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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 서영남
2009년 6월 2일(화)- 고추가루
국내산 육우 소꼬리 하나와 사골 세 개 그리고 국내산 한우 양지 11근을 넣고 푹 고았습니다. 첫 번째 밤새 곤 국물과 두 번째 밤새 곤 국물을 합치니 뽀얀 국물 색깔이 참 좋습니다. 양지는 잘게 찢어놓았습니다.
네 번째 곰국을 달라고 하는 손님이 계십니다. 작은 국그릇 말고 큰 대접에 담뿍 담아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노숙생활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 이렇게 몸보신 해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고춧가루가 떨어져서 하나로 마트에 갔더니 고춧가루 1킬로그램에 23,100원이나 합니다. 겨우 두 봉지를 샀습니다. 오는 길에 매운 홍고추를 만 원어치 샀습니다. 고춧가루를 아껴야겠습니다.
고마운 자매님께서 아들과 함께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직접 손질한 고춧가루와 오이 한 상자를 아드님이 힘겹게 들고 찾아오셨습니다. 성함도 알려주시지 않으시고 차도 한 잔 드시지 않고 그냥 가십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운 분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고춧가루입니다.”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봅니다. 고추장, 된장, 그리고 다시다가 있으면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쌀이 아슬아슬했습니다. 대성 씨가 나눠드리는 쌀을 보고 걱정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어제 오후에 대성 씨가 기쁜 소리를 지릅니다.
“쌀이 아주 많이 왔어요!”
고마운 분께서 40킬로 3포를 내려놓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20킬로 쌀이 다섯 포나 들어왔습니다. 대성 씨가 흐뭇해합니다.
또 고마운 분께서 택배로 쌀과 유기농 달걀을 보내주셨습니다.
내일은 조현성 아가의 백일입니다. 아가 엄마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기 백일인데 떡을 많은 분들과 나눠드시고 싶다고 하십니다. 내일 백설기를 세 상자나 보내주시겠다고 합니다.
민들레 소식을 쓰다가 지금껏 매년 6월 2일쯤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2003년 6월 2일- 언젠가는 민들레국수집이 될 날을 기다리면서
식구들이 민들레 국수집에 들어오시면 시원한 냉수 한 잔을 드리면서 물어봅니다. “국수를 드시겠어요, 밥을 드시겠어요?” 열이면 아홉 분은 밥을 달라고 하십니다. 국수를 먹으면 곧 배가 꺼지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민들레 국수집이 서서히 민들레 밥집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반드시 이름 그대로 민들레 국수집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 식구들이 배고플 걱정 없이 맛있게 국수를 드실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지난 5월 24일에는 어쩔 수 없이 ‘민들레의 집’을 열었습니다. 민들레의 집은 노숙을 하시던 우리 식구들 중에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스스로 살아가실 수 있는 분들을 위한 작은 집입니다. 민들레의 집의 첫 식구는 민들레국수집의 첫손님인 대성 씨입니다.
(국수를 말아본지 오래되었습니다. 간혹 집에서 베로니카와 모니카가 오늘은 국수를 말아달라고 할 때만 만듭니다. 대성 씨는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습니다. 만 2년이 넘었습니다.)
2004년 6월 2일- 바라보고만 있어도 흐뭇
우리 예수님처럼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릴 욕심에 하루를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돈”이 저의 큰 관심거리 중의 하나입니다. 민들레 국수집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전에 오시던 분들은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새로운 얼굴들이 손님들의 반은 넘었습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생각이 많아집니다. 쌀은 얼마나 남았지? 엘피지 가스가 얼마쯤 남았을까? 내일은 고깃국을 끓였으면 좋겠는데, 풋고추와 상추를 내어드리면 좋겠다, 집세와 전기료 그리고 수도료는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저런 걱정을 하다가 고마운 분들이 쌀을 들고 오시고, 고기를 들고 오시고, 봉투를 주시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자잘한 걱정거리가 없어지면 그 다음에는 찬물과 더운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있으면, 반찬 냉장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치 냉장고도 꼭 필요한데, 좀 더 큼직한 걱정거리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정수기도 마련했고요, 지난 오월에는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복지회의 도움으로 김치냉장고도 마련했고요, 반찬냉장고도 마련했습니다. 요즘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흐뭇합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우리 귀한 손님들이 편하게 음식을 드실 수 있도록 식탁 하나만 더 늘려서 두 개의 식탁만 된다면 한 분도 기다리지 않고 식사하실 수 있는 행복을 보게 될 욕심을 부릴 것입니다.
