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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말아야 하는가?
가장 정확한 답변은 “그것은 성경에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롬 4:3)
“그러나 그 때에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신들도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아시거늘, 어찌하여 너희는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다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종노릇하기를 원하느냐? 너희는 날들과 달들과 때들과 해들을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8-11).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조심하라. 이것은 사람들의 유전을 따르고, 세상의 초등원리를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먹는 것으로, 마시는 것으로, 거룩한 날이나 새 달이나 안식일들에 관하여는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한 그림자였으나, 그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8,16,17).
“꾸며낸 이야기들과 끝없는 계보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런 것들은 믿음 안에서 경건하게 세워주기 보다는 오히려 의문을 일으킴이라. 그런즉 그렇게 행할지니라.”(딤전 1:4)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부지런히 공부하라. 그러나 불경건하고 헛된 말장난들은 피하라. 그들은 점점 더 경건치 아니함으로 나아감이니라.”(딤후 2:15,16)
크리스마스는 기독교계에서보다는 오히려 비기독교의 모든 사람들이 즐겨하는 가장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르는 축제입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향락과 음란, 요란함을 보세요. 교회당의 전구장식의 현란한 오색빛깔은 무당 집 신당을 들여다보는 오싹함을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란함 속에 계실까요?
요란함을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가 아니겠습니까? 무당들의 굿판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장식하기 위한 요란한 장식물들은 영락없이 무당들의 신당 장식용품과 거의 같은 것들입니다. 심지어는 불교의 연등이 ‘축 성탄’으로 바뀌어져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은 진정 누구를 위함이며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우리는 기독교로 옷만 바꿔 입은 허울 좋은 이름들로 포장된 이러한 이교적인 문화를 수용해야만 할까요?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란한 허식과 기만으로 포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오히려 그분을 꾸미려고 하는 것은 그분의 영광을 일부분이라도 가리려는 것뿐입니다. 그분 자체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요1:14)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잘못된 가르침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위신과 권위를 위해서 그만 두지 못하고 계속 한다면 그것은 나중에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솔직히 시인하고 돌이키는 것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위대한 행동으로 인정되지 않을까요? 권위를 위해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는 것보다는 진실함이 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크리스마스에 대한 성경적이고 올바른 관점을 갖게 되고, 건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바빌론 신비 종교로부터 시작된 크리스마스
만리 홀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따르면 고대 바빌론 왕국을 건설했던 니므롯 이전부터 카인의 후예들은 모든 생명의 근원을 태양으로 믿어 숭배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풍습이 바빌론의 니므롯 시대로 흘러 들어와 바벨탑을 쌓았던 니므롯이 죽은 후에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세미라미스가 니므롯을 당시 백성들에게 태양신으로 숭배하게 하였고, 자신은 그의 아내로서 ‘하늘의 여왕’으로 격상시켜 달을 상징하는 여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그 태양신이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Osiris), 또는 ‘라’(Ra) 등으로, 가나안 땅에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오염시켰던 ‘바알’(Baal)로 바뀐 것입니다.
이러한 태양신 숭배 풍습이 로마에서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라는 축제를 하면서 12월 25일을 ‘나트리스 솔리스 인빅티’(Natlis Solis Invicti)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탄생일’이라는 의미입니다. 태양신 ‘솔’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로마에서는 12월 22일 동짓날이 해가 가장 짧은 날이므로 이 날은 태양이 죽은 날로 믿었으며, 12월 24일은 해가 다시 길어져 태양이 살아나는 것으로 믿어 12월 25일을 해가 다시 살아난 날, 태양의 탄생일로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빌론에서 세미라미스에 의해 태양신으로 숭배되었던 니므롯의 죽음과 재탄생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히슬롭도 그의 저서 「두 개의 바빌론」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이교도의 축제일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을 지킨 날짜와 그 때 행하는 의식이 그 날의 기원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하늘의 여왕을 이시스(Isis)라고 불렀는데, 그녀의 아들이 ‘동지’인 바로 이 때에 태어났다. 우리들이 크리스마스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인 ‘율 데이’(Yule day)는 이 날이 바로 이교도 국가인 바빌론에서 유래되었음을 밝혀 준다. 여기서 ‘율’(Yule)은 ‘어린 아이’를 뜻하는 칼대아 말이다. 12월 25일은 기독교가 들어서기 훨씬 전에 이교도 앵글로색슨 조상들이 ‘율 데이’, 또는 ‘아이의 날’이라 불렀으며, 그 전날 밤은 ‘어머니의 밤’이라 불렀다는 것은 그 날의 본질을 충분히 드러내 주는 것이다.… 이 탄생일은 이교도 국가 도처에서 지켜졌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크리스마스를 지켰는가?
