化城喩品(화성유품) 第七
3. 대통지승불의 성도(成道)
오늘은 법화경 '옛 인연을 말하다.'입니다.
대통지승불의 이야기에 의하면
성불하는 데 10겁 이라고 하는 길고 긴 세월이 걸려서 그런지,
이 대통지승불 이야기가 빨리 넘어 가지가 않네요.
사실 이것은 화성유품 이라 해서, 품 이름을 생각하면 화성유의 이야기를,
화성비유 이야기를 길게 해야 옳은데,
그 이전에 서론 격으로 나오는 대통지승불 이야기가
이렇게 길게 여러 날 이어지고 있습니다.
옛 인연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제야 결론을 맺을 차례가 되가는가 봅니다.
이 때에 십육 보살사미는
부처님께서 방에 들어가 고요히 선정에 드신 줄을 알고
각각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팔만 사천 겁 동안 사부대중들을 위하여
묘법연화경을 분별하여 널리 해설하였느니라.
아버지인 부처님은 선정에 들어있고
십육 보살사미는[16명의 아들] 아버지 부처님으로부터 법화경을 배웠으니까
그것을 다시 많은 사부 대중들에게 묘법연화경을 분별하여 널리 해설했다.
그것도 팔만 사천 겁 이라고 하는 오랜 세월동안..
걸핏하면 불교에서는 팔만 사천, 팔만 사천 그런 말을 하는데,
인도에서 많다는 숫자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얼마나 많더냐?” “아이고, 그거 뭐 천지더라.”
예를 들어서 “금정산에 갔더니, 고사리가 많더라”
“고사리가 얼마나 많더냐?” “아이, 고사리 천지야” 이런 표현을 하지 않습니까?
하늘과 땅이 모두가 고사리라는 그런 말인데, 뜻대로라면 많다는 뜻이지요.
어디 하늘과 땅이 그대로 고사리인 곳이 있습니까?
많다는 걸 표현할 때 천지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이렇듯, 인도에서는 팔만 사천이라고 흔히 표현을 합니다.
하나하나의 보살들이 육백만 억 나유타 항하사 중생들을 제도하여
보여 주고 가르쳐서 이롭고 기쁘게 하였으며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게 하였느니라.
여기 시. 교. 이. 희라고 해서, 示(보여주고), 敎(가르쳐 주고),
利(이롭게 해주고, 이익이 돌아가게 해주고), 喜(기쁘게 하였으며),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경지까지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게 하였다는
그런 표현이지요.
대통지승불이 팔만 사천 겁을 지내고 나서 삼매(三昧)로부터 일어나
법상(法床)에 올라가 편안히 앉으시어 대중들에게 말씀하였느니라.
그 길고 긴 세월, 팔만 사천 겁 동안 삼매에 있다가 비로소 삼매에서 깨어났고,
그동안은 자기 아들들인 십육 보살사미 들이 법화경을 설했다.
그런 광경을 우리가 사실 이렇게 상상해 보면 그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모습이지요.
그래서 대중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이 십육 보살사미는 매우 희유하니라.
육근이 영리하고 지혜가 총명하며 이미 한량없는 천만 억 부처님께 공양하였느니라.
여러 부처님 계신 곳에서 항상 범행을 닦았으며
부처님의 지혜를 받아 지니고 중생들에게 열어서 보여 주어
그 안에 들어가게 하였느니라.
당신의 아들들이지만 삼매에 들어서 이들의 과거를 가만히 살펴보니까,
과거의 행적이 낱낱이 이렇게 영화의 스크린에 비쳐지듯이
그렇게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대들은 모두들 마땅히 자주자주 친근하여 모시며 공양하라.
왜냐하면 만일 성문이나 벽지불이나 보살들이 이 십육 보살이 설하는 경법(經法)을
능히 믿고 받아 지녀서 훼방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마땅히 최상의 깨달음과 여래의 지혜를 얻으리라.’ 라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이 십육 보살사미에게 그렇게 당부합니다.
여기에 표현을 가만히 보면 처음에는 십육 왕자 이랬다가,
십육 사미 그랬다가, 십육 보살사미 그랬다가,
나중에는 십육 보살 이렇게 표현이 됩니다.
이런 것들도 경전을 편찬 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엿보이는
그런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십육 보살이 항상 묘법연화경을 설하기를 좋아하였느니라.
하나하나의 보살들이 교화한 육백만 억 나유타 항하사 중생들은
세세생생에 보살과 함께 나서 그의 법문을 듣고는 모두 믿고 이해하였느니라.
저도 법화경을 아주 좋아해요.
