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당(唐)나라 말기로부터 송(宋)나라 초기에 걸쳐 산 대학자이자 시인인 서현(徐鉉)은 그의 시 除夜(제야)에서 이렇게 읊었다.
寒燈耿耿漏遲遲, 送故迎新了不欺。
한등경경루지지, 송고영신료불기。
찬 겨울 밤 등불은 깜빡이고 시간은 더디 가건만,
옛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는 일은 속임(어김)이 없구나.
※ 시 전문은 古典의 멋(講讀과 鑑賞)에 올려 두었음.
여기서는 送故迎新(송고영신)이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오늘날과 비슷하게 쓰였다.
王嘉(왕가)에 대해서는 고사성어494번 先入見(선입견) 참조
애제[哀帝, BC 26 ~ BC 1]
중국 전한(前漢)의 제12대 왕(재위 BC 7∼BC 1).
원제(元帝)의 손자. 정도공왕(定陶恭王)의 아들. 성제(成帝)의 태자가 되었다가, 성제가 급사(急死)함에 따라 20세에 즉위하였다. 당시 빈부의 차가 격심하였기 때문에 즉위년에 사단(師丹)의 건의에 따라, 제후왕(諸侯王) 이하의 토지 소유와 노비 소유를 제한하기 위하여 한전법(限田法)을 발포하였으나 반대자가 많았다. 그 역시 총신(寵臣)인 환관(宦官) 동현(董賢)에게 광대한 토지를 주었기 때문에 이 법령은 시행되지 않았고, 사회 불안이 한층 증대함으로써 한(漢)왕조는 쇠퇴하였다.
徐鉉(서현).
字는 鼎臣(정신). 광릉 사람. 10여세에 이미 문장을 잘 지었고, 한희재와 더불어 한서로 병칭되었다. 당나라가 망하고 5대 10국의 혼란기에 강남의 오나라에 출사하여 비서랑을 지냈고, 이어 남당에 출사하여 중서사인, 한림학사, 이부상서를 역임하였고, 송나라에 귀부하여 산기상시를 맡았다가 좌천되어 죽었다.
당말 5대 10국
당의 선무절도사 주전충이 애제(哀帝)로부터 선양의 형식으로 나라를 빼앗고 후량을 세운 이후부터 후주의 세종사후 조광윤이 공제(恭帝)의 뜻을 받들어 송을 건국하기까지의 50여년이라는 단기간에 중앙정부는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로 이어지고 지방에는 오(吳), 남당(南唐), 전촉(前蜀), 후촉(後蜀), 남한(南漢), 초(楚), 오월(吳越), 민, 남평(南平), 북한(北漢)의 10국이 흥망하였다.