초대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너희가 이 빵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그 분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느니라.”는 고린도전서 11장 26절의 예수님의 죽으심은 기념하였지만, 탄생을 기념하지는 않았습니다.
「브리테니커대백과사전」도 “크리스마스는 초기 교회의 축제들 중에는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심지어 「카톨릭 백과사전」(1911년판)도 “크리스마스는 교회의 가장 초기에 있었던 초기 축제일에 들어 있었던 축제가 아니라 … 그 축제의 기원은 이집트이다. … 이레니우스와 터둘리안은 축제일 목록에서 크리스마스를 삭제하고 있다.”고 시인합니다.
「콜리어 백과사전」(The Collier's Encyclopedia)’의 크리스마스 축제에 관한 말들을 요약하면 “날자는 3세기가 넘어서야 겨우 지목됐고 초대 기독교인들은 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J. L. 데니슨’도 그의 글 「크리스마스의 역사」를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크리스마스와 연결된 관념들은 성경적이거나 역사적이거나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거행했던 행사가 아니라 오늘에 거행되는 것과 같은 크리스마스는 카톨릭과, 유대교, 이교주의, 그리고 미신의 산물처럼 보인다.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종교적 크리스마스 축하를 갖지 않는다. … 이 글을 마감하면서 특별한 날들의 종교적 행사와 관련해서 바울의 경고를 상고하고 싶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4:10-11)”
12월 25일은 언제부터 지켰는가?
로마 교회는 4세기 후반에 고대 로마의 태양신 솔(Sol)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정하여 지키기 시작하였고, 5세기에 이르러서는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영구히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브리테니커대백과사전」도 그 기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에 기념하는 이유는 불확실하지만, 초기 기독교들이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 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의 이교 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이교 축제는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한 것이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신제 및 태양 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한데 합쳐서 생기게 된 것이다. 로마 세계에서는 농경신 사투른을 기념하는 축일인 ‘사투르날리아’(12월 17일)에 흥겹게 지내며,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또한 이란 사람들은 12월 25일을 신비로운 신, 미트라(정의의 태양)의 탄생일로 여긴다. 로마력 설날(1월 1일)에 사람들은 자기 집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했고, 자녀들과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튜튼족이 갈리아, 브리튼, 중앙 유럽으로 침입해 들어오면서 게르만족과 켈트족의 크리스마스 축제 의식들이 이러한 관습들에 융합되었다. 음식과 교제, 크리스마스 이브에 벽난로에 때는 장작과 크리스마스 케이크, 푸른 나무들과 전나무들, 선물과 인사 등이 이 축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되었다. 이교도에게나 기독교도에게나 겨울 축제일은 언제나 따뜻함과 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는 불, 등불들과 관련되었다.”
「카톨릭 백과사전」 또한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12월 25일에 지켜 온 잘 알려진 나탈리스 인빅티의 태양 축제(즉, 정복되지 않은 태양의 탄생)는 우리가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에 대한 좋은 근거가 된다.”(제3권, p. 727, Christmas).
