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읽는 방법』 최유찬 지음, 서정시학, 2008년.
춤
굿놀이판의 꽃은 소리보다도 춤에 있는 것. 풍물의 흥겨운 가락은 저절로 움직임을 낳고, 그 움직임은 춤이 되는 것. 꽹과리를 든 쇠꾼의 부표놀이춤과 발림춤, 장구잽이들의 설장구춤, 무동들의 긴 춤과 잡색들의 허튼 춤, 행렬은 돌고 돌면서 원을 그린다. 원은 시간의 운동이 만들어내는 것. 그 원을 그리면서 하나의 점으로 되는 낱낱의 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애환을 표현한다. 세상살이가 답답하여 폭폭한 심정도 춤이 되어 나오고 가버린 사람을 못 잊어하는 그리움도 춤이 되어 나온다. 가락은 쇠 소리와 가죽 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루어지지만, 남녀노소, 사람들의 춤은 제각기 다른 형태로 추어지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굿놀이판에서는 풍물잽이들만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다. 행렬을 뒤따르면서 엉덩이춤, 어깨춤을 추던 이들도 제 가락을 못 이겨 추는 것이고 구경하는 이들도 그냥 구경꾼이 아니다. 원을 그리면서, 태극을 그리면서 돌고 도는 행렬은 그 구경꾼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그 원은, 그 빈 곳은 구경꾼이 들어와서 춤꾼이 되도록 마련되어 있는 곳. (...)
가락 속에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에서 춤이 나온다. 그러므로 가락은 큰 틀이고 춤은 그 가락이 불러낸 신명의 춤이다. 슬프면 슬픈 몸짓을 할 것이고 기쁘면 기쁜 몸짓을 할 것이다. 유한한 인생의 애환을 그대로 담아내는 몸짓. 노동에서 익은 몸짓이 나오고 사람을 그리는 정이 한스런 몸짓으로 표출되면서 한데 어우러져 무아지경의 신명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춤을 보릿대춤이라 한다든가.
보릿대. 속이 비어 있는 빈껍데기들의 춤.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절실한 춤이고 각기 다른 이유에서 추어지는 춤이지만 가락이 돋우는 신명 속에서 여럿이 어우러짐으로써 집단적인 힘을 나타내게 된다. 모으고 분산시키고 맺고 벗어나면서 추는 춤. 이렇게 추어도 좋고 저렇게 추어도 제멋인 춤. 고깔을 흔들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어깨를 들썩이면서, 생활의 곤궁과 인생의 무상함을 잊으면서 추는 춤이 굿놀이판의 춤이다. 그 춤 속에 사람들은 비를 기원하기도 하고 아들을 기원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을 기원하기도 할 것이다. 그 간절한 소망들은,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의 형태가 달라져도,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아니던가. (157~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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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찬 교수는 『토지』 구조를 태극과 춤으로 해설하려고 했다. 나는 교수가 쓴 춤 구절이 좋아서 옮겨 적으며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했다.
윤씨부인은 대청마루에 꼿꼿하게 앉아서 속춤을 추고, 최치수는 사랑방에서 학춤을 춘다.
타작마당에는 서금돌과 주갑이를 따라 이용과 이평, 칠성이가 맴을 돌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월선은 촉촉한 눈망울로 이용을 보면서 살포시 어깨를 들썩거린다. 봉순이, 길상이와 어우러져 조병수는 곱사등이춤을 추고, 삼월이, 삼수, 귀녀도 한 많았던 삶을 삭히며 고깔을 흔들고 엉덩이를 흔든다.
구천이 김환과 곰보 목수, 그리고 거복이 김두수, 미친 여인 또출네는 狂人춤을 춘다.
평사리에 한바탕 보릿대춤판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