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북한산 시산제
오늘은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의 정기 산행으로 북한산에서 시산제를 올리는 날이다. 오전에 양평에 일이 있어 다녀와 다시 북한산으로 향했다. 학교를 함께 다닌 분이 자기가 아는 사람이 황토로 여러 가지 건축자재를 연구하고 있는데 그 연구실에 일찍 갖다오자고 해서 나선 것이었다. 그 때문에 산행 출발 시간에 맞춰 함께 제 코스로 산을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평소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뜻 있는 날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대간 산행을 마친 후로 그 때처럼 산을 자주 찾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산에 갔을 때 느껴지던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을 알고 있지만 작년 연말까지 여러 가지 일에 붙들려 평소 정리하지 못한 채 지나던 일들을 정리하며 마음을 새롭게 가져보려 했다. 그리고 좀 더 본연의 일에 충실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나서 외부에 나서는 발걸음이 뜸해지게 되는 듯 했다.
12시 30분 구기동에 도착해 지도에 나타난 시산제 장소를 찾아 길을 올라갔다. 산행을 시작했지만 그 산행 길 초입 부분에는 좌우로 식당이나 단독주택 그리고 빌라 등이 연이어 세워져 있어서 아직 도시를 다 벗어나지 못한 채 마을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길은 몇 년전 서초건축사등산동호회에 참가하여 내려온 일이 있는데 그 때도 구기 매표소를 나와서부터 바로 연이어 건물들과 마주치며 지나는 것이 지루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때 지난 경험이 있지만 거꾸로 오르다 보니 방향 감각이 다소 생소했다.
구기동은 북한산성의 서측 바깥부분에 해당하는데 그 외곽으로 다시 상명대가 놓인 낮은 능선이 자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산세에 둘러 쌓인 아늑한 공간이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주변이 북한산성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탕춘대 성터이다. 홍지문과 탕춘대성은 서울 서울 유형문화재 제 33호이다. 탕춘대 성은 숙종임금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경험을 거울삼아 적을 방비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1718년부터 다음해까지 농번기를 피하여 3달 동안 3~4m의 성을 쌓은 것이다. 산성의 이름은 연산군이 세운 근처(세검초등학교)의 탕춘대에서 따온 것이다.
숙종은 성내에 연융대를 설치하여 병사들에게 무술을 연마시키고 만일의 국란에 대비하여 지방에서 올라오는 식량등을 비축하는 군사용 창고도 세웠었다. 성 안에 위치한 지금의 신영동(병영터)이나 평창동(창고터) 같은 이름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홍지문과 탕춘대성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기 위해 쌓은 성이다. 한성문은 한성의 북쪽에 있으므로 한북문이라고도 불렀으나, 숙종이 홍지문이란 친필 편액을 하사하여 달면서 공식명칭이 되었다.
조금 오르다 보니 구기 매표소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정표에 목표삼아가고 있는 승가사가 써 있지 않아 그 곳 직원에게 물어보니 저 아래 건덕 빌라에서 좌측으로 올라가야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돌아 나와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방향을 잡고 올라갔다. 건덕빌라는 주변 건물보다 더 크고 여러 동이 단지화 되어 있어서 그 건물 사이로 산길을 찾아 나가는 동안 부담스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건물을 지나고부터는 더 이상 건물이 나타나지 않아서 산행 본래의 느낌을 느끼며 걷게 되었다. 북한산은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걷는 길도 그 암석이 풍화된 마사토질로 되어 있었다. 오르는 길 가에는 앙상한 모습으로 나무 수종마저 잘 구분할 수 없게 된 나무들에 드문드문 나무 이름을 써 놓은 표찰이 달려 있었다. 그 중에는 처음 보는 나무 이름도 있었다.
쓸쓸히 긴 겨울을 지나게 되는 겨울 산은 때로 처량한 느낌이 들 만큼 삭막해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기가 있어 나무 등 온갖 사물의 생명의 변화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고 새로 맞는 봄의 생명력이 더 귀히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봄 이후 나무에서 잎이 돋아난 후로는 표정이 변화무쌍해져서 더불어 세월의 흐름도 빠르게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겨울이 빨리 지나길 원하지 않는다.
길을 오르는 동안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한참 가다보니 앞의 몇 사람 뒤에서 채한배 건축사가 오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시산제를 마치고 일행이 내려오고 있나보다 하면서 시산제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이 일어나려 하는데, 그도 늦게 혼자서 찾아갔다가 못 만나고 내려온다고 했다. 예기를 들으니 아까 내가 오르다 뒤돌아선 구기 매표소 옆으로 올라 승가사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예기를 들으며 지도를 보니 시산제를 올리는 곳은 승가사에서 내려온 길에서 갈라져 다시 조금 올라간 곳에 표시되어 있었다. 내가 올라오면서 일행을 못 보았으니 아직 그 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자신은 지나왔으니 식당에 먼저 가 있겠다고 하며 내려갔다.