‘브리테니커’나 ‘월드 북 백과사전(The World Book Encyclopedia)’은 354 A.D. 로마의 감독이었던 ‘리베리우스(Liberius-로마교황의 선구자)’에 의해서 12월 25일을 채택하도록 명령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리베리우스가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 축하 일로 골랐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월드 북 백과사전의 기록을 보면 “태양이나 동지(冬至)의 축하연은 어둠을 이긴 빛의 승리를 축하하는 행사로 ‘로마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행사들”이라고 합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Americana)’에 따르면 “이것은 이교도의 축제로 12월의 마지막 절반을 축하하는 연회였다”고 하며, 덧붙여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즈음에 ‘태양의 재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지켜졌던 이교 축제 기간과 일치하게끔 그 날자(12월 25일)가 선택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라고 했으며, 브리테니커는 “교회 달력에는 그리스도교 이전 축제의 잔류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 주목 할만한 것이 ‘크리스마스’로써 여기에는 농신제(農神祭)의 축제와 ‘미트라’[Mithra-고대 페르시아 신화중의 태양, 광명, 전투의 신]의 생일, 이 두 가지를 포함한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가 하면 ‘신카톨릭 백과사전(The New Catholic Encyclopedia)’도 이 달(12월 25일) 태양이 북쪽 하늘로 되돌아오기 시작하면 이교도인 ‘미트라’ 신봉자들은 무적 태양의 탄생일을 축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정평이 있는 백과사전들과 참고 문헌들은 모두 예수님의 탄생일로 알려진 12월 25일 이라는 날짜를 ‘로마인들’에게서 빌려왔고, 그때 그들의 관습과 축제 행사도 아울러 가져왔다는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농신제’는 농업의 신인 ‘새턴’[Saturnus의 영어명. 토성, 점성술에서는 재앙의 별로 여기고 있다.]을 위해 12월 17일부터 24일 까지 베풀어진 7일간의 ‘로마축제’였는데 이 축제는 떠들썩한 연회, 음주, 환락, 춤, 선물 주는 일, 집을 상록수로 치장하는 일 등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원래 ‘바빌로니아’의 빛의 신이었던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이 일주간의 축하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교도 개종자들을 얻고, 그런 세상적 관습에 빠져 이탈한 자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4세기 중반 ‘리베리우스’와 ‘로마교회’는 ‘미트라’의 생일을 ‘그리스도교화’ 했으며 그 날짜와 관습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 축하일로 정해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콘스탄틴의 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지만 죽을 때까지 태양신을 신봉했던 이교도였습니다.
김의환 박사의 ‘교회사’에도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다.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정하고 축하하는 것은 354년이 기록에 나타난 것으로서는 가장 빠른 것이다. 로마의 감독 리베리오의 때에 해당된다. 크리스마스는 379년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축하되고, 이집트와 팔레스틴에도 전해졌다”
크리스마스는 로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로마에는 12월말에 세 가지 축일이 계속됩니다. 첫째는 ‘사터르날리아(Saturnalia)’라고 부르며 17일부터 24일까지입니다. 옛날 새턴 신이 지배한 황금시대를 기념하는 제사로서 이 계절에는 “귀천 빈부를 가리지 않고 함께 환락에 빠진다.”고 합니다. 다음은 ‘시갈라리아제(Sigillaria)’인데 어린아이에게 인형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브루말리아제(Brumalia)’인데 동지 제사를 말합니다. 태양의 빛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이들 축제에 참가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모여서 다른 의미의 축하행사를 가졌는데 그리스도는 이 태양 빛이 회복되는 시기에 탄생하시는 것이 합당하다는 사상도 섞여서 이 때를 구주탄생의 날로 축하하기 시작한”것입니다.
이러한 이교적 태양신 숭배의 관습이 로마에서 ‘기독교화’ 되었을 때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몇몇 사람들은 예수님이 태양신인 ‘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터툴리안은 솔(Sol)은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교황주의자 어거스틴조차도 그리스도를 솔과 동일시하는 것을 이단이라고 탄핵했던 것입니다.
