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미야자키'라고 하면 누구나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릴 것입니다. 일본 작품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한두 편 안본 한국인은 없을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비교불가의 세계적인 감독이고 역사에 남을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 한 명의 '미야자키'를 좋아하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저서를 모조리 읽었습니다. 그는 다름아닌 역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입니다. 중국사 전공인 그의 책은 정말 유익하고 역사책을 읽는 재미를 알게 해줍니다. 그의 저서 중에 <옹정제>라는 책이 있습니다.
중국 5000년 역사 동안 태평성대라고 평가받는 시기가 몇번 있었습니다. 전한(前漢) 시기의 문경지치(文景之治)와 당(唐)나라 때의 개원지치(開元之治)가 있고, 청(淸)나라 때의 강건성세(康乾盛世)가 있습니다. 강건성세는 청나라의 강희제와 건륭제 시기의 전성기를 말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강희제의 아들이고, 건륭제의 아버지인 옹정제가 있었습니다. 옹정제는 강희제와 건륭제 처럼 치세가 길지 않았고(강희제 60년, 건륭제 60년, 옹정제 13년), 두 황제처럼 화려한 대외 원정으로 영토를 넓히지도 않아서 큰 업적이 없는 것 처럼 보이는데다, 문자옥(文字獄)을 일으켜 문화를 탄압한 황제로 비난받고 있고, 후계자 경쟁을 벌였던 자기 형제들을 혹독하게 탄압하여 악명을 얻은 인물입니다.
더구나 중국 드라마 <후궁 견환전>을 보면 후궁들에 빠져서 국정에는 소홀히 한 인물로 그려졌고, 그나마 조금 낫게 묘사한 <보보경심>에서도 냉정한 인물로 얼음왕자로 불린데다 그의 업적은 여자들사이의 애정관계 밖에 없는 것 처럼 보입니다. 왜 중국 드라마에서 옹정제를 이렇게 묘사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에 의하면 그는 정말로 선의로 가득찬 군주였습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옹정제를 한마디로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독재군주>로 평가합니다. 옹정제는 치세 13년 동안 하루에 4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았으며, 헌신, 용의주도함, 성실성이 옹정제의 일생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옹정제는 중국의 모든 지방관의 보고서를 다른 관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받아 읽었고, 그 보고서에 일일이 답변을 적어서 다시 지방관에 보냈으며 지방관은 옹정제의 답변을 읽으면, 그 보고서를 다시 옹정제에게 보내야 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그 보고서들을 주비유지(朱批諭旨)라고 하는데 옹정제가 답변을 쓸 때 붉은 먹물을 사용해서 주비유지라고 합니다. 그 남아있는 양이 그야말로 산더미 같이 남아있어서 큰 건물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옹정제가 <후궁 견환전>에 나오는 것 처럼 후궁들과 권모술수로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의 주비유지는 오직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려는 옹정제의 고심의 산물입니다. 그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추호도 용서하지 않아서, 옹정제 때 청백리라고 자랑하면 오히려 욕을 먹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청백리 아니면 관리를 할 수 없는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청백리가 자랑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옹정제는 인재 선발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어떤 자리이든 그에 딱 맞는 인재를 채용했습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다른 저서 <녹주공안>에 옹정제가 문제가 많은 지방에 적절한 인재를 선발하여 그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래에 나오는 옹정제의 말은 미야자키의 상상이지만 옹정제라면 능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옹정제는 "청관(淸官)이란 자기 마음속으로 한 점 부끄러울 게 없다고 확신하고 있지. 하지만 실제 정치에서는 그런 자신감이 도리어 큰 해를 부를 수 있는 법. 청관은 악을 철천지원수처럼 싫어한다고 말하는데 말야. 물론 천하가 태평한 시절이라면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 그러나 곤경에 처한 백성은 너무나 힘든 나머지 생존을 위해서 본의 아니게 법을 어기는 일을 할 수밖에 없어. 그런 지경에다 전혀 봐주지 않고 엄하게 형벌을 가한다면 백성은 견뎌낼 재간이 없지. 만약 탁관(濁官)이라면 그럴 때 뇌물을 주고서라도 모면할 방법이 있으니 오히려 괜찮아. 청관의 손에 걸리면 그 즉시 끝장. 도망칠 구멍이 없다는 거야. 이 사람은 불합격이야."라고 말하면서 <매사 경중을 분별할 줄 아는 인물>인 남정원을 광동성 조양현 지현(知縣: 우리식으로는 현감)으로 파견합니다. <녹주공안>은 이 남정원이 지현으로 내려가서 현을 다스리면서 사건을 처리한 재판 기록입니다. 옹정제는 조그만 고을의 지현을 선발할 때도 아무렇게나 임명하지 않고 꼼꼼히 살펴보고 임명한 것입니다. 이렇게 심신이 피폐할 정도로 옹정제가 일에 몰두했으니 오래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13년이 그의 성실함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