나도 혹시 다 내려간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면서 장소를 찾아 올라갔다. 한동안 걷다보니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 옆 ‘승가사‘ 이정표에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시산제 장소라고 쓴 글이 붙여져 있었다. 나는 반가운 느낌으로 그 방향으로 올랐다. 지도에는 길로 나타나 있지만 승가사 가는 길에 비해 희미하게 되어 있어서 그 표지가 아니면 길을 그냥 지나칠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개울물을 대하니 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오르다 마주오는 몇분에게 혹시 저 위쪽에 시산제를 올리는 것을 보았느냐고 하니 조금만 오르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길은 계곡 지점에 크고 작은 바위들을 디디며 지나게 되어 있었는데 계곡이라 주변의 산의 정취가 더 아늑하게 느껴졌다. 저 위로는 비봉일 듯 싶은 큰 암봉이 솟아 보였다.
잠시 후 조금 큰 바위돌을 디디고 오르다보니 저 앞에 가로로 길게 매어 놓은 일행의 현수막이 보였다. 그 우측 위쪽에는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보여 더 장소가 특이하게 느껴졌다. 좌측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올라서니 마당 같은 공터에 많은 일행이 시산제를 올린 후 음식을 나눠 먹으며 즐겁게 담소를 하고 있었다. 늦어 미안한 마음으로 얼굴을 마주친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늦은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특히 충북건축사회의 전국건축사등산동호회장을 맡은 오긍균회장 등이 참석해서 더 자리가 활력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회원들 서로간에도 평소보다 더 정다운 표정이 느껴졌다. 산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시산제에서 마치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격으며 서로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들이 더불어 나누어지는 듯 했다.
작년에 대간 종주를 함께 마친 강남건축사등산동호회 최진 회장등과 담소를 하면서 다시 그 때의 감회가 느껴졌다. 그 곳으로 하산하던 다른 일행들이 옆의 마애불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강남 일행이 나에게 단체 사진을 부탁해 찍어 주었다. 그 사이 일행들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기동 할머니순두부집을 예약하여 그 곳으로 이동해 뒤풀이를 갖기로 했다. 올라가던 때와 달리 느긋한 마음으로 산길을 내려왔다.
북한산은 도시에서 가깝고 산세도 웅장하고 깊이가 있어서 이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복 받은 일처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시간이 나는데로 여러 코스로 자주 다녀볼 생각을 갖고 있지만 막상 산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이런 행사 때가 더 나서기 쉬웠다.
2시경 뒤풀이 장소에 들어섰다. 식당 안에는 먼저 내려온 분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아까 올라가다 만난 채한배 건축사도 다시 보게 되었다. 너른 식당이 일행들로 가득 채워졌다. 곧 내 놓은 메밀전과 순두부 뚝배기, 막걸리 등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회원들이 각자 자리에 둘러앉은 회원들과 즐겁게 예기들을 나누느라 식당안이 명랑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나와 마주 앉은 정철호 건축사는 운동을 하여 체중 감량을 했다고 했다. 14km나 줄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전에 보았을 때보다 몸집이 날씬해 보였다. 그는 함께 온 부인을 자랑하듯 평소 청소년 상담 등 하고 있는 일 등을 소개했다. 부인이 상량하게 배려해주어, 정 건축사가 사회생활 하는데 힘을 불어 넣어 줄 듯 했다. 옆 자리에 앉은 정병협 건축사는 식사중에도 열심히 행사 사진을 찍었다.
올해부터 새로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 회장을 맡은 이종호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말을 한 후 전임 회장과 사무총장 재무로 수고하신 박기현, 송승원, 황선욱 회원에게 상장을 드렸다. 박기현 회장은 답례로 인사말을 했다. 그 후 회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건배 제의를 했다. 좋은 분들이 회를 위해 헌신하여 즐거운 모임으로 정착이 된 듯 했다. 그리고 참석한 분들중 올해 서울건축사회에 회장에 입후보 한 분들과 전국 건축사 등산동호회 오긍균 회장등을 소개하며 인사말을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즐거운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 했다.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한 회원끼리 자리를 옮겨 술잔을 권하기도 했다. 3시 30분 멀리서 온 충북 회원들이 내려갈 차비를 하며 일어섰다. 서울 회원들이 배웅 인사를 하다 함께 일서서 나왔다. 안개가 끼었던 아침보다 날씨가 맑고 온화해져서 즐거운 기분으로 행사를 마치게 되었다.
(090215)
첫댓글 정말로 글로써 저희 등산 동호회을 진정 솔직 담백한 표현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분위기를 새삼 느끼게 되는 후기 정말좋습니다...
산행을 안해도 산행의 소중함을 느낄수 있는 좋은 글에 감사합니다~
김석환 건축사님이 왜 안 보이시나 했는데, 그래서 식당으로 바로 오셨는 줄 알았는데 뒤늦게 나마 시산제 장소로 오셨군요. 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양평까지 갔다오시느라 늦으셨지만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늦게나마 오시느라 수고 하셨구요~~!! 오랜만에 뵙게되어 반가웠습니다~~~~~~ ^^*
늦게 참석하여 죄송했는데 이렇게 덕담으로 맞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하 모든 회원님들이 마음 모아 정성껏 시산제를 올리며 기원하신대로 새해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의 산행이 늘 안전하고 즐겁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각자 시산제 때 임했던 자세대로 산행시 산 앞에 겸허하고 안전을 돌아보는 마음가짐을 함께 가지면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