고대의 동계 축제는 대단히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인기로 인해 로마 교회는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때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관습 중 많은 것들이 로마의 농신제(Saturnalia)의 영향을 받은 것들입니다.
저술가 베일리는 “크리스마스 기간과 관련된 여러 가지, 즉 휴일들, 선물 교환, 겨울나무 등이 이교주의의 유물인 로마의 겨울 농신 축제가 계승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탄생이 서기 1년에 있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이 서기 1년12월 25일이라고 하는데 거의 의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왜 1년 12월 25일이냐?’고 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성경은 그리스도의 탄생의 날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해서 우리가 알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소위 주 후 몇 년이라고 쓰고 있는 서력기원이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정확하게 계산하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께서 죽으신 훨씬 후부터, 정확하게는 7세기부터였습니다. 로마의 학식 있는 수도사인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인데, 그는 적어도 ‘역사를 세는 중심점을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탄생을 서기 1년으로 지정했습니다. 이것은 754년 로마의 기초로부터 연대가 계산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디오니시우스’가 기원 연도를 설정하는데 있어 최소한 4년 정도를 실수했다는데 동의합니다. 그 이유로써 그리스도를 찾아 죽이려 했던 "헤롯대왕"(King Herod the Great)이 현재 B.C. 4년으로 부르고 있는 첫해 4월 가까이에 죽었고,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집트에서 적어도 6개월에서 3살까지의 기간 동안 있었다고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적어도 B.C. 7년에서 4년 사이 어느 때 그리스도는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데니슨은 주장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에서 탄생의 연도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서기 1년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12월 25일 추운 겨울이었는가?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신 유일한 목적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분의 피흘려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그분의 재림입니다. 성경말씀이 제시하지 않은 사실을 우리가 알려고 한다면 월권행위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오직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신 바를 따라 행해야 합니다. 꼭 그분의 탄생 시기에 대해서 알아야겠다고 한다면 알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현재 보편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처럼 12월 25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고대 바빌론 종교에서 유래된 12월 25일 그리스도 탄생 설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 이교적 풍습을 받아들여 기독교와 접목시켰으며,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그 유전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과 저술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가 12월 25일 이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현재의 12월은 고대 히브리 종교력으로 제9월인 “기슬르월(느1:1)” 하순이거나, 제10월인 “데벧월(에2:16)” 초순에 해당됩니다. 성경적으로 이 달들의 기후를 다루고 있는 곳을 살펴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6장 22절에 “때는 구월이라 왕이 겨울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호야김 왕은 겨울별장에 있었고 그는 추워서 불을 피워주는 화로가 필요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에스라 10장 9절에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구월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라고 했고, 13절에는 상반절에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춥고 비오는 계절은 불월(왕상6:38), 즉 현재의 10월 하순에 시작하여 여러 달 계속되고, 현재의 12월경에는 밤에 종종 서리가 내린다고 합니다.
이 추운 겨울에 목자들이 밖에서 양을 돌보고 있었는가?
