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94장 주 예수 보더 더 귀한 것은 없네(I’d rather have Jesus)
작사 : 레아 밀러((Rhea F. Miller, 1894–1966)
작곡 : 조지 비벌리 셰이(George Beverly Shea, 1909–2013)
작사자 레아 F. 밀러(1894–1966)는 미국의 기독교 시인이며 찬송 작사가입니다. 그녀가 쓴 “I’d Rather Have Jesus”는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복음찬송이 되었습니다. 이 찬송의 핵심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귀하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던 부귀, 명예, 세상적인 성공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신앙적으로 묻는 내용입니다.
작곡자 조지 비벌리 셰이는 20세기 미국 복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단순한 찬송 작곡자가 아니라 복음성가 가수이자 음악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유명한 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의 복음전도 집회에서 오랫동안 찬양을 담당하면서 세계적인 복음성가 가수가 되었습니다.
셰이는 젊은 시절 세상적인 직업과 음악적 성공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기독교 음악과 복음 전파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1943년 부터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의 독창자로 활동하면서 어디를 가든 관례처럼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 복음성가를 불렀다. 그는 2007년에 미주리의 가장 영예로운 메달인 허블(Edwin P. Hubble)메달을 수여 받았다.
해설
1절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수 없네
영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첫 절은 물질적 가치와 그리스도의 가치를 비교합니다.
세상에서 부귀는 상당히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과 재산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사람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그러나 찬송자는 그것이 아무리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귀하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이나 재산 자체가 악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도 부 자체를 무조건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따라서 이 찬송의 고백은
“재물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여기서 찬송의 중심이 단순한 가치관에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이동합니다.
찬송자가 예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단순히 위대한 스승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이사야 53:5
신약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따라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고백의 근거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여기에는 회개와 가치관의 전환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에 종교 하나를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최고 가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세상의 즐거움과 자랑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가장 귀하게 여깁니다.
바울도 자신의 과거의 자랑을 그리스도 앞에서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립보서 3:7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립보서 3:8–9
즉 버림의 목적은 공허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얻는 것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이 부분은 찬송 전체의 절정이자 신앙고백입니다.
“예수 밖에는 없네”라는 표현은 인간에게 참된 구원과 영생을 주실 분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사도행전 4:12
따라서 이 찬송은 결국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구원의 절대성을 고백하는 찬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절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전에 즐기던 세상 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2절에서는 명예와 지위를 다룹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좋은 직책
사회적 명성
학력
성공
사람들의 칭찬
높은 지위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일시적입니다.
사람의 평가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세상의 명예는 죽음 앞에서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영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한복음 5:4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 전에 즐기던 세상 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
여기서는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나타납니다.
과거에 즐겼던 것들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문자적으로 버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더 이상 예수님보다 우선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족도 귀하고, 직업도 귀하고, 재산도 귀하고, 취미도 귀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5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을 가장 큰 계명으로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2:37–38).
3절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맘 변치 않아
3절에서는 행복과 만족을 다룹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행복은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건강할 때 행복하다가 병들면 흔들리고, 재산이 있을 때 만족하다가 잃으면 낙심하고, 사람들이 인정해 줄 때 기뻐하다가 비난받으면 좌절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4
따라서 이 찬송이 말하는 행복은 환경이 만들어 주는 행복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영적인 기쁨이 더 귀하다는 의미입니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않아”
3절의 마지막 부분은 단순한 감상적인 고백이 아니라 신앙의 결단입니다.
그리스도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평안할 때만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이 와도, 핍박이 와도, 손해를 보아도 주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35–36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또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신앙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4:13
따라서 3절의 마지막은 그리스도를 최고의 가치로 삼은 사람의 충성 서약과 같습니다.
결국 이 찬송은 “무엇이 가장 귀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답입니다.
돈보다 예수님,
명예보다 예수님,
행복보다 예수님,
세상의 즐거움보다 예수님,
그리고 생명보다도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