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중견업체에 근무하는 P씨는 요즘 바쁘다. 준비하는 게 있어서다. 익숙해 질 법도 한데, 여전히 설레임과 부담감이 함께한다. 그는 설과 추석이 오면 병원에 입원중인 환자들에게 공연을 해왔다. 시작한지 벌써 8년째. 그가 맡은 일은 지휘자 겸 음악감독. 때론 연주에 참여하기도 한다. 단원은 어린학생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되고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한 번 해보면 멈출 수 없다는 것이 P를 비롯한 음악 자원봉사단의 한결같은 말이다. 지난 설에는 훈련이 제대로 안 돼 특송 수준에서 머물렀고, 이번 추석에는 어린 친구들이 등장해 연주를 선보일 것이다.
병원의 예배는 일반 예배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중 환자들은 침대에 누운 채 예배를 본다. 링거를 꽃은 채 연주를 감상하기도 한다. 휠체어를 타고 오는 환자도 많다. 보호자들이 한 두 명 씩 대기를 하는 것도 일반 예배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어린아이와 참여한 부모들은 건강한 아이들의 연주에 환호하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는다.
환자와 소외계층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일은 이제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지난 5월5일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 내 우촌복지관에서는 감동의 무대가 펼쳐졌다.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조용필의 자선음학회가 소록도라는 예사롭지 않은 장소에서 열렸다. 박형철 소록병원장은 “섬의 100여년 애환의 역사 중 오늘은 가장 행복한 날이다. 나는 물론 주민들이 음악회소식을 듣고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고 술회한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이 연주되었고, 조용필은 ‘친구여’와 ‘꿈’을 열창했다.
영국필하모니아의 소록도공연이 이루어진 계기는 ‘하모니카’였다. 한센병으로 소외된 삶을 살던 환우들은 하모니카를 즐겼다고 한다. 소록도의 든든한 후원자인 로더미어 자작부인 이정선씨가 어느 날 이 천상의 소리(하모니카 소리)를 듣고 음악회를 구상하게 되었다. “소록도에선 누구나 노래를 벗 삼아 산다. 그들에게는 음악이 가장 필요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녀는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공연의 기획의도에 깊이 공감한 지휘자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는 끝내 개런티를 받지 않았다.
예술에 머물던 음악이 치료 영역으로 자리를 넓힌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미국음악치료협회는 음악치료를 ‘치료적인 목적을 위해 정신과 신체를 복원 유지시키고, 향상시키려는 의도로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음악치료는 크게 3가지의 역할을 담당한다. 첫째, 관계의 확립 혹은 재확립을 가능케 한다. 음악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도와주며, 사회적인 상황을 묘사하거나 미래의 방향을 예견하는 도구가 된다. 둘째, 자기성찰을 통해 자긍심을 증진시킨다. 음악은 즐거움과 자기만족의 원천으로 비경쟁적인 성취를 허용한다. 셋째, 에너지나 질서의 원천이 된다. 음악은 곧 에너지원인 셈이다.
음악치료가 환자들의 치료에 긍정적이라는 연구보고는 계속되고 있다. 음악치료가 뇌졸중환자의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이순화 등, 2008 노인복지연구 가을호)는 것에서부터 편마비, 정신질환, 특수아동, 신체장애인, 노인성 질환자의 치료에 효과가 입증되었다. 음악치료는 기타 다른 치료의 보조치료로서 기능이 부각되고 있다.
음악은 단순한 소리와는 달리, 음정, 음색, 화음, 강도의 요소이외에 조직된 리듬을 가지고 있다. 음악적 치료는 불안을 감소시키고 감정의 경험과 표현을 촉발시키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경험에서 만족감을 얻게 하기에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어느 해보다 긴 추석 연휴, ‘음악’과 ‘사랑’ㆍ‘관심’으로 치유와 기쁨을 주는 기적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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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대전출생, 홍익대졸업, 대전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박사 / 대전일보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 대전시 장애인재활협회 이사, 혜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swk240@yahoo.c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