(오늘은 싱싱한 상추를 네 상자나 준비해 놓았습니다. 손님들이 맘껏 드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어제 동네 고마운 아주머니께서 주신 된장으로 쌈장을 만들었습니다. 참 맛있습니다. 곰국에 파 송송 썰어서 올려드리면 참 좋아합니다. 식탁 하나만 더 들렸으면 하던 꿈이 이제는 네 분이 앉는 식탁 여섯 개로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손님들이 거의 기다리지 않고 식사하실 수 있습니다. 어쩌다 십 분 정도 기다리게 되면 기다리게 했다고 화를 내시는 분도 있습니다.)
2005년 6월 2일- 이슬왕자
오늘 오후에 도원 씨가 송림동에서 천천히 걸어서 민들레국수집으로 밥을 먹으러 왔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정근 씨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조금 전에 정근 씨가 집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자원봉사자인 은선 씨가 대성 씨와 함께 정근 씨를 찾으러 갔습니다. 송림시장 근처에 차를 주차시키고, 시장을 지나서 좁은 골목길로 한참 올라가면 재개발 중이라 빈집과 철거된 집들로 어수선한 동네에 정근 씨 여동생 집이 있습니다. 대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나무판자 문이 덜컹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행랑채 같은 조그만 방이 하나 있습니다. 정근 씨 혼자 누우면 꽉 차는 그런 방입니다. 방문 앞에는 개가 세 마리나 함께 정근 씨와 지내고 있습니다. 개집인지 사람집인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꾀죄죄한 이불이 아무렇게나 펼치진 방에 정근 씨가 웃통을 벗은 채 어깨며 등에 파스를 잔뜩 붙이고 술에 취해서 자고 있었습니다.
술 한 잔 사주마고 대성 씨가 달래서 겨우 민들레국수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여동생 집에서 라면 하나 먹었다고 합니다. 마침 스프가 있어서 억지로 한 그릇 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은선 씨는 정근 씨 옆에서 술을 끊으라고 애원합니다. 그만 은선 씨가 울었습니다. 은선 씨의 눈물을 본 정근 씨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은선 씨가 떠난 후에 정근 씨는 이슬 한 잔 달라고 합니다. 냉장고에 남은 이슬 한 잔을 드리니 꿀꺽 단숨에 마시고 안주도 없이 냉수 한잔 더 마시고 입을 쓱 닦습니다. 그리고 혼났네.
(이슬왕자인 정근 씨는 알코올 의존증이 심합니다. 밥도 먹을 수 없고 술도 더 마실 수가 없어서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기에 병원비 걱정은 없지만 병수발은 들어줘야 합니다. 용돈도 필요합니다. 정신병원에 여섯 달에서 하루 모자라는 날까지 입원해 있을 수 있습니다. 205년부터 이슬왕자님은 병원이 집이 되었습니다. 여섯 달 병원에서 지내다가 나와서 또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밥도 술도 먹을 수 없게 되면 병원에 입원시켜달라고 합니다. 지난 5월 28일 퇴원했습니다. 송림동에 있는 여동생 집을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낮에는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술 한 잔 먹을 수 없을까 애처롭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쩌다 한 잔 먹으면 그저 행복해 합니다.)
2006년 6월 2일- 김치 담그기
요즘 민들레국수집의 주 메뉴는 상추쌈입니다. 쌈장을 제대로 만들었더니 우리 손님들이 참 좋아하십니다. 하루에 상추 한 상자 반이니까 6킬로그램을 씻어서 내어놓으면 밥보다 더 많이 드십니다. 이제 장마철이 오고 상추 값이 비싸지기 전에 부지런히 상추 대접을 해야겠습니다. 다음번에는 돼지고기를 볶아 넣고 만드는 쌈장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기름기 없는 돼지 뒷다리 살을 잘게 다져서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볶다가 생강을 넣고 향이 어우러지면 돼지고기를 넣고 볶다가 된장을 넣고 물을 자박하게 붓고 끓이다가 고춧가루와 풋고추를 넣고 잘박하게 끓여서 식힌 다음에 냉장고에 넣었다가 내면 우리 손님들이 얼마나 잘들 드실까!
김포야채 가게 아저씨가 배추를 싣고 오셨습니다. 서른두 단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두 단은 덤이라고 합니다. 도매시장에서 오늘 배추 한 단에 2,500원에 샀는데 자동차 기름 값으로 200원을 붙이셨답니다. 한 단에 2,700원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두 단을 덤으로 주셨으니 헛장사를 했습니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려 혼자서 일하고 있는데 용녀 할머니(78세)가 거들어 주십니다. 아침을 먹으러 온 민들레국수집의 첫손님 대성씨도 거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소금물에 배추를 담근 후에 몇 분 있다가 건져서 통에 넣고 소금 뿌려서 절이는 작업을 하는데 세상에, 용현동 성당 청년들이 도저히 올 수 없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아! 나는 오늘 죽었다!