우리는 누가복음 2:8에서 천사가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그분의 탄생을 알려주었던 때에, 목자들이 넓은 들판에서 밤까지 양떼들에게 풀을 먹였으며, 밤에 들에 묵으면서 양떼들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겨울은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몹시 추우며 비가 오는 계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0월 말 이후에 목자들이 들판에서 자신들의 양떼들을 먹이고 지키는 것은 그들의 관습이 아닐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3월 하순이나 4월 초순경부터 양떼들을 들판에 방목하다가 10월경 첫비가 내릴 때쯤에는 추위로 인해 모든 양떼를 집으로 몰고 돌아와서는 우리 안에서 겨울을 나게 했습니다. 위에 살펴본 에스라 10:9-13에,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았을 때인 아홉째 달 이십일 경(유다 월력-우리 월력으로는 11월 중순 이후)에 큰비로 밖에 능히 설 자가 없고 추워서 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성경 주석가인 ‘알버트 반즈(Albert Barnes)’도 “예수님의 탄생의 시기는 현재의 12월과는 매우 다르며 겨울의 어느 달이 아니라 오히려 여름이 더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그 이유를 유대지방의 겨울 날씨는 매우 춥고 험악해서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을 지키며 밤을 새기에는 부적합하므로 누가가 기록하는 것처럼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눅2:8)”라는 말씀과 현재의 12월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즈는 유대의 목자들은 여름철에 그들의 양들을 이끌고 목초지를 찾아 산간이나 사막지역을 다니며 길을 잃고 이탈되거나, 약탈하는 동물들로부터 양들을 지키면서 양들과 함께 밤을 지샌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덧붙여 “10월에서 최소한도 11월 중순까지는 목자들이 양떼를 축사 안으로 옮기며 더 이상 바깥 들판에서 양과 함께 밤을 새는 일은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생각 있는 목자라면, 아무 것도 찾아 다닐만한 풀이 거의 없이 얼어붙은 들판에서 자기의 양떼들을 위태롭게 하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가 전하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때에 ‘베들레헴’ 근처 들판에서 목자들이 양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 사실은, 겨울철인 12월 하순경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담 클라크(Adam Clarke)” 역시 그의 누가복음 주석에서 “목자들이 자기들의 양떼를 집으로 인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10월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양떼도 들판에 있지 않을 때인 12월 25일에 탄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추정이 가능한 논쟁이다.… 바로 이 근거 때문에 12월에 예수님께서 탄생했다는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라고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무리한 칙령을 내렸는가?
또한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 하라는 명을 내렸을 때(눅2:1)”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예수님의 탄생과 일치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모든 여인과 아이들도 자기들이 속한 도시에 조세등록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주 길고 오랜 여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한겨울에 여인들과 아이들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만삭의 몸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 지방의 겨울이 그렇게 혹독하게 춥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마태복음 24장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의 도피하는 일이 겨울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 구절은 서기70년 예루살렘의 파괴에 관한 예언 이지만, 겨울이 유다인들에게 있어 도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계절이라면, 아이들이나 여인들, 특히 아기를 밴 여인이 여행을 한다거나 목자들이 밤에 들판에 묵으면서 양떼들을 지키는 일은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까? 이처럼 어느 때보다도 춥고 비오는 겨울인 12월에 각기 고향으로 호적 하러 가라는 포고를 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반항적인 신민(信民)인 ‘유대인들’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당시에는 여관에 머물 방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던 그 시기에 예루살렘 근교에는 각처에서 올라온 많은 순례자들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던 날 저녁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조차도 거할 장소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년에 세 차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그분을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출 23:14-17, 참고 - 출 34:24; 시 50:5).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는 유다인의 7대 절기 중에서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을 지키러 가는 시기였습니다. 이때 마리아와 요셉이 아구스도의 칙령에 의해 호적을 등록하려했을 뿐 만 아니라 이 유대인의 절기 중 하나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상경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인 아구스도가 유대인들의 이러한 풍습이 있음을 알고 이 시기에 맞춰 호적등록을 하라고 칙령을 내렸음이 충분히 짐작됩니다.
비록 그리스도의 탄생일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지만 요한복음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하면서 ‘거하시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니”(요1:14)
위 구절에 나오는 ‘거하시니’라는 말은 영어로는 ‘dwelt’이고 그리스어로는 ‘tabernacled’로서, 이 ‘tabernacl’이라는 단어가 바로 장막절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그분께서 장막절에 출생하셨음을 우리는 짐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의 장막절은 지금 달력으로는 대략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경에 해당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이 시기에 탄생했다면, 사람의 정상적인 수태기간이 사십 주임을 고려해 볼 때 정확하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의 12월 25일에 마리아는 오히려 예수님을 해산 한 것이 아닌 잉태를 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날짜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4세기 전까지는 12월 25일과 1월 6일 그리고 3월 25일로 나누어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축하되었습니다.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은 다른 날로 축일을 삼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짜를 12월 25일이라고 계산해 넣기 위해서 얼마나 큰 실수와 부주의가 수반되었는가를 증명하기 위하여 다시 “브리테니커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Britannica)”의 진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의 첫 해, 주 예수께서 나신 12월 25일은 새 달의 15일과 같은 금요일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에 있어서 서기 1년 12월 25일은 금요일이 아닌 일요일이었다.”
