 태종을 도와 건국의 위업을 달성하고 부귀공명을 달성한 당대 대표적인 인물들인데, 말년에 산 넘고 물 건너 이곳까지 와서 은거했다면, 얼마나 칼날 같은 고난을 겪었을까?
그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면, 자신들보다 우리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었다.
하조대에 부부 원정 도박단이 출현했다
4시 쯤 심미아파트에 마차가 얼굴을 내밀자, 흰색 망아지(혜경씨의 승용차) 한 마리가 아쉬운 듯 말머리를 돌리는 것이었다.
묻지 않아도 수줍은 혜경씨가 우리 일행이 나타나자 발길을 돌린 것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아내를 위해 학교 일, 교회 일을 제치고 설악산까지 찾아와 식사, 차 대접을 하고나서 하조대까지 배웅해준 따스한 우정이 가슴을 훈훈하게 하여주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다시 국민오락을 하였는데, 아내가 사건을 만들면 내가 몽땅 수확하곤 하니, <부익부 빈익빈>, 경제 양극화에 대한 원성이 자자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장님은 <부부 원정 도박단>에 철저히 당했다며, 나는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강청하는 것이었다.
한계령 고개 위에서 새로운 꿈을 설계하다
5시에, 우리산악회 동해안 원정대는 드디어 본거지 철수를 단행하고, 동해고소도로 속초 방면 종점을 향해 북서진하다가, 44번 국도로 갈아타고 한계령으로 기수를 돌렸다.
아내는 호랑이(호랑이가 그려진 아내의 승용차)를 몰고 동해안 여행을 하고 싶은 의욕에 불타서, 대장님의 마차 몰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발 920m나 되는 한계령 고갯길을 꼬불꼬불 올라가자, 이곳은 도전할 엄두를 낼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5시 25분쯤, 고개 마루에 마차를 세우고, 뭍 신선들이 손짓하고 있을 기묘한 봉우리들과 고갯길을 내려다보니, 지난 추억이 몰려오고 새로운 산행에 대한 꿈이 아스라이 눈가에 맴도는 것이었다.
( 2013년 2월 26일 적음 )
※ 제8차 우리산악회 가족여행을 주도하고, 숙소 잡기와 운전을 전담하신 김영철 선생님과 사모님께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 글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을 보내주신 김석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댓글 동해안 정동진 동명사 설악산 하조대 등 방학 중에 여행하면서 느낀 감회를 소상하게 기록하셔서 고맙습니다. 소중한 글을 읽으면서 기억을 되살리게 되 새로운 즐거움에 빠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여행하게 되어 무척 기뻤고,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으로 여행기를 장식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재삼 감사드립니다^^*
몇 차례 개인사정으로 즐거운 동참에 빠지니 한편으로 서운합니다만 또 한편으로 선생님의 푸짐한 글과 사진을 대하니 흐뭇하기도 합니다. 정말 빠른 시간에 정리하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보람찬 가족 여행을 했던 6차 여행이 다시 한 번 그리워졌습니다^^* 선생님과 다시 여행할 날이 기다려집니다^^*
구선생님! 사진과 함께 생생한 후기 올려주시어 고맙습니다. 노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또 멋진 여행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모님과 함께 다녀온 동해안 여행은 오랫동안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과의 즐거운 여행, 산행이 기다려지고, 재삼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