그런데 멋진 일이 일어났습니다. 영미 씨가 사회복지사 동료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또 아가다 자매님이 왠지 국수집에 오고 싶으셔서 오셨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속이 꽉 찬 배추 64포기를 담았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첫손님이셨던 박대성씨가 내일 민들레의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한 달에 방값으로 6만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겨울에 난방비로 써야 하거든요. 기름보일러라서 돈이 꽤 들 것입니다. 대성 씨 이삿짐이라곤 옷가지 몇 개뿐이라고 합니다. 텔레비전이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준비 되어 있음. 작은 냉장고만 준비해 주면 살림을 살 수 있는 집입니다. 내일 대성 씨가 직접 도배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하루 동안 김치가 김치 통으로 다섯 통이 반찬으로 나갔습니다. 이제는 50단 정도 김치 담아야 며칠 반찬이 됩니다. 민들레국수집 첫손님인 대성 씨가 여덟 번인가 나갔다가 아홉 번째 민들레의 집에 오는 것입니다. 2005년도에는 일도 열심히 했고 돈도 저축하고 했었는데 한 번 노숙자는 영원한 노숙자라면서 또 나가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2007년 6월 2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도록
대성 씨가 입원해서 빈 집을 그냥 묵히기보다는 기성 씨를 대성 씨가 퇴원할 때까지 지내도록 했습니다. 기성 씨는 이제 스물여덟 살인데 고아출신입니다. 베로니카께서 기성 씨가 덮을 새이불과 벼게를 좋은 것으로 장만해주셨습니다. 핸드백 같은 작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온 기성 씨는 옷도 입고 있는 반바지와 반팔 티뿐입니다. 헌옷을 챙겨드리고 반찬과 쌀도 가져다주었습니다. 본래 내일 기성 씨가 오기로 했는데 밤에 어디서 잘 데도 없다 고해서 오늘로 당겼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생긴 이래로 처음으로 쇠갈비 찜을 했습니다. 약 60킬로의 갈비입니다. 얼마나 맛있게들 드시는지요. 기분이 좋습니다.
한 주간 동안은 마늘장아찌를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동네 할머니들께서 옛날 마늘 까시던 실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손님들도 마늘 까는 일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커다란 통으로 세 통이나 마늘장아찌를 담았습니다. 저도 틈틈이 마늘을 까다가 엄지손톱이 벌어져서 아려서 조금 고생했습니다. 할머니들이 왜 조그만 칼을 갖고 마늘을 까시는지 이유를 알겠습니다.
화수시장에서 마른 생선을 파시는 할머니가 섭섭해 하셨습니다. 큰아들이 민들레국수집에 갔다가 쫓겨 왔다면서요. 술만 먹지 않는다면 얼마나 착한 아들인데 그만 술만 먹었다하면 말이 많아져서 민들레국수집에 가서 거들고 싶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제가 쫓아냈다고 합니다. 누군가 생각해보았더니 알겠습니다. 술에 취해서 봉사자들을 귀찮게 하던 분입니다. 진짜 겨우 겨우 쫓아냈는데... 다음부터는 술 취한 모습을 볼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보도록 해야겠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 때문에 한 주간 동안 열 좀 받았습니다.
(대성 씨는 이번 입원으로 금주와 금연을 지금껏 하고 있습니다. 기성 씨는 몇 달 후에 병역기피를 하기 위해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숨어서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수시키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병역기피가 아닙니다. 주민등록 살리고 운전면허 취득해서 취직했었고요. 얼마 전까지는 음식점에서 배달 일을 하면서 지내다가 지금은 공익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2008년 6월 2일- 꿈같은 꿈을 꾸면서
잠 한 번 푹 자보는 것이 소원인 우리 손님들을 위한 꿈같은 꿈.
노숙인들을 위한 문화센터. 낮 동안 세탁도 하고 낮잠도 잘 수 있고, 커피나 차도 마시고, DVD로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토론과 공부도 하고 그러다가 저녁이면 노숙하러 나가고 하는 그런 문화센터. 배가 고프면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식사하고 다시 와서 삶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다가 노숙이 정말 싫어서 자립하고 싶으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엘피지 프로판 가스 20킬로가 3만 6천원이나 합니다. 작년에 2만 천 원 정도 하던 것인데 정말 억 소리가 납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이 점점 더 늘고 덩달아 가스 소비량도 늘고 가스 값은 터무니없이 올라버렸습니다. 돼지고기 값은 또 얼마나 올라버렸는지요. 시장 보러 가는 것이 무섭습니다.
(꼭 일 년 전에 꿈같은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민들레 희망지원센터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입니다. 이번 달 이십일쯤이면 공사가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센터 개소식 날짜도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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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저도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하고픈 열망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수사님의 민들레 일기를 읽으면 감동이 물밀듯 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