과학저술가로 알려진 ‘아시모프(Asimov Isaac)’박사는 “…기원 300년 얼마 후, 그리스도교는 농신제를 흡수하는 최후의 일격을 가했으며, 이로써 ‘미트라’ 숭배에 대한 최종적 승리를 거두었다. 12월 25일은 예수의 탄생일로서 자리를 잡았고, 따라서 그 성대한 축제가 그리스도교의 것이 되었다. 12월 25일이 그리스도의 탄생일이었다는 성서적 근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위의 고찰들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가 12월 25일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늦어도 10월말 또는 11월초 이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12월보다는 오히려 늦여름이나 가을철의 어느 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 트리의 기원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탄생의 예배에 돌린다는 주된 두개의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의 이론은 16세기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로부터 소개되었다고 하나, 그보다 먼저인 8세기의 성 ‘보니파스(Boniface)’에 의해서 라는 의견이 더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면 대부분 이교의 사상에서 취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몇몇의 백과사전들의 진술을 참고 하면, “수명의 학자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을 초기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나무 숭배는 ‘스칸디나비아인’의 나라들에서는 보편적인 것이다” “북 유럽의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들이 신성시한 상록수들을 크리스마스 축제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고, 그 나무들은 별이나, 달, 그리고 태양을 나타내는 도금한 도너츠나 견과류와 양초들, 사과들로 장식되었다.” “이것은 고대 게르만 부족들의 나무숭배의 습관이 잔존한 것이다” “우리의 크리스마스 상록수들의 장식은 역시 초기 그리스도인 시대로부터 연유되었다.… 초기의 교회는 상록수들의 사용에 불만을 나타냈는데 초기 이교축제와 그들의 교제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이집트’의 ‘이시스’[Isis-고대 이집트의 최고 여신]여신 숭배의 종려나무를 사용한 의식에서 기원된 것으로 믿어진다.”
이상과 같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나무숭배 사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것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4장 23절은 “이는 저희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음이라” 여기서 ‘푸른 나무’는 사철나무, 즉 상록수일 것입니다.
보니파스는 8세기 독일인들에게 거룩한 ‘오우크’[Oak-떡깔나무. 참나무의 일종]나무 숭배를 버리라고 설득했던 사람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독일인들의 거룩한 오우크나무 중 하나를 도끼로 찍어 넘어뜨렸을 때, 그 자리에서 어린 전나무가 돋아 나왔다고 합니다. ‘보니파스’는 새 개종자들에게 그 전나무가 그들의 거룩한 나무, 그리스도의 나무일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전 고대 ‘바벨론 전설’에서는 한 상록수가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솟아나고 새 상록수는 ‘니므롯’이 ‘담무스’ 안에서 회생한 것을 상징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필시 독일의 ‘보니파스’의 이야기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이론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중세 독일에서 유행했던 ‘낙원나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 나무가 12월 24일에 있었던 아담과 하와를 기리는 ‘낙원연극’에서 무대의 중앙에 장식되었으며, 이 나무들 역시 사과와 얇은 과자들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인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531년 독일의 ‘스트라스부르’에서였습니다. 독일인 이주자들이 이러한 관습을 미국으로 가져왔으며, 거기서도 그러한 나무들은 장식되고 대중화 되어갔습니다. 1882년에는 ‘뉴욕’시에 있는 발명가 ‘에디슨’의 동료로 보이는 ‘에드워드 존슨’의 집에서 최초로 전기 불로 밝혀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선을 보였다고도 합니다.
