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 출발
걷기 좋은 날씨다.
비 예보는 있는데, 출발할 때 비가 오지 않아 그냥 길을 나선다.
오늘도 넷이서... 박씨 가족같다.
오늘 갈 길이 멀다. 내일 부르고스로 편하게 가기 위해 30km를 가기로 했다.
9:10 에스삐노사 도착
점점 비가 세져서 장비를 갖춘다.
요우꼬와 교장 선생님 무릎 컨디션이 좋지 않다.
가지고 온 무릎 영양제(조인탑)를 나눠 드렸다. 오늘 잘 걸으셔야 할텐데....
아침에 봉균이 어머니께서 선종하셨다는 연랃을 받았다.
가지 못하는 미안함에 국제 전화로 대신한다.
오늘도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고, 또 태어나겠지!
12:00 산 후안데 오르테가 도착
엉청난 산길에다 종일 비가 내려 쉴곳도 마땅치 않았다.
근 세시간을 쉬지 못하고 걸어 왔다.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았던 두 분이 겁나게 잘 걷는다.
약효가 좋은 모양이다. 같이 먹은 나는????
여기서 싸온 점심을 먹는다.
성당이 열려 있어 성무일도를 한다.
겉은 커다란 성당인데, 안에는 조그만 경당같다.
날씨 좋고, 안 추웠으면 좀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다.
기도하고 나면 좋은 일이 생기는데,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3:00 아따쁘에르까 도착
오늘은 기도빨이 안받는 날인가 보다.
힘들게 아따쁘에르까에 도착했다.
마을 앞에 시크한 원시인 사진이 맞이한다.
이곳은 백만년 전 '호모 안테세소르'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진화론에 큰 영향을 주었던 곳이라 한다.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된장 주인장이 점심먹으러 갔다며
3시 반에 문연다고 기다리라는 메모만 남아있다.
알베르게는 괜찮아 보였다. 기다리다가 체크인하고, 정리한 다음, 오늘은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한다.
로그리뇨에서 사 온 라면 네개를 끓여 넷이서 역시 폭풍흡입했다.
7:00 저녁식사
며칠 같이 다닌 박씨 가족과 마지막 저녁식사.
요우꼬도 부르고스에서 다른 친구를 만나기로 했고,
나도 부르고스부터 박씨부자와 떨어지기로 했다.
그래서 마지막 저녁을 근사하게 먹는다.
뜻밖에도 식당에서 돼지고기 찍어 먹으라고 쌈장을 내왔다.
5월부터는 비빔밥도 한단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다.
아침에 봉균이 어머니선종 소식을 듣고, 돌아가신 카타리나 자매님을 위해 기도드리며 걸었다.
그래서 인지 오늘 길이 마치 죽은 후 가는 길 처럼 느껴졌다.
죽어서 가는 길, 황천길, 하늘로 가는 길, 천국에 가는 길이 이런 길이지 않을까?
아버님도 이런 길을 가셨으리라.
많은 동반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상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으로 천천히 가셨겠지!
산소 호흡기를 끼고, 의식이 없으신 아버님은
이 세상의 마지막 숨이 될지도 모르는 거친 숨을 힘겹게 몰아 쉬고 계셨다.
의사는 준비하라고 했다.
첫째 동생이 아버지께 꼭 드릴 말이 있다며, 침대 옆으로 갔다.
"아빠! 아빠 한테 나도 오빠처럼 자랑스러운 딸이었어?
나도 자랑스러웠어? " 그 동안 살면서 얼마나 묻고 싶었을까?
무던히도 참아왔던 말.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꼭 듣고 싶었을 대답.
'그럼 너도 자랑스러운 딸이었지, 사랑스러운 딸이었고.'
하지만 동생은 끝내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
차마 입박으로 내지 못하고 혼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동생이 안스러웠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셨다는 사실에, 그분의 임종에 오열했다.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늘나라 가는 길에서,
끝내 하지 못하셨던 그 대답을 몇 번이고 되뇌이며 길을 가셨을 아버님과 함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그 길을 걷고 있다.
"오늘은 그 어느누가 태어나고, 어느 누가 잠들었소"
만날 이들과 떠날 이들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떠나보내야
삶의 끝자락에 닿을 수 있을까?
첫댓글부모님은 자식이 어떻게 해야 자랑스럽게 느끼실까? 남들보다 잘나보일때 보다는 이 세상에서 나이에 맞는 자신의 몫을 충실히 다할 때가 아닐런지요. 애기때는 웃음으로, 어릴때는 밝은 모습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사랑으로, 중년이 되어서는 배려로, 노년이 되어서는 봉사 등등으로...
첫댓글 부모님은 자식이 어떻게 해야 자랑스럽게 느끼실까?
남들보다 잘나보일때 보다는 이 세상에서 나이에 맞는 자신의 몫을 충실히 다할 때가 아닐런지요.
애기때는 웃음으로, 어릴때는 밝은 모습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사랑으로, 중년이 되어서는 배려로, 노년이 되어서는 봉사 등등으로...
지금 주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