그래서 걸핏하면 법화경이야기 하고 강설하고, 교재도 내고..
또 어록으로서는 임제록을 좋아합니다.
"이 십육 보살들은 항상 묘법연화경을 설하기를 좋아하였느니라.”
이렇게 정말 제대로 된 선지식이 세상에 나타나면,
선지식으로서 제대로 선지식 역할을 세상에 펴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그래요.
여기 보면 “십육 보살사미 들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들이 과거 생에 교화했던 그 중생들이,
교화한 보살들이 6백만 억 나유타 항하사 나 되는 이들이,
세세생생에 보살과 함께 나서 그의 법문을 듣고 모두 이해하였다.” 하는 것은,
교화하는데 필요한 요원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대개 선지식이 교화를 펴는데 있어서는
몇 가지 인연이 갖춰줘야 된다고 그렇습니다.
첫 번째 : 道緣(도연)!
그 사람의 도가, 법을 펼만한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土地 緣(토지 연)!
그 사람이 그 지방에 인연이 있는 가, 없는 가,
다른 조건은 다 되는데 그 지방과 인연이 없으면
그것도 교화를 펴는데 제대로 안 된다고요.
저도, 여기저기 옮겨 다녀보니까 내 딴에는 힘들여서 살려고 했는데,
그게 토지 연이 없는가 안 될 때가 있었어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도연과 토지연이 있어야 됩니다.
세 번째: 檀越 緣(단월 연)!
시주하는 신도들이 많이 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조건이 안 갖춰지면 뭐합니까?
누가 도와주는 신도가 없으면, 아무리 도력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단월 연이 있어야 합니다.
네 번째: 外護 緣(외호 연)!
정치적으로나 아니면 여러 가지 외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는 단월 연이 되겠고요.
뭘 하는데 대외적으로 어떤 큰 힘이 되 주는 사람들,
예를 들어서 요즘 말로 하면 빽 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좀 도와주고,
또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衲子 緣(납자 연)!
직접 그 슬하에서 공부하겠다는 수행자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게 출 가인이 되었든지 재가 인이 되었든지 간에
어쨌든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다른 조건은 다 갖추었는데, 정말 이 몸을 다 던져서 공부하겠다는
그런 사람이 없으면 뭐 합니까? 그야말로 하나마나한 일이지요.
절이 부자이고, 외호도 아주 잘 되어있고, 시주들도 많고,
그 지역과도 인연이 깊고, 자기 도력도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정작 알맹이가 되는, 출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제자가 없으면,
그것 참 허망하기 이를 데 없지요.
그래서 그런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된다.
도연, 토지 연, 단월 연, 외호 연, 납자 연 이렇게 五種(5종)연을 갖추어야
비로소 선지식으로서 선지식 행세를 제대로 합니다.
요즘 말하자면 포교하는 사람들을 두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어느 지역에 가서 포교를 좀 하고 싶다 그러면,
포교하는데도 그런 다섯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자기의 포교 실력이 있어야 하지요?
불교를 아는 그 포교 실력! 그것이 도연이 되겠고,
그 지역이 자기하고 인연이 맞아야 되어요.
또 단월들이 있어야 되지요.
신도들이 많이 따라야 그게 포교가 되는 것이지 혼자 무엇 합니까?
그 다음에 널리 사람을 모은다던지, 건물을 짓는다던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한다던지,
그래도 행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외호 연이 있어야 되지요.
그 다음에 납자 연이라고 하는 것은 거기서 같이 도우면서 보조를 맞출 스님들,
목탁도 같이 쳐주고 염불도 같이 해 주고,
혹 다른 일이 있으면 대신 법회도 해주는 납자가 갖춰져야 됩니다.
그런 다섯 가지 조건이 제대로 갖춰졌을 때 포교도 제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옛날 깨달음을 성취한 자기 제자가 어느 한 지방에 가서 법을 편다고 할 때는
반드시 다섯 가지 인연이 갖춰져야 된다는 분부를 내리고
알려 주는 일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보면 세세생생에 보살과 함께 나서 그의 법문을 듣고는
모두 믿고 이해하였느니라.
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같이 따라 가 가지고,
법문을 하는데 와서 열심히 듣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주 교화하기가 좋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사백만 억 부처님 세존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끝나지 아니 하였느니라.
계속하고 있다 이것이지요.
십육 왕자의 현재의 모습 이제 서서히 끝나 갈 무렵이지요.
지금까지는 옛날이야기이고,
그러면 십육 왕자들은 오늘날 어떻게 되었느냐?
이렇게 우리가 물었을 때, 여기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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