♧ 서양 감탕나무[Holly-일명 호랑가시나무]와 겨우살이(Mistletoe) 사용의 기원
크리스마스 행사 중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장식물 중의 하나가 서양 ‘감탕나무’ 와 ‘겨우살이’ 등입니다. 이런 것들이 애용되고 있는 이유는 추운 겨울에도 열매를 맺는 마법의 식물이기 때문이라는 믿음에서입니다. 이것을 사용하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붉은 서양 감탕나무 열매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고, 가시 투성이의 잎사귀는 예수님의 체포 당시 군병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기 위해 씌운 ‘가시 면류관’을 상징한다고 믿지만, 북 유럽에서의 이교도들은 서양 감탕나무의 빛나는 잎사귀와 열매를 영원한 생명의 남성적 상징으로 간주하고, 담쟁이 넝쿨을 불멸의 여성적 생명의 상징으로 보면서 이것을 다산(多産)의 상징이라고 믿었습니다.
많은 믿을만한 증거들은 이러한 식물들은 이미 서기력 기원 오래 전부터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지역에서 춥고 견디기 힘든 그들의 겨울동안 봄을 재촉하는 겨울 축제에서 사용되었다는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특히 중세기의 ‘튜튼(Teuton)’이나 ‘겔트(Celts)’족들은 겨울에는 시들어 버리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여전히 푸르른 서양 감탕나무와 겨우살이들을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신성시했던 것입니다.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Druids)’족들은 그 나무가 악귀, 질병, 불임증 등의 불길한 것들을 이겨내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러한 상록수를 너무나 거룩하게 여겨 그러한 나무 아래서 적군을 만나면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 평화의 입맞춤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서양 감탕나무나 겨우살이가 겨울동안도 푸르다는 특성 때문에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신화에서 현저한 부분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둥그렇게 원형으로 만들고 그 밑에는 빨간 리본을 맨 서양 감탕나무 가지나 겨우살이를 벽 위에나 창문 위, 또는 샹들리에에다 걸어놓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 역시 이러한 이교의 풍습에서 전이된 것입니다. 이 겨우살이는 ‘땅에 닿기 전’까지는 행복과 안전, 그리고 행운을 가져오는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백과사전들은 “서양 감탕나무, 그것은 많은 미신들의 주제였다”고 증언합니다.
이러한 식물이 결정적으로 예수님과 연결되어지기 위하여 그럴듯한 전설이 조작되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전설의 내용은 이집트로 피난 가는 예수님의 일가와 관련지어지고 있습니다. 이 전설에 의하면 ‘서양 감탕나무는 원래 상록수가 아니었다고 하며 요셉과 마리아가 천사의 지시를 받고 이집트로 피난을 가는 도중에 헤롯의 군인들을 만나 이들에게서 어린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서양 감탕나무 덤불 아래에 숨겼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나무는 예수님을 은폐하여 보호하기 위해 즉시 잎사귀 끝에 온통 가시투성이인 두터운 푸른 잎들을 내밀었다’는 내용입니다.
이상의 크리스마스 행사에 흘러 들어온 상록수 사용의 기원과 함께 또 다른 풍속 몇 가지를 더 살펴보면, 영국이나 미국에서 주로 사용되는 ‘율-록’[Yule-log - 크리스마스 전야에 벽난로에 태우는 통나무]을 벽난로에 태우는 것은 매우 익숙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 ‘율-록’을 태운 재를 “집을 낙뢰와 불에서 지켜주고, 상처들을 치료하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밭들과 짐승들이 다산(多産)하게끔 만드는 것 등의 힘이 있다고 믿어 일년 내내 보관하게 됐다”고 합니다. ‘율-록’은 본래 동지절에 ‘뇌신’[Thor - 雷神(우뢰를 맡고 있다는 신)]을 위한 게르만 부족의 이교축제에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율-록’뿐 아니라 ‘동지축제’와 많은 풍속들은 적어도 크리스마스가 공식화된 시기에 크리스마스 행사들의 일부